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방명록......... by 진성당거사

2012년을 맞이해서, 저도 본격적으로 방명록을 하나 게시해볼까 합니다.

1.
이 블로그는 주인장의 전공 분야이자 주요 관심사인 역사와 문화재에 관련된 글 위주로 나갑니다. 약간의 선동글도 포함됩니다.
배움이 그리 많지 않은 일개 학부생의 글인 관계로 선동글이라도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밖에, 어쩌다 찔끔찔끔, 주인장이 좋아하는 1980년대 이전의 음악, 영화, 책 등등에 대한 잡담도 올릴 예정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업데이트가 그리 자주 있지는 않지만 올해 5월을 기점으로 달라질 듯 합니다.

2.
블로그에 연재 계획인 글들이 여럿 있고, 조만간 그 중 한 두가지는 글을 써서 올려볼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3. 이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글은 주인장의 개인적인 신념인,

실증주의,
탈민족주의,
反식민사학,
反유사역사학,
과학적 회의주의,
호고(好古)주의,
무신론-불가지론

이라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4. 따라서 이 블로그는,

해체주의에 입각한 얼치기 포스트 모더니즘,
국수주의,
식민사학,
유사역사학,
막무가내식 상대주의,
사이비 反독단론,
과도한 종교적 편향성 및 근본주의

등등은 철저히 배제하며 또한 경멸합니다.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지고 본 블로그의 어떤 글에든 덧글이나 트랙백을 다는 경향 제위께서는 통보 없는 덧글 삭제 및 아이디 차단을 미리 각오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비로그인 덧글쓰기는 이미 차단되었습니다.

4. 주인장에 대한 안부 인사나 개인적인 질문, 또는 쓴 글 이외의 별도의 문의사항이 있을 시에는 이 방명록을 이용해 주세요.

5. 2012년 한 해도 이 블로그를 찾는 모든 경향 제위께 만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선동글) 이혈건강요법 강좌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by 진성당거사

(이 글은 지난 3월 20일에 제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썼던 글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공익근무기간 중에는 신변 문제도 살짝 있고, 또 주변 사정도 있고 해서 올리지 못하다 뒤늦게 올립니다.)

근래에 주민자치센터 사무실에 내려가서 이곳 일을 보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히 사무실 바로 옆방에 있는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수업 내용을 고스란히 듣게 된다. 방음이라고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건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개는 이곳에서 어르신들이나 주부들 대상으로 생활영어 강좌 등의 교양강좌가 있는데, 오늘 모처럼 이곳 자치센터의 주요 인기강좌인, "이혈건강요법" 수업이 있었다. 남양주시 전역의 자치센터들 가운데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개설된 강좌라는데, 꽤나 인기가 많아서 옆동네서부터 심지어 퍽 먼 곳에서까지 사람들이 와서 강의를 듣는다고 한다. 

전부터 이런 식의 대체요법 강좌를 소위 국민의 혈세를 받아 운영하는 기관에서 왜 강좌로 개설해야 하는가에 대해 크나큰 의문이 있었지만, 어쨌든, 무슨 얘기나 하는가 해서, 업무 보조 도중에, 틈틈히 이 수업 진행 내용을 고스란히 들었다. 30여명이 넘는 중년-노년층 중심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이 이혈요법 강사는 - 60대 중반의 할머니 - 수업 중에 간간이 청중들을 웃기면서, 재치있는 언변으로 열렬히 이혈건강요법의 장점을 설파하고 있었다. 강의력 하나는 기막히게 좋았다. 물론, 내가 여지껏 접해본 그 모든 대체요법 강좌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라는 것은 말짱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일단, 이 강사는 수업 중에 이혈요법의 원류로 황제내경을 걸핏하면 들먹였는데, 뭐,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황제내경이라는 책은 냉정하게 따져서 거의 2,000년 전에나 쓰여진 구닥다리 책인데다, 그 내용의 모호함과 부정확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물론 한의학 하는 사람들이야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걸핏하면 레퍼런스로 삼지만. 게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이 강사 할머니는 아마 황제내경의 황자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도대체 이혈요법이라는 것이 사실 황제내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건 알까? 이혈요법은 고대 중국과는 거리가 무지 멀어서, 1957년에 프랑스의 돌팔이 신경의학자 폴 노지에 (Paul Nogier)라는 사람이 기존의 사이비 이론인 지압학 (Reflexology) 지도를 귀에 대응해서 아무렇게나 만든 사이비 이론일 뿐이다. 국내에 도입된 것은 경희대 한의원의 모 교수가 1980년대에 이 이론에 대해 주워듣고 다시 자기 식대로 개량해 놓은 것이다. 사이비는 개량해봤자 사이비의 또 사이비일 뿐이지만. 

