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사마,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 했더니.......... by 진성당거사

(뉴데일리 기사 링크)

역사가 이덕일 씨, “박정희, 독립군과 전투했다는 사료 없다”



그나마 이덕일이 자기 진짜 전공분야랑 가까운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길래, 이번에는 그래도 정신줄은 잡고 이빨은 깠지 않았을까 했는데, 역시 믿었던 내 잘못이었다.

물론 박정희가 독립군하고 싸웠다는 사료는 분명 어디에도 없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쟎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분명 궁극적으로 임시정부든, '동북항일연구원 (여기서도 어김없이 기자가 역사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인간인게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든, 조선 독립운동 세력과 분명히 맞서는 처지였다는 걸 모르는 건가? 

그리고, 다시 기사로 돌아가서, 아래 내용을 읽어볼까?


(전략) “당시는 일본이 계속 승승장구 할 때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출세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되는 축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하지만 어떤 식으로 평가를 하든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문제가 많은 행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1940년대 쯤 되면 나라가 망한 지 30년이 넘었고 일본이 계속 언론 통제를 했기 때문에 극소소수의 사람들만이 임시정부라는 것이 있다는 알았다”며 “일본이 패망하리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을 때인데 지금 관점에서 왜 누구는 독립운동 했는데 넌 안 했느냐 라고 평가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중략)

이 소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 아직도 실제적인 친일 잔재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해체하는 작업보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기사 원문의 저 엉터리 문장은 내가 옮겨 적은게 아니라 기사 원문 그대로다. 이 기자라는 작자는마 대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인간이거나, 아니면 대학 글쓰기 수업에서 절대 C- 이상의 평점을 받았을리가 없을 게다혹시나 기자가 워낙 바보 멍청이라 내용을 잘못 알아듣고 소설을 썼을까봐, 부랴부랴 문제의 인터뷰 화면을 직접 꼼꼼히 보기까지 했는데, 이덕일은 정말 저런 말을 했었다.
.
.
.
.
.
.
.
.
.
글쎄, 과연 이덕일 말대로 정말 그랬을까??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이 1930년대 말에 그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 

조선 백성들이 극소수밖에 임시정부의 존재를 몰랐다고? 30년대 중엽까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서 즐겨쓰던 '가정부(假政府)'라는 표현은 아마 한번도 못 본 모양이지? 그 '가정부'가 뭔지는 잘 몰랐을지 몰라도, 그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다네.

일본이 패망하리라는 생각은 거의 안 할 때라......흠.....마치 그 시절 살아본 사람처럼 얘기하시는구려. 그럼 김사량같은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하실건가? 일본군에 편입되었다 탈출해 임정을 찾아간 김준엽-장준하 일행같은 경우는? 그런 경우가 드물었던 건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모두가 일본이 패망하리라고 생각을 안했을까? 그건 일반화의 오류겠지.
.
.
.
.
.
.

뭐, 결론은 역시 가관이다. 

"아직도 실제적인 친일잔재가 많이 남아있다"라. 글쎄, 당신의 머리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친일 청산은 아마도, "이병도 무덤에 침을 뱉어야 한다" 정도 밖엔 없겠지?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음, 당신 스스로를 두고 좀 다시 생각해보실까? 그게 당신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를 말이야.

하여튼, 떡사마, 오늘 한번 또 사고쳤네.


인간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SBS 그것이 알고싶다 시청 후기) by 진성당거사

오늘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또 보고서 - 요즘들어 거의 안보던 TV를 이렇게 자주 볼 줄이야 - 
2012년 지구 종말론에 대한 허경영 못지않은 헛소리를 또 한번 흥겹게 감상했다.

그런데 꽤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마야 달력과 주역 얘기는 뭐 전부터 알고 있었고 - 한 5년 전부터 - 그거 외에도 이것저것 많았지만,
그 시초가 어디서 비롯했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 떡밥도 인간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 에리히 폰 데니켄 (Erich Von Daniken)의 소행이었을 줄이야.

