2013년 방명록.... by 진성당거사

2013년 새해를 맞아 다시 방명록을 개시합니다.

1.
이 블로그는 주인장의 전공 분야이자 주요 관심사인 역사와 문화재에 관련된 글 위주로 나갑니다. 사실은 대부분이 선동글입니다만,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서는 쇄말적 말단비대증후군 환자나 다름없는 한 사람의 진심어린 Concern이 함유됩니다. 물론, 배움이 그리 깊지 않은 일개 학부생의 글인 관계로 선동글이라도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작년부터 연재 뜸만 들인 글들 올해는 제대로 맘잡고 써보렵니다. 행안부 퀘스트가 끝나면 술술 글이 잘 써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른 일들에 치여서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해 작년 한 해는 아쉽게 넘긴 것들이 좀 많았지요.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3. 작년에도 썼습니다만, 이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글은 주인장의 개인적인 신념인,

실증주의,
탈민족주의,
反식민사학,
反유사역사학,
과학적 회의주의,
호고(好古)주의,
무신론-불가지론

이라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4. 따라서 이 블로그는,

해체주의에 입각한 얼치기 포스트 모더니즘,
국수주의,
식민사학,
유사역사학,
막무가내식 상대주의,
사이비 反독단론,
과도한 종교적 편향성 및 근본주의

등등은 철저히 배제하며 또한 경멸합니다.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지고 본 블로그의 어떤 글에든 덧글이나 트랙백을 다는 경향 제위께서는 통보 없는 덧글 삭제 및 아이디 차단을 미리 각오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비로그인 덧글쓰기는 이미 차단되었습니다.

4. 주인장에 대한 안부 인사나 개인적인 질문, 또는 쓴 글 이외의 별도의 문의사항이 있을 시에는 이 방명록을 이용해 주세요.

5. 2013년 한 해도 이 블로그를 찾는 모든 경향 제위께 만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간만의 생존신고..... by 진성당거사

1.
정말 오랜만입니다. 사실 지난 1월 막바지에 세조 어진 관련 포스팅 하나 하고서는 이 블로그에 공지 몇 개를 빼고서는 아무 생산적인 글을 쓰지 못해서 그저 죄송하고 막막할 따름입니다. 애초에 이 천학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이 거의 없긴 합니다만.  

2. 
3월 이래 월수금은 학업으로, 화목토는 생계를 위한 직장으로, 일요일은 주중에 하기 힘든 다른 어떤 중요한 일을 하는 시간으로 보내다보니 요 몇 주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앞으로도 학기가 끝날때 까지는 계속 이런 식으로 바쁠 거 같네요.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오전 5시 35분에 일어나서 6시에 첫차를 타고 일찍일찍 수업을 가야하는 상황입니다. 월요일에는 8연강, 수요일에도 8연강씩 하다보니 수업이 다 끝나면 5시가 훌쩍 넘습니다. 여기에 봉사활동과 과제, 기타 수업 준비는 말 할 것도 없고 일과 관련된 것들도 몽땅 준비를 하려치면....

확실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활동은 그래서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닥 자주 할 수 있을거 같지 않습니다. 

3. 
3년 만에 학교에 돌아가서 몇 주 동안 수업을 듣다보니 낯선 이들도 너무 많고, 간간히 보이는 아는 사람들도 이제 거의 자기 나름의 갈 길을 다 정하고 있는 거 같아 부럽기도 하고 제 스스로가 아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이랄까 하는 것이 아직 식지 않았구나, 내 머리가 아직도 굳거나 뒤쳐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어 아직까지는 달려볼 만 합니다.

4. 
한국의 근현대와 관련된 수업 두 개와 한국의 중세와 관련된 수업 한 개를 듣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그다지 쓰지 않겠지만 정말 재미있습니다. 저는 성향상 아무래도 근현대쪽 수업들이 더 재미있겠지만, 중세도 역시 재미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밖에 서양사학사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옛 역사학자들의 원전들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랑케나 드로이젠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와 베버 등등도 보고, 학기 말까지는 개념사와 여성사를 거쳐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들여다보는 순서인데. 기본적으로 원전 강독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원전을 실컷 들여다보고 있지요. 지난 몇 주 사이에는 고대부터 근대 초기의 역사학 자료들을 살펴봤고, 지난 2주 사이에는 랑케 전후의 역사철학과 역사학의 성립 과정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확실히 랑케 이후의 고전적 역사주의에 실증주의 사학이라는 레테르를 아무렇게나 붙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짓인지 두고두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랑케의 경우에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 참 많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랑케의 글은 국내에 번역된 것이 거의 全無에 가깝다는것. 결국은 영어 윤문역과 독어 원문까지 들이대고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독어 원문은 정말 배배꼬인 구식 문장의 극악을 달립니다. 그 유명한 "Wie es eigentlich gewesen" 은 그나마 문법적으로 부실한 非文의 일부라는 사실도 독어 원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지 뭡니까. 