이 강사 할머니가 얘기하는 구체적인 내용도 가관인 것이 (이 사람이 물론 이혈요법의 진짜 "전문가"라고 한다면), 귀에 있는 특정 혈이 각각의 장기에 대응하기 때문에, 귀를 눌러주거나 이침을 놓거나 하는 것 만으로도, 심장병, 당뇨, 성기능 장애는 물론, 심지어 신종플루까지 완전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기약이나 인슐린을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며 권유를 하지 않는가. 이런 모든 내용들이 중언부언으로 반복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정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수업 도중에 잠시 쉬는 시간이 있는 동안, 마침 이 강사 할머니가 다음 수업때 쓸 수업자료를 복사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왔다. 수업교재로 쓸 몇 장의 프린트를 하필이면 내게 복사해 달라고 해서, 복사를 하며 내용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존의 "이혈지도"를 또 다시 강사 개인의 경험에 의거해 임의대로 수정하고 교정해놓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사이비의 사이비의 사이비인 셈이다. 이건 다른 얘기이지만, 이 강사가 펜으로 쓴 부분을 보니 맞춤법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심지어 가나다 순서도 헷갈리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수업이 다 끝나고, 강사 할머니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미처 몰랐지만, 자원봉사로 업무 보조를 하러 왔던 이 동리의 주민자치위원 (*50대 초반의 중년 여성) 과 미리 약속을 해서,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이침을 시술해주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사무실 한켠에 있는 긴 소파에, 강사 할머니와 이 자치위원 아줌마 둘이 마주앉아 이침 시술에 돌입했다. 강사 할머니는 꼬질꼬질한 자기 핸드백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때에 절고 땀자국이 잔뜩 밴 낡아빠진 작은 손가방을 하나 꺼내면서, "이게 내 왕진가방이야" 라며 쿡쿡거렸다. 그 안에는 이침 놓는 도구가 여러개 들어있었는데, 이것을 소독도 하지 않고 가방 안에 든 헌 천조각으로 쓱쓱 문지르고는 시술 준비를 끝마쳤다. 뭐, 젬멜바이스 이전의 19세기 병원도 아니고, 이건 2차 감염이나 오염, 또는 환자의 켈로이드 반응을 조장하겠다는거랑 다름 아닌가?