<사기꾼의 면상을 똑똑히 보시라.>


정말 5대양 6대주 어디에서든 이 사람의 피폐한 정신세계 때문에 피해를 본 인간이 너무 많은 거 같다.

40년 전, 이 작자가 "신의 전차"를 처음 썼을 때 그 헛소리를 그냥 정신병자의 망상 정도로 치부한 댓가가 이렇게 국제적인데, 환빠들의 헛소리를 그냥 이득 없는 망상으로 치부했다가는 또 어떻게 될지........

문득, 광화문 교보문고 역사 코너의 거의 4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그 환빠 떨거지들의 책들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이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내가 왜 환빠와 이 작자의 얼굴을 오버랩 시킬수 밖에 없었는지, 아마 톡톡히 알 거라 본다.

데니켄의 다채로운 주장에 대해서는,
http://en.wikipedia.org/wiki/Erich_von_Däniken 와 거기 달려있는 온갖 떨거지 링크 페이지를 참조하시도록.


오늘 박정희 혈서 관련 기사를 보고 문득 생각난 노래........"혈서지원" by 진성당거사


오늘 박정희 혈서 관련 기사를 보고 문득 생각난 노래가 있었다. 옛날 SP음반으로 내가 소장하고 있는 노래.

1943년에 오케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이 부른 노래, "혈서지원 (血書志願)".

제목만 들어도 군국주의와 싸이코스런 냄새가 풀풀 풍기는 노래랄까. 어떻게 이런 소재를 대중가요로 할 생각을 헀는지. 일제 말엽 조선을 통치하던 일본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막장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노래를 부른 가수들, 왼쪽부터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



<노래 듣기>




<가사 - 원본 가사지의 내용 그대로 전재>


1.

白)무명지 깨물어서 붉근 피를 흘려서 
日章旗 그려 놓고 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ㅅ자 쓰는 事然 두 글ㅅ자 쓰는 事然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2.
朴)海軍의 志願兵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달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感激에 못니기어 손끗츨 깨무러서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志願합니다 


3.
合)나라님 허락하신 그 恩惠를 잊으리 
半島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4.
南)半島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피ㅅ줄 
한나라 지붕아래 恩惠닙고 자란몸 
이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5.
合)大東亞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츰 
구름을 혜치고서 솟아오는 저 해ㅅ발 
기쁘고 반가워라 두손을 合掌하고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1940년대 일본에서는, 당시 레코드의 원료였던 셸락(Shellac)을 온통 군수물자로 쓰게 되었다. 그래서 원료가 부족했던 탓으로, 이 레코드는 두꺼운 판지를 안에 넣고 그 위에 셸락을 얇게 코팅한 식으로 제조되었다. 음반 상태 자체는 매우 깨끗하지만 - 워낙 노래가 유치한 탓으로 거의 듣지 않은 듯 싶다 - 레코드 안쪽의 판지가 부식되면서 레코드 표면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 덕택에 음질도 나쁜 편이고.

이 노래는 해방 후와 6.25 전쟁 중에 보훈처가 가사를 아주 살짝만 바꾸어 "혈청지원가"라는 군가로 사용했기에, 이 노래를 더러 멀쩡한 대한민국의 군가로 기억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이 개사(改辭)에 대해서는 유종호 선생이 회고록 "나의 해방전후"에서 짧게 언급하신 적도 있다.

오래전 네이버 블로그에 이걸 올렸다가, 자칭 보수를 자처하는 노인네들이 "이까짓 노래 가지고 애매한 사람들 친일파로 몰다니, 너는 대한민국의 수치다" 어쩌구 하며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까지 써가며 욕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물론 그때 나는 내 블로그에 이 노래를 포스팅했을 당시 저 가수들이 친일파라고 쓴 적도 없었다. 저 노래가 파시즘으로 뒤범벅이 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욕을 했을지언정.