5.
1월 말 이래로 이글루스 돌아가는 모습이나 다른 분들 근황도 거의 못 보았습니다만, 지난 두 어달 사이에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분란과 시끄러움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뭘 하던지 간에 키배는 만악의 근원인가 합니다.

(대발견!) 영국 플랜태저넷 왕조 최후의 왕, 리차드 3세의 유해 발견! by 진성당거사

영국 플랜태저넷 왕조 최후의 왕이자, 영국 역사에서 수많은 화제거리를 낳아온 리차드 3세의 유해가 마침내 400여년 만에 세상의 햇빛을 보았습니다. 지난 9월에 이 발굴 소식을 접하고서 바로 오늘 미토콘드리아 DNA 검사 결과가 나올때 까지의 경과를 계속 지켜봐왔는데, 결국 이렇게 희소식을 접하는군요.

조만간 별도의 포스팅을 하겠습니다만, 일단 이번 발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번 발굴과 고고학적 검사를 주관한 영국 레스터 대학교의 공식 웹페이지 (링크)BBC의 포토 갤러리 페이지(링크)를 참조하십시오.



16세기 말에 모사된 리차드 3세의 초상화와, 이번에 발견된 그의 유골 모습.
예로부터 이야기거리였던, 그의 유명한 휘어진 등뼈를 고스란히 볼 수 있습니다.



이당 김은호, 그리고 세조 어진(!)을 담은 사진 한 장....그리고 사소한 발견 by 진성당거사

위의 사진은 1928년 창덕궁 신선원전에서 이당 김은호 (1892 ~ 1979)가, 그때껏 궁에 보존되어 오던 세조의 어진(!)을 이왕직의 주문으로 새로 이모해 그려내는 광경을 담은 것이다.

1921년, 고종의 3년상이 끝난 후, 이왕직에서는 당시껏 전국 각지의 진전(眞殿)과 각 궁궐의 전각들에 퍼져 남아있던 역대 임금들의 어진들 대부분을 새로 한 곳에 모으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해 3월 22일, 새로이 창덕궁 북편에 기존의 선원전을 대체할 새 전각을 새로 짓고 이 건물도 역시 선원전이라 이름붙였다. 그 날을 기해 궁궐을 비롯한 각지에 흩어져있던 어진들은 이 새 전각에 봉안되었다. 

창덕궁 신선원전. 1921년 건립.

1921년 당시까지 남아있던 역대 임금의 어진들은 사실 그렇게까지 많지 못해서, 기존의 창덕궁 선원전에 모셔져있던 태조,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 (효명세자), 헌종의 어진과, 서울 영희전에 있다가 일찍이 궁으로 모셔온 세조와 원종(정원군)의 어진, 그리고 궁궐의 다른 전각들에 모셨다가 다시 모셔온 철종과 고종의 어진 뿐이었다.

물론 민간에서는 무속인들의 신당이나 사찰에 모셔진 왕이나 왕족의 진영들이 더러 있었으나, 오랫동안 민간의 필력 없는 민속화가들에 의해 수 차례의 개채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원형을 상고하기는커녕 아주 터무니없어보이는 그림들이 되어버렸다. 몇 해전 세상을 잠시 떠들썩하게 했던 해인사의 세조 어진이라 알려진 그림이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이 밖에 조선 왕가의 족보, "선원보감"에 실려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목판본 삽화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은 창덕궁의 어진을 보고 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필력이 졸렬하고 조잡한데다 현존하는 몇 안되는 어진과 맞추어보면 복식이나 용안의 모습조차 터무니없이 달라 어진의 참 모습을 온전히 담아낸 것이라 믿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다.