그러면서 강사 할머니는 환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증상을 알아보겠다는 건데, 이런 식이었다. "음, 가만있자, 어디어디가 아프지 않어?"라는 질문에 환자가 "네"라고 하면, "내가 그럴 것 같더라고, 귓불 여기가 하얘."라는 식으로 답하고, 환자는 다시 끄덕끄덕. 반면 "아니오"가 나오면, "음, 아닌데, 귀 여기를 보면 이렇거든? 이런 증상이 아직은 없나본데 조만간 생길지도 몰라" 하는 식이다. 환자는 역시 또 끄덕끄덕. 자세히 들어보면, 대략 열대엿개 정도의 질문 가운데 12~13개는 다 틀린 소리였고, 그나마 맛춘 2~3개는 사실상 갱년기 이후 한국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다들 호소하는 증상 (기억력 감퇴, 혈액순환 장애, 그리고 허리 통증)이었다. 이거야 말로 완벽한 고전적인 "선택 편향오류 (Selection bias errors)" 아니던가. 제임스 랜디와 마이클 셔머, 그리고 리차드 도킨스 등등의 책에서 여지껏 봐왔던 사례를 눈앞에서 바로 접하니 착잡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강사 할머니가 이침 시술을 끝마쳤다. 환자의 귓불 곳곳에 이침을 놓고 그것을 꾸깃꾸깃한 솜 거즈 따위로 싸면서, "이녁은 몸에 기가 전반적으로 허한지 침이 잘 안들어가네. 그거 안 떨어지게 시간날 적마다 꾹꾹 눌러봐요". "으악!"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날 돌아봤지만, 내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기에 이윽고 다시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정말, 생각 같아서는 당장 강사 할머니를 붙잡고 "이런 말도 안되는 헛짓은 그만하시지요"라며 일장 연설을 하고 싶었지만, 일개 공익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 처지에 절망하며 결국은 비겁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혈요법 강사 할머니가 돌아간 후에야, 주위 사람들에게 슬쩍, "아까 이혈요법 강의하시는 거 들었는데, 좀 앞뒤가 안맞는 얘기를 하시는 것 같네요" 라고 말을 꺼냈지만, 곧바로, "얘는, 그럼 저 분이 이쪽에 교육받은 전문가인데 뚱딴지같은 소리를 막 할까봐? 얼른 일이나 마저 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물론, 나 역시 이혈요법 강좌를 개설한 이곳 주민자치위원회나, 이혈요법 강사들이 동네 주민을 악의적으로 해치기 위해 이런 것을 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자치위원회 딴에는 동리 사람들의 웰빙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테고, 강사 본인 역시도 "사람들이 이침 맞으면서 좋아지는거 같다고 하면 그만이지 뭐 그런걸 가지고 토를 다느냐"고 얘기할 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딱 잘라 말하지만, 이혈요법은 내가 보기에, (*수많은 내외 의학자들이 단언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로) 기껏 좋게 봐야 플라시보 효과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좋게 말하니 "대체의학"이지, 이건 사실 진짜 의학, 즉 "기존 의학"과 나란히 서지도 못하고 무너질 허섭쓰레기일 뿐이다. 비유를 들어 말해, 미국으로 여행을 가려는데 배나 비행기로 가는 "기존 여행"을 쌩까고서, 마음 속의 염력을 이용해 "대체여행"을 하겠다는 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정당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진료비나, 그 진료비 부담을 덜어줄 의료보험에 돈 내기는 그렇게 아쉬워하면서도, 월 3만원이나 되는 돈들을 이런 헛소리 강좌에 선뜻 내놓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 중에는 심지어 월 45만원 미만의 생계비를 타먹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있다) 정말 땅이 꺼질듯한 한숨이 난다. 그리고, 국민의 혈세에서 뗀 지원비로는 정상적인 운영이 택도 없어 늘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는 이 주민자치위원회도, 그나마 그 피같은 지원비의 꽤나 많은 부분을 이런 사이비 비과학적 이론을 떠드는 강사에게 내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일개 "밥값도 못하는" (동사무소 모 공무원의 표현) 공익 녀석이 떠든 것 치고는 너무 긴데다 막나간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래서는 안될 것 같다.


(*이 글은 난생 처음 과학밸리로 보내봅니다. 저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관심이 있는 몇 가지 분야에만 교양수준 전후의 얄팍한 지식이 있는 사람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에 제 과학적 식견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잡담) 드디어 공익근무가 끝났습니다. by 진성당거사

(*오늘 글은 이것저것 넋두리성이 강할 듯 싶지만 그래도 잘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방금, 그러니까 2012년 5월 14일 자정을 기해서 저는 공식적으로 공익근무요원 복무에서 완전히 소집해제된 민간인이 되었습니다. 2010년 5월 13일(목)부터 2012년 5월 13일(일)까지, 정확히 731일 동안 (*2012년이 윤년이지요) 근무한 셈입니다.

뭐랄까, 돌이켜보면 그 동안 복무 중에 스트레스도 쌓였고, 답답한 일도 많았고, 또 힘든 일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동사무소를 비롯한 행정관서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남들보다 이제 훨씬 훤하게 되었고, 대인 관계라던가 하는 부분에서도 훨씬 발전이 있었고, 책임감을 더 키운 것도 같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일과로 해왔던 것들에서 벗어나 다시 새로운 생활패턴을 찾아야 한다는게 뭔가 살짝 설레기도하고 또 조금은 두렵기까지도 합니다. 빨리 적응해서 하루하루를 공익때보다도 더 열심히, 짜임새 있게 살도록 해야겠지요.

