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계 대마왕, 식민사학 추종한 과거를 자기 입으로 고백하다.......?! by 진성당거사

...........는 훼이크고,

엊그제 읽은 매식자붙이(악질식민빠)님의 포스팅, "마왕, 국적(國賊)의 관뚜껑을 불사르다 (http://munbba.egloos.com/2387079)" 포스팅의 출전이 일조각에서 발행한 "歷史家의 遺香" (1991)인 걸 보고.......

"흐미, 이 책을 수중에 갖고 있고 분명히 읽었었는데도 왜 이 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나...."
하는 급반성의 물결이 머리를 휘감았다. 바로 처음부터 꼼꼼히 다시 읽었다는.

그런데 매식자붙이 님이 인용하신 대담 말고 다른 대담에 이런 내용이 있어 여기 소개해보려 한다. 제발 날조매식사학하면서 이병도 죽이기 아직도 진행하고 계시는 듣보잡 병신들은 이 글 읽고 좀 정신 차려보시길.



(전략)

이기백       그러니까 아카데믹한 입장보다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민족정신을 강조한 분들이 있었고, 또 유물사관의 공식에 맞추어서 우리나라 역사를 보려는 학풍을 가진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역사를 학문적으로 착실히 보아 나가자는 입장에서 1934년에 형성된 것이 진단학회가 아닌가 합니다.

이병도       진단학회 창설 때부터 주간을 하고 있던 사람이니까 잘 알고 있지요. 동기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지요. 지금까지 얘기해 온 과도기적인 사학조류에서 좀더 벗어나서 과학적, 실증적으로 사학을 연구하자는 것이 하나고 또 하나는
일본학자들이 대개 색안경을 쓰고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으니까 이에 대해 학술적으로 항쟁하자는 것이겠지요.

그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당시 조선사편수회의 서무책임자인 오노(小野某)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불미한 일 때문에 파직을 당해서 밥줄이 끊어지자, 뭐든지 해야겠다고 해서 조선학회 (朝鮮學會)를 조직하고 今西龍을 고문으로 추대했어요. 그분 밑에 평위원으로 나, 이능화, 최남선, 그리고 일본 사람도 섞여서 『조선학보』를 내기로 했어요. 나에게 와서 원고를 하나 쓰라고 해서 우선 「삼한 문제의 신고찰」이란 논문의 제 1편을 써주었지요.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찾아와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다른 원고로 바꿔달라는 거야. 왜 무엇이 잘못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아닙니다. 우리 일본사람들 몇 사람이 돌려가며 읽었는데 이마니시 씨의 설과 정반대이니까 만약 이걸 그대로 내면 이마니시 씨가 고문을 그만두겠다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마니시 씨가 그만두면 『조선학보』는 '만사휴의'가 될 터이니, 제발 다른 원고로 바꿔달라는 거에요.

매우 불쾌했지. 정치적으로는 일본놈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지만, 진리 탐구에도 일본놈에게 굽힐 게 뭐 있냐는 생각이 들고 화도 나서 못써주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꾸 빌면서 애걸복걸을 해요. 그래도 안 된다고 했더니 그냥 돌아가서 다음 날 또 왔어요. 선생이 하나 써주셔야 우리가 학보를 낼 수 있으니 양보를 해야 한다는 거에요. 나는 今西 박사가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지만, 한편 불쌍한 느낌도 있어서 결국 한양천도 문제를 2회에 걸쳐서 집필해 주었지요.

그런 일이 있자 이윤재 씨가 한성도서주식회사에 교섭을 해서 인쇄비 등 모두 부담할 터이니 학회를 조직하라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조윤제 씨 집에서 준비 회의를 갖고 '프라타나' 다방인가에서 발기 총회를 했어요. 이름을 무어라고 하면 좋은가 하고 상의를 했으나 좋은 이름은 모두 일본인에게 빼앗겼으니 '진단(震檀)'이라고 하자고 내가 발론했어요. 震檀이란 옛부터 내려 온 말이니까요. 이렇게 震檀學會가 생겼지.

(후략)

<『한국학보』4, 1976, 가을 >

- 진단학회 編, 「근대 한국사학의 발전 - 두계선생과 이기백 교수의 대담 (1)」, 『歷史家의 遺香』, 일조각,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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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마니시 류의 [신라사 연구] 2009-08-08 11:21:45 #

    ... 장되는 이병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2. 그 점에 대해서는 진성당거사님이 한 번 포스팅한 바도 있다. 두계 대마왕, 식민사학 추종한 과거를 자기 입으로 고백하다...?! [클릭] 진성당거사님이 인용한 내용 일부를 다시 옮겨본다. 그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당시 조선사편수회의 서무책임자인 오노(小野某)란 ... more

덧글

  • 초록불 2009/07/22 13:32 #

    역사가의 유향은 사보려고 했는데, 헌책방에 사겠다고 하기만 하면 책이 없는데요...로 대답이 돌아오는 통에 여태 보지를 못했네요.
  • 야스페르츠 2009/07/22 13:59 #

    두계 친일설을 유포하는 자들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조선일보에 두계가 올린 글을 "직접" 보여줬는데도, "역시 이병도가 회계했다"라고 말하더군요. 정신병자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더이다. ㅠㅠ
  • 나츠메 2009/07/22 14:15 #

    "회계"는 재무 관리에서..... ㅎㅎㅎ
  • 야스페르츠 2009/07/22 14:19 #

    쿨럭. 이병도가 원래 수학을 잘했다능... (퍽!)
  • rumic71 2009/07/22 15:29 #

    '오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게 웬지 마음에 걸리는군요. 뭐 전혀 신경쓸 필요 없는 일이지만.
  • 耿君 2009/07/22 22:54 #

    서기 중에 오노 도쿠조[小野德三](1925~1929 재임)란 사람이 있었는데 혹 그 사람이 아닐지;;
  • 아야소피아 2009/07/22 19:00 #

    증거 보여줘도 소용없죠... 그들은 눈뜬 장님일 뿐입니다.
  • 매식자붙이 2009/07/23 00:36 #

    두계마왕은 자신의 학문적 성취 이상으로 걸출한 제자들 덕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를 전민족적 거물로 만들어준 것은 소위 재야사학(...)이겠지만.

    환빠님들과 떡사마는 더러운 매식고대사학계가 이병도의 학설을 맹종하는 것처럼 인식하지만, 정작 두계는 제자들이 자기 학설을 안 따른다며 투정하기도 했었죠.
  • 진성당거사 2009/07/23 10:05 #

    잘 아시겠지만 매식자붙이님이 인용하신, '역사가의 유향'에 실린 정홍준 교수와의 대담에서 두계마왕이 이렇게 말하죠.

    "내 제자인 이기백, 김철준 등이 잘 하고 있어요. 물론 그들 나름의 입장에서 잘 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은 내 학설을 좇기도 하고 안 좇기도 하는데 내 개인 생각에서는 내 학설을 안 좇는 데에는 좀 미흠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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