그리고 하나 더, 이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이 '친일 행위'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친일파'라고
도매금으로 묶여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염상섭이나 윤봉춘, 한용운, 심지어 김사량 같은 사람들도 모두 친일파로 묶이게 될 테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친일 행위가 잘못이 아니라거나, 저런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을 변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글루스 강호제현들께서는 잘 알아채실거라고 믿는다.


아래는 노래 다운 링크.








P.S.

당시 블로그에 올라왔던 덧글 가운데 그나마 수준이 제일 괜찮았던 덧글. 2006년 8월 20일에 작성된 글이다. 글이 좀 난삽하지만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놓는다. 글쎄, 남인수 같은 경우에는, 1940년 당시 일 년에 당시 돈으로 2만원 가까이 벌어들이고 있었는데. 이런 거 외에도 몇몇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아래 덧글에서처럼 친일가요를 불렀던 행위가 고육지계였다는 말이 통할런지는 모르겠다.


'친일'의 개념은 이런 것이 아니오. 나라 없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활동하는 대중 연예인들의 시국(時局)에 관한 정보(특히 '일제 패망'이란 '유비통신(流飛通信)')는, 지금 '**연구소'에 몸뚱이만 앉혀 놓고 서류 따위나 뒤적거리는 '책상물림' '지식인'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고. 특히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는 시기, 이제 '총독부'를 밀치고, '일제 군부(日帝軍部)'가 전면에 나서서 무자비하게 설쳐대는 광기(狂氣)와 폭거(暴擧)는 오늘만을 안일하게 살아 있는 그대들의 상상력이나 사고 체계로는 결코 제대로 된 인식괴 이해에 도달하지도 못할 것이오. 그리고 솔직히 말해, 20대에서 30대로 갈까 말까 한 젊은 나이에 촉망(囑望)받는 장래성(將來性)을 다 포기한 채 용감하게 총칼들고 망(亡)해 가는 적국('대일본제국(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버릴 앙으로 전선(戰線)에 나가겠소, 아니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뱌랑 끝에서 피(避)할 길만 있으면, 그까짓것 무슨 소리든 입으로만 좀 나불거려 주고 살 길로 빠지겠소? 그래서 가사는 별 문제가 아닌 것이라오. 그래도, "조명암-박시춘-남인수 콤비"는 끝까지 조선어로 노래했고, 앞서 불렀던 "의무제(강제) 시국 가요"의 내용을 뒤엎어 가며 노래했으니, "친일 가수"라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망발이지요(수천만 명의 조선인이 몇 년 동안을 아침마다 회합 때마다 수천, 수만 번을 한창 "요배"하고 "서사"를 외우고 있었던 그 때 그 당시에 '의무제'에 걸려 두세 번(곡) 불렀던 그 노래는 다음 활동을 접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고욕지계였지요. 이 당시에는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 있었답니다. 氣가 막힌 이야기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오? 대답은 스스로 찾아 보기 바라오!



한옥을 위한 悲歌...."한옥 지키려다 실명한 영국인" 기사를 읽고.. by 진성당거사

기사 링크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103150000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5049.html

<우리의 주인공, 데이빗 킬번 씨와 부인 최금옥 씨>



<그 분들의 보금자리,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31-79번지>


1.
사실 나는 킬번 씨와 안면은 살짝 있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가을에 킬번 씨 댁에서 열렸었던 문화행사에 비록 구경꾼이긴 하지만 살짝 참가했었으니까. 그리고 이 분이 하시던 전통 차 박물관에도 종종 들렀었고.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뵙게 된 어느 유명하신 작곡가/피아니스트 한 분과 대화를 하다 이 분들 얘기가 나와서, 한국인들은 한옥을 기회만 생기면 때려부수려 하는데 영국 사람이 도리어 홀로 한옥을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서로 개탄하며, 한국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
.
.
.
.
.
2.
그 후로 이 분 근황은 요즘에 잘 듣지 못했는데 (전부터 아프시다는 말은 좀 들었지만), 오늘 기사가 난 걸 보고 또다시 분노의 물결이 머리를 휘감았다.