<1. 되돌아보는 주중 일과 (2010. 6.11 ~ 2011.12. 8)>  

오전 5시 : 기상. 침구 정돈 및 목욕, 아침식사.
오전 5시 30분 ~ 6시 : 양치. 이메일 확인 (* 근무지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하기 떄문에).
오전 6시 15분~30분 : 버스를 타고 출발 (여름, 겨울) / 자전거를 타고 출발 (봄,가을)
오전 7시 10분 ~ 40분 : 근무지 동사무소에 도착. 상황근무자 출근까지 기다림.
오전 7시 50분 ~ 8시 : 상황근무자와 같이 동사무소 출근.
오전 8시 10분 ~ 50분 : 바닥 청소, 점등, 자동문 전원 켜기, 각 문의 자물쇠 열기, 문서 파쇄기 비우기, 화분 물 주기, 창문열기
오전 9시 - 공식 업무시작 

 주요 업무 : 민원24 (어디서나 민원) 신청 접수 및 처리,
                 세무 (제증명 발급),
                 농지원부,
                 대형폐기물 배출스티커 교부 및 정산
                 관내 인감대장 정리 및 전출입 관리
                 각 분기별 관내 공공근로 근로자 신청 안내 및 관리
                 공휴일, 민방위 훈련기간 중 태극기/민방위 깃발 관내 도로변에 게양
                 농협 지점에 민원수수료 및 기타 공금 납입
                 관용 우편물 / 안내 우편물 우체국 송부
                 구내 커피 자판기 청소 및 요금 관리   
                 기타 자질구레한 바깥 일 (*동사무소 국기 교체, 관내 불법현수막 제거, 시정안내 벽보/현수막 설치 등등)   
                                 
오후 1시 ~ 1시 50분 : 점심시간. 2층 회의실 옆 골방 또는 1층 뒷방 휴게실에서 잠시 쉬거나 바깥 산책 나갔다옴.
오후 2시 ~ 5시 50분 : 업무 계속 수행.
오후 5시 50분 ~ 55분 : 폐지 및 이면지 파쇄, 매일 분 인감 정리, 일일복무상황부 작성, 자리 정리, 민원수수료 정산영수증 출력 
오후 6시 : 동사무소 업무 마치고 퇴근. 
오후 6시 40분 ~ 7시 : 귀가
오후 7시 ~ 7시 30분 : 목욕, 컴퓨터
오후 7시 40분 ~ 8시 : 저녁식사.
오후 8시 이후 : 자유시간.
오후 10시 전후 : 취침.

2011년 12월 8일부터 소집해제 전까지의 약 5개월 동안은 근무지를 동사무소에서 몇 블럭 떨어진 관내 주민자치센터로 옮겼습니다. 자질구레한 청소나 시설 관리 외에는 업무가 많이 줄었고, 근무지의 특성상 개인적인 시간도 틈틈히 많이 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일과는 거의 똑같이 계속 지켰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어떻게든 부지런하게, 열심히 근무하려 노력했습니다. 공익근무라는 것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든 대충대충 흉내만 내든 복무기간이야 어떻게든 똑같게 흘러가고 보수도 똑같이 나오는 거지만, 이왕이면 허송세월하며 대충 지내기보다는 그래도 일을 게을리 한다는 지적은 절대로 받지 않고 나름 인정받으며 복무하고 싶었거든요. 한마디로, 기껏 "공익 하는 주제에" 라는 말은 어디 가서 듣기 싫었습니다. 덕택에 저와는 생각이 다른 선후임 공익들 몇몇의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끝까지 이렇게 흐트러지지 않고 일한 게 그저 뿌듯합니다.