선원보감에 실린 세조 초상 목판화. 
위의 사진속 그림과 비교해 보면, 사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그러던 1928년, 두 해 전에 승하한 순종의 어진을 선원전에 봉안하게 될 시점이 다가왔다. 이왕직에서는 이미 1922년에 한번 순종의 생시 초상을 그려냈었던 김은호에게 다시 한 번 순종의 초상을 그려줄 것을 주문했다. 물론, 1922년에 그렸던 서양식 복색을 한 모습이 아니라, 왕가의 옛 법도대로 곤룡포를 입고 용상에 앉은 예스런 모습의 초상이었다. 그와 함께 이왕직에서는 김은호에게, 서울 영희전에 있다가 모셔온 세조와 원종의 어진을 새롭게 이모해 그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 두 그림은 영조 때인 1735년에 어명에 의해 기존의 원본에서 모사된 그림들로, 원본이 소실된 후로도 어떻게 겨우겨우 긴 세월동안 내려온 유일본이었다. 


위 사진의 확대 - 세조 어진의 전체적 모습을 대강은 파악할 수 있다.
 세조는 호피문으로 보이는 바닥 깔개 위에 놓은 작은 어탑에 앉아있고,
흰 색의 신발, 즉 백피화를 신고 있는데,
이것은 세조 어진의 모습을 묘사한 몇가지 문헌사료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어째서 이왕직이나 당시의 그 누구도 역대 임금의 어진들을 사진에 담아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가이다. 함흥의 준원전과 개성 목청전에 봉안되었던 태조 어진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어진들은 일제강점기 내내 단 한번도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아마도 이왕직에서 일하던 옛 대신들이나 당시의 이왕가 측에서 모종의 거부나 압력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훗날 역대 조선 왕조 임금들의 모습을 영원히 역사의 미궁속에 몰아넣는 짓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이 때 모사되었던 세조와 원종의 어진들을 포함한 다른 옛 어진들은 그 후 해방을 맞이할 때 까지 계속 남아있었고, 그 후 한국전쟁 때에도 북한군의 약탈을 피해 다른 조선 왕실의 유물과 국립박물관 유물과 함께 무사히 임시수도 부산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1954년 12월 26일, 어진과 다른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던 부산 관재청 창고가 부산 용두동 대화재 와중에 대부분 재로 화하는 대 참변이 터지고 말았고, 이 때 살아남은 것은 겨우 영조의 어진 두 점, 불에 절반 이상 타버린 철종의 어진, 얼굴을 비롯해 그림 대부분이 몽땅 다 타버린 태조와 문조의 어진, 그리고 어디서 떨어져나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타다만 단편들 뿐이다.

용두동 대화재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 1954년 12월 26일.

이 밖에도 그림은 그럭저럭 온전히 남았지만 정작 귀퉁이의 화제가 다 타버려 누구를 그린 그림인지 알지 못하는 그림도 두어 점 더 있는데, 이것들은 복색을 보아 영조의 연잉군 시절 모습 어진처럼 역대 임금의 왕자 시절 모습을 담은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 정작 주인공이 누구인가는 전혀 알 수 없이 미궁에 빠져있다. 이들 그림들로 미루어보아 선원전에는 왕들의 공식 어진들 뿐 아니라 왕족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도 더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지만, 이것도 더는 확인할 수 없는 역사의 수수께끼일 뿐이다.


1954년의 화재를 겪은 후의 문조 (익종, 효명세자)의 어진 잔편

그런데 오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뒤지다, 여지껏 다른 어떤 원사료나 관련 서적에서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소한 발견 하나를 하게 되었다. 1969년 5월 14일자 경향신문에서 발견한 작은 기사 한 토막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는 판소리 명창 박동진 선생에 관련한 자료를 찾으려고 검색했던 신문이었는데, 박동진 명창의 1969년 춘향가 완창 무대 예고기사 바로 위에 실린 이 기사, "세종대왕의 용안 - 어진화가 김은호 씨는 말한다"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사진자료 하나가 있었다. 기사 자체는 1960년대 이래 박정희 정권 하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표준영정"과 동상들 가운데 그 무렵 홍릉 세종대왕기념관 내에 새로 건립된 김경승 作의 세종대왕 동상의 고증에 관해 다룬 것이다.

김은호는 여기서 세종대왕의 얼굴에 풍성한 수염을 묘사한 김경승의 동상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세종은 수염이 많이 옅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그 근거로 자신이 1928년 당시 작업했었던 세조의 어진에 거의 수염이 없었다는 증언을 덧붙이고, 아들인 세조의 얼굴과 역시 수염이 성근 편인 태조의 얼굴처럼 세종의 얼굴도 그닥 수염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그저 증언대로였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할 말은 없었겠지만, 놀랍게도 이 기사에는 이런 사진이 실려있다.