가회동 31번지, 그리고 그 주변의 거의 모든 지역에는 이제 콘크리트 벽돌 위에 대충 회칠만 하고, 실제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목조 기둥 몇개나 겨우 세워놓고서 기와만 얹은 뒤 화방벽으로 마감해놓는, 사실상 아파트나 다름없는 비슷비슷한 '한옥' 만 가득 들어섰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명박과 오세훈 등등, 이 나라의 윗대가리라고 자처하는 작자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개무시할 뿐이고. 한옥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며 기사나 책을 쓰는 사람들도, 결국 대부분은 '투자가치가 높은 부동산'이라는 결론만 내놓으려 할 뿐이다돈만 아는 천민자본주의자들의 세상이란 다 이런 걸까
.
.
.
.
.
.
3.
지난 5년 사이, 특히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있었던 기간 동안 서울 시내의 역사적인 옛 한옥집들이 거의 대부분 헐려나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일단 내가 직접 목격한 사례만 얘기해볼까?

2003년 1월, 부암동의 현진건 옛 집을 시작으로 (연립 주택을 짓기 위해 소유주가 문화재 가지정 직전 기습철거를 해버렸다)
그해 10월에는 우이동에 있던 최남선의 옛 집, 소원(素園)이 완전히 헐려나갔으며 (상가와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2004년에는 원서동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옛 집이 새로 사옥을 지으려 했던 한샘 디자인에 의해 절반 가까이 헐려나갔고,
2005년에는 박목월의 옛 집이 3시간 만에 굴삭기에 의해 아작나버렸다. (나는 철거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그해 9월에는 대한매일신보의 주필 어니스트 베델이 직접 지어 살던 독특한 한옥집이 단숨에 헐려버렸다.
2006년에는 청량리의 김동인 옛 집 - 김동인이 전쟁 중에 죽은 바로 그 집 - 도 헐리고 그 자리엔 연립주택이 생겼고,
2007년에는 성균관대 근처에 있던 시인 김수영의 생가가 소유주에 의해 단 1시간 만에 때려부셔졌다.

나중에 관련 정보 보충해서 이 부분은 따로 포스팅을 해 보겠다.

서울시가 요 몇달 전에 새로 지원했다는 한옥 보조금 2억 4천만원은 결국은 위에서 얘기했던 쓰레기 가짜 한옥 건축과 멀쩡한 도로 다시 포장하는 돈에나 들어간다. 한번 가회동과 안국동, 체부동 쪽에서 그 실체를 똑똑히 확인해보라.

나는 그나마 한옥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조금이라도 알고, 이 기사를 읽고 정말 가식없이 분노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운인것 같다.
 
 

P.S.

데이빗 킬번 씨가 홈페이지 메인에 썼던 글,

Heritage is a visible expression of culture and history. For each nation, it is a tangible testimony of their roots

without which their present would be impoverished and their future would become sterile and empty.

Cultural heritage contributes to the development of a sense of citizenship and a sense of belonging.

It contributes to the quality of life and to the character and beauty of our living enviroment.


구구절절히 옳은 말이다. 번역도 있긴 하지만, 가카와 그 떨거지들은 아무래도 Vulgar한 한국어보다는 상국의 언어 English를 더 좋아할 것 같아, 혹시나 이 누추한 블로그에 이들이 한번이라도 와준다면 이걸 읽어줬으면 한다.

추가 읽을 거리, 그리고 이 나라의 윗대가리들이 정말 이런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목격하고 싶으면,
저 두 분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로 가 보실것.

데이빗 킬번 씨의 홈페이지 : http://www.kahoidong.com/
최금옥 씨의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jadekilburn

떡밥춘추 2호......받았습니다. by 진성당거사



 저같이 변변찮은 사람의 글을 곧장 실어주시니, 떡밥춘추회지제작위원회 소속 본좌님들께 그저 굽신굽신.......ㅠㅠ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조공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악희님, Chosun Real Prison Gangbang이라니요....ㄷㄷㄷ;;;;

1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