<2. 여남은 말 몇 마디>

1.
공익근무를 하필 행정관서에서 하다보니 느낀 거지만, 확실히 공무원 조직이 어떤 곳인지, 공무원 사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떤 모순이 있는지가 그리 오래지 않아 조금씩 눈에 들어오더군요. 제 주변에는 공무원을 단순히 수입이 보장되어 있는 소위 신의 직장 운운하며 벌써부터 공무원 시험만 마냥 준비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막상 내부관찰자 시점에서 공무원들의 업무 환경이나 사정을 보게 되니, 이 직업도 역시 다른 직장이나 사회적 위치와 별다를게 없고 오히려 더 힘들다면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적"을 어떻게든 내기 위해 미친듯이 안간힘을 쓰면서 자기 앞만 보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철밥통"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대충대충 무사안일 공무원도 있었지요. 시기, 질투, 술수, 기만, 조작, 방조, 도둑질, 직무유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결쟤"와 "승인", 그리고 "검토" 등등의 사이에는 "효율"이란 찾기 어려웠습니다. 중앙관서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의 대부분은 순도 100퍼센트의 "탁상공론"이었구요. 뭐, 취직이 머나먼 얘기인 일개 대학 휴학생이 제멋대로 지껄이는 소리이니 너무 깊게 들으시면 골룸합니다만, 확실히 공익근무요원 주제였어도 이건 뭔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몇 번이고 있었지요.

2.
동사무소 근무하는 동안 사건사고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홍수와 산불 따위의 자연재해도 겪었고, 도난 사고나 강도 등의 일도 있었고, 자살사건과 살인사건도 관내에서 벌어졌었지요. 심지어 이곳 동사무소 관계자가 저지른 범죄사건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일의 경우는 같은 곳에서 일하고 알고 지내던 사람이 그랬다는 사실이 제게 있어서는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또 환멸감이랄까 하는 것도 많이 느껴졌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여기에 적기에는 원체 껄끄러운 소리라 쓰지 않겠습니다만, 앞으로도 또 그런 일이 제 주변에서 터지면 그때는 정말 견딜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3.
이 동사무소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행정관서 배속 공익근무요원/사회복무요원들의 고충이겠지만, 공식적으로는 공무원과 그 보조직원들이 맡아야 할 일을 공익근무요원들이 대신한 것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가령 제 주요업무였던 세무 제증명이나 민원처리의 경우도 본래의 담당자는 창구 근무 공무원들이지만 "인원과 시간의 문제"로 결국은 저희가 떠 맡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시청에서의 인사발령 및 보직이동이 1년에도 3~4차례 씩 있다보니 결국에는 책임소재가 있는 담당자들이 자기들의 명목상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한 일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인감대장 정리 및 전출입 정리 업무의 경우도, 공무원처럼 비밀취급인가도 없는 공익들에게 개인의 사진,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지문, 인감 등을 취급하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원칙상으로는 불법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4. 
또 한 가지 매우 씁쓸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시민의식이랄까 하는게 정말 뿌리깊게 자리잡으려면 많이 멀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동사무소 근무하면서 단 하루도 민원인들이라는 사람들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근무한 동사무소가 위치한 곳이 아무래도 저개발지역이고, 농지 및 자연부락이 상당 부분인 동네인만큼 시민의식이랄까 하는 부분이 도회지보다는 조금 떨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기열을 새치기하거나 사용한 서식 제멋대로 두는 것 같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정해진 절차와 법규는 지키려 들지 않고 무조건 언성만 높이는 태도, 나만 잘났고 공무원 포함 다른 사람 모두는 다 틀렸다는 유아독존적 모습, 먹다남은 쓰레기를 바닥이나 화장실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는 모습 등등을 매일같이 반복해 보다보니 정말 지치더군요. 혹여 나도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도 들고 말이지요.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훌륭하게, 어디 부끄러운 오점 없이 공익근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마치게 되어 저는 만족하고 또 행복합니다. 