 
신문 기사의 사진이라 해상도가 매우 떨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처음에 소개한 저 흐릿한 사진 속 모습이나 선원보감의 조잡한 그림, 또는 해인사에 소장된 개채 투성이의 그림에 비하면 훨씬 제대로 그려지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모습이다. 역대의 어진 화사들이 기존 어진을 이모할때는 화가 개인의 필력을 나타내기 보다는 그림의 원래 모양새와 화필을 고스란히 살려 그렸음은 이미 많은 미술사가들의 연구로 잘 증명된 바이다. 이 그림 역시, 1928년 당시 김은호가 역대 어진화사들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1735년에 원본에서 이모된 옛 세조 어진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진이 1969년 신문 기사에 실렸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1969년 당시까지는 김은호나 또는 누군가의 손에, 1928년 당시 김은호가 어진을 그릴 때 사용했던 유지 초본이나 최소한 그 사진이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부족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그림의 현재 행방은 확인하지 못했다.

김은호는 1979년 타계했다. 그의 유작들과 유품 상당수는 개인에게 매각되었고, 일부는 한국근대미술연구소 등등의 사설 기관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근대미술연구소는 1978년에 당시 알려진 김은호의 작품 상당수를 모은 화집을 출간했지만, 이 화집에는 세조어진 초본은 들어있지 않다. 참고로, 김은호가 1922년에 그렸던 대례복 차림의 순종어진 초본은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그림이 혹여 고려대학교 박물관이나 혹은 다른 공기관에서 소장하고 있지만 무관심이나 무지로 공개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시대 작품들보다도 더더욱 작품의 행방이나 제반 연구가 오리무중인 것이 근현대 한국미술사인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세조어진 초본, 최소한 그 사진이라도, 부디 누군가의 손에 있다가 우리 앞에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 왕조 임금의 초상화로서 가지는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현존작이 거의 전무한 조선 전기 초상화의 필력을 미루어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2013년 첫 근황 잡담......(좀 깁니다) by 진성당거사

1. 
말 그대로 2013년 첫 근황 잡담입니다. 
이 블로그도 어느덧 햇수로 5년째입니다만 아직도 한산한데 이렇게라도 포스팅 수를 늘려야...
(계속 이렇게 날로먹으면 안되는데 말이지요 ㅠ.ㅠ) 

2.
날이 미친듯이 춥군요. 덕택에 일요일부터 시작된 목감기가 아직도 가시질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 날에는 데이트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잘못 열린 지하철 4호선 문 틈에 손이 끼어 왼손 중지 인대를 다쳤는데, 요 몇 년 사이에는 우쨰 연말연시에 몸이 성하질 않군요. 제 기억으로 08년 이래 계속 감기 아니면 자잘한 부상입니다.

3. 
근래에는 블로그에 새로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까 생각중입니다. 주로 극히 최근에 서구 언론에서 간간이 주목했지만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외국의 고고학 성과에 관한 것을 다루려 하는데, 마땅한 카테고리 명을 붙이기가 쉽지 않군요. 그 카테고리 명을 붙이는 김에 아예 이 블로그 카테고리와 레이아웃도 싸그리 갈아엎을까 합니다.

4.
그리고 곧, 숭례문이 복원 낙성을 할 모양인데, 그에 맞춰 포스팅도 좀더 해봐야지요. 당장 그 전에 예고한 기와 관련 포스팅도 아직 제대로 못 정리했군요.

5.
너무 오랫동안 팽개쳐둔, 옛날 78회전반 (소위 SP음반) 복각 포스팅들 다시 해야겠습니다. 작년 한해에만 제 손으로 제가 작업한 음원이 1천여 곡 넘게 쌓였지만 그저 게으르고 시간 없는 탓에 차일피일 미뤄지니 정말 그것도 맘잡고 해야죠. 그리고 일전에 예고한 축음기 콘서트는 차츰 큰 틀이 잡혀가는데, 아마 날이 풀리면 이번 봄에 한 차례 소규모로 해볼까 합니다. 

6.
이번 주말에는 오랜 친구의 덕으로 이런 곳에서 일을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주빈 메타 옹을 국내에서 친견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많이들 보러 와주셨으면 하네요.

여기서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황상 자세히 말씀드릴수 없지만, 그래도 뭐 나름의 중요도는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친구를 위시한 관계자들 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요 근래 이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작업하는 분량을 보고 하니 과연 공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가가 실감됩니다.

제게 개인적으로 생업(?)이 있다보니, 전체 일정을 다 함께하며 친구를 돕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평생 많이 겪지 않을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조금 긴장도 됩니다. 어쨌든 잘 해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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