남대문 복원 공사 짚어보기 - 1 - 남대문은 결국 현대 건축물이 되는가? by 진성당거사

(이하 본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의 상당수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PDF 파일로 올려져 있는 각종 보고서 문서파일에서 전재한 것들입니다. 무단 전제나 복사를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 관련 문제가 있을 시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Prologue>

최근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문화재 도서" 코너에는 서울 숭례문 (이하 남대문) 복원공사와 관련된 일련의 용역보고서 및 홍보 책자 들이 PDF 파일로 무료 공개되었다. 이 내용을 다 읽고 나서 결국 느낀 건 대단한 실망감이었다. 역시 문화재 보존의 제 1원칙,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절대 다시는 그 가치를 되찾을 수 없다" 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본 블로그에서는 이들 문화재청 용역보고서들을 중심으로 올해 안으로 완료될 예정인 남대문의 복원 공사에서, 어떤 점들을 한번쯤 다시 생각하고 되짚어봐야 할지 두세차례에 걸쳐 나눠 살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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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3월 8일, 서울 남대문의 복원 공사현장에서는, 복원 공사의 마무리 단계라 할 수 있는 상량식이 거행되었다. 각 언론이 이 행사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수많은 관련 사진들이 인터넷 보도자료로 올라왔다.

그런데, 잠깐, 당시 찍은 아래 사진들을 한번 보자.

눈에 보이는 부재의 거의 절대 다수가 완전히 새로 치목된 새 목재임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물론, 2008년에 저렇게 타버린 남대문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층부 부재의 거의 모두가 새로 사용되었을 거라는 거라는 예상은 누구든 했을 것이다.
자꾸 보고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볼 수 밖에 없는 처참한 광경.
남대문 방화 사건 바로 다음날의 모습이다.
사진에도 역력히 드러났듯, 문루 2층은 거의 대부분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이전부터 계속해서 이 문제에 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또한 관련 포스팅을 두어번 했었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첫째, 화재 후 수습된 기존 부재 가운데 수리공사 시 교체하지 않은 원래의 부재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둘째, 이들 수습부재 가운데 실제 복원공사에 활용된 것은 얼마나 되는가? 

문화재청에서 공개한 자료들 가운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하고 (주)삼성건축사사무소와 한국건축역사학회가 편찬한 "숭례문 화재수습부재 조사보고서" (2009.7.) (이하 수습부재 조사보고서)와, 충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편찬한 "숭례문 목부재 연륜연대 분석 및 기증목재 기초조사 연구보고서" (2011.9.) (이하 연륜연대 보고서) 가 오늘 살펴볼 부분과 관련해서는 가장 주목할 만한 자료라고 하겠다.
 
먼저, 첫번째 의문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Q1: 화재 후 수습된 기존 부재 가운데 수리공사 시 교체되지

 않은 원래의 부재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2008년 화재 이후 약 2년 동안의 기초수습 작업이 진행된 이후, 2010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문루 구조물의 해체가 이루어졌고, 그 해 말까지 이 작업이 완료되었다.

그 후, 충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주도로 2011년 4월 5일부터 그해 10월 2일까지, 수습된 부재들에 대한 집중적인 연륜연대 측정이 이루어졌다. 연륜연대 측정이란,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에 남아있는 나이테를 조사해 그 목재의 벌채 연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모든 나무는 생장하면서 마치 바코드처럼 완전하게 동일한 형태의 나이테 모양을 이루게 된다. 이를 통해 최외각 연대, 즉 목재에 남아있는 마지막 바깥쪽 나이테의 시점을 확인하면, 나무가 벌채된 해를 오차 없이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따라서, 관련 기록이 미비하거나 없는 건축물이나 목조 유물의 나이를 정확하게 확인하는데 방사능 연대측정법보다도 훨씬 더 유용한 기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관련 연구가 진행된 유럽의 경우 현재 무려 기원전 10,000년까지 이르는 목재 나이테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고, 일본과 중국의 경우도 기원전 1.500년까지 이르는 나이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관련 연구가 시작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고, 그동안 진행된 연구도 매우 미비해 현재로서는 서기 1170년 이후의 약 840년 어치 데이터만 확보된 상태이다. 

어쨌든, 충북대학교 측의 연구로 확인된 주요 건축부재 목재 절대 연대는 다음과 같다.
(*이하 도표는 "연륜연대 보고서" P.48에서 전재)

 
문루 1층 부재 연대측정 결과

문루 2층 부재 연대측정 결과
(* 연대 표시가 없는 것은 화재로 인한 손상 등으로 인해 나이테의 연대 측정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보시다시피, 태조 때 초창된 당시부터 남아있는 목재는 극소수이며, 구 부재 중 대다수는 세종 때 있었던 개축 때 집어 넣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그 마저도 소수이며, 기둥 40개 가운데 29개와 대부분의 구조체는 모두 1961년에 교체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도표 자체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본 도표에서 "(구) [부재명]" 으로 표기된 것들은 부식이 너무 심해 재사용이 불가능해서, 1961년의 보수 공사 때 건물에서 분리해 별도로 보관하고 있던 부재들이다. 즉, 이것들은 모두 화재 이전의 건물에서는 1961년에 신재로 교체되었던 것들이다. 

종합해보면, 기존에 있던 숭례문 문루의 상당 부분은 이미 1961년에 있던 대규모 수리공사로 이미 대부분 새 부재로 교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2008년까지 봐 왔던 남대문은 이미 그 뼈대 대부분이 20세기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이미 유네스코 국제 기념물 유적협의회 (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ICOMOS)에 의해 채택된 베니스 헌장의 9조와 11조를 위반하는 것이지만, 이 헌장 자체가 남대문 보수공사보다 뒤에 성립된 것이고, 또한 1961년 당시의 여건에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왈가왈부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의문점으로 넘어가보자.


Q2: 이들 수습부재 가운데 실제 복원공사에

활용된 것은 얼마나 되는가? 


일단 제일 처음의 사진 두 장에서도 알 수 있듯, 문루 2층의 피해 정도가 원체 심각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부분이 신재로 대부분 채워 넣어졌을 것임은 누구든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구체적인 활용도는 어떠했는가?

이와 관련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수습부재 조사보고서"와, 명지대학교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편한 "숭례문 손상 목부재의 재활용 방안연구" (2009.2.) (이하 "재활용 방안연구")를 참조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문화재청에는 PDF 파일이 없고, 국회도서관 웹사이트에서 PDF파일 뷰어로 열람이 가능하다.

먼저, "재활용 방안연구"에서 앞서 지난 2009년 2월에 잠정적으로 결론 낸 표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미 아주 많은 부분의 부재를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짓고 있다. 다만 표에 제시된 수량이나 내역이 구체적이지 못해 자세한 내역을 알기 어렵게 되어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수/보강" 으로 구분된 목재들인데, 이것들은 합성수지나 볼트 등을 사용해 충전 및 강화를 시키거나 또는 탄화된 목재의 겉 부분을 새롭게 치목하거나 또는 다른 나무의 외피를 입혀 재가공하는 방안을 통해 재사용하는 것이다. 즉, 이것들은 사실상 목재를 다시 치목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목재 가공 부분은 절단 또는 박리되니 문화재적인 가치는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6개월이 흐른 뒤 나온 "수습 부재 조사보고서"에서 제시된 보다 구체적인 재사용 여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사 당시 문루 잔해의 해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가 육안으로만 진행된 하층 기둥이 조사 내용에서 누락되어 있다. 일단 이 표만 보아도 재사용이 가능한 목재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하지만 보고서 본문 192쪽에 따르면, 상층 및 하층의 전체 잔존부재의 육안조사 결과, 그 가운데 재사용이 불가능한 C와 D에 해당하는 부재가 각각 전체의 29.9퍼센트와 31.3퍼센트로 도합 61.2퍼센트에 이르며, 재가공이 필수 불가결한 B등급의 목재는 33.5퍼센트에 해당한다. 즉, 아무런 재가공 없이 다시 사용이 가능한 A등급의 목재, 즉 "순수하게 원래 남대문에서 나온 부재"는 고작 5.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탄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마저도, 위에 제시한 잔존 부재의 연륜연대 측정 결과와 맞추어 종합해보면, 기실 복원 공사에서 재사용된 목재는 결국은 거의 모두가 1961년 교체된 부재 뿐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결국 이 모든 결론을 따라 종합해보면, 올해 12월에 모습을 드러낼 새로 복원된 남대문은, 아주 극소수의 부재 일부를 제외하고는 20세기와 21세기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현대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전부터 본 블로그에서 얘기했던 바이지만, "테세우스의 배" 상황이 정말로 벌어진 셈이다. 이런 식이 되어버린 이상, 숭례문의 문화재적 가치는 2008년의 화재로 완전히 소멸된 것이 명백해 보인다. 국보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국보 지정에서 해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애초에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고 말이다.

여기서 잠깐, 다시 되짚어보는 대한민국 문화유산헌장 전문.
여기 쓰여있듯, "문화 유산은 한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이킬수 없다"



(다음 파트에서는 남대문의 외장재, 특히 기와에 대한 글을 짧게 써보려 한다.)

(잡담) 여러가지 근황보고........ by 진성당거사

1.
공익근무 소집해제가 드디어 일주일 남짓 남았습니다. 5월 13일에 끝나지요. 자고로 옛 말에(?), 국방부 시계는 안 돌아가는 거라 했지만, 행정안전부 시계도 안 돌아가는 건 마찬가지였는데, 그래도 어쨌든 시간이 가긴 갔습니다. 소집해제가 되고 나면 그 동안의 소회를 좀 여남은 넋두리로 몇 줄만 써 볼까 합니다. (어쨌든 복무 중에는 쓸 수 없는 얘기였으니까요) 공익근무 하면서, 현역에 비해 몸은 덜 힘들었을지 몰라도, 근무 시간 중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진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조만간 한두마디 쓰겠지만, 개인적인 트러블도 좀 있었구요. 그래도 이제 그 스트레스니 안 좋은 기억들이니, 다 훌훌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2.
성인전문 영어학원에 보조강사 자리를 구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저녁 시간대에 출강하고 있지요. 시급 만오천원 받는 일이라 그래도 당분간 주머니 사정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공부도 같이 하고, 또 지난 2년 새 할 일이 적었던 영어 대화도 이왕에 많이 해볼까 합니다. 어차피 복학을 내년에 하게 될 것 같으니 적어도 올해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3. 
지지난주 목요일부터 드디어 살을 빼려고, 헬스 다니고 식이요법 하는 중입니다. 그 동안 열심히 했더니 9킬로 정도 빠졌네요. 몸이 확실히 가벼워졌습니다. 이 속도로 세 달 동안 꾸준히 빠지기만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한데, 뭐랄까, 뇌로 영양소가 기존처럼 공급되지 않는 모양인지, 요 며칠새에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평생 처음 기억력 감퇴현상이랄까 하는게 몇 번이고 있었습니다. 몸이 빨리 적응해서 이런 현상이 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4. 
본래 오늘은 간만에 좀 제대로 된 포스팅을 하나 해 보려 했습니다. 이전부터 계속 얘기해왔던, 남대문 복원에 대한 조금 더 강도가 쎈 (건설적인) 비판 글인데, 생각보다 글쓰는 진도가 더디어지는데다 다른 사정들이 계속 생기는 통에 아무래도 오늘 안에 다 쓰기는 좀 힘들 것 같네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5.
엊그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무더기로 빌려왔습니다, 특히 신착도서 칸에 꽃혀있던 故 이근직 선생의 "신라왕릉연구"도 잽싸게 집어가지고 왔습니다. 이전부터 경주 지역에 산재한 전칭 신라왕릉들 고증 문제에 관해 관심이 많았는데, 이 책을 쭉 읽어보니 이 문제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심각하더군요. 그래서 이근직 선생의 합리적인 고증과 비정이 훨씬 더 값지고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이 분이 사고로 너무 일찍 유명을 달리하신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엊그제 야스페르츠 님의 포스팅에서도 봤던 식의 우스꽝스러운 현창사업의 결과물들이 경주 시내의 신라고분들 사이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모양입니다. 이 책에서 계속 소개되는 어처구니 없는 조선 후기~근대의 현창사업 사례들 중 가장 최악의 개그는 지금 경주시 보문동 423번지에 있는, 이른바 설총 묘 (경상북도 기념물 제 130호) 의 비정입니다. 이 무덤은 조선시대도 아니고 1961년에 이 고분 근처에 살고 있던 설아무개 씨의 꿈에 설총이 나타나서 계시를 해 주어 '찾아낸' 것이라 하더군요. 물론 고고학적 조사니 그런거 하나 없이 말입니다. 


6.
좌우지간, 이제부터는 포스팅을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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