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보고 왔습니다. by 진성당거사


1.

그것도 10월 4일 기준으로 그 누구보다도 빨리 봤습죠. 한국미술사에 관심 많은 선배 하나와, 성균관대 다니는 친구와 함께, 아침 8시 30분부터 표를 미리 끊고 기다린 끝에, 개장 되자마자 만사를 제치고 뛰어서 전시실 끝에 당도, 결국 누구보다도 먼저 볼 수 있었습니다.

꼭 15분 동안 봤는데, 정말 거의 60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림과 글씨가 참으로 생생한 것은 정말 놀라웠습죠. 복제품이나 도록으로는 절대 느끼지 못할 감격이었습니다. 펼쳐놓은 글씨 중에는 두말할 것 없이 이개와 신숙주의 글이 글씨나 그 내용이나 가장 돋보이더군요. 이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거의 눈물이 다 났습니다. 거의 스탕달 신드롬 수준이었달까요.

(1996년에도 보기는 했었습니다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안목이고 뭐고 없던 어린애였죠.)


2.

하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몽유도원도 말고도, 전시실 전체에 걸쳐 한국의 미술사와 역사를 대표하는 Best of Best만 모아놓았는데도, 관람객 대다수가 그 나머지에 거의 신경 쓰지 않고 휙 지나가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니 제발 관람객 여러분들은 그 나머지 유물들에도 좀 신경 써주길.

(*그리고 왜 그렇게 줄 서는거에 짜증내면서 직원들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건지. 에티켓도 못 지키면서 몽유도원도같은 '고상한' 그림을 보러 왜 오는 겁니까? 아, 그리고, 거기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몽유도원도는 일본인에게 '약탈된' 물건이 아닙니다. 최소한 그 반출과정은 어이없을 정도로 합법적이었죠.) 

전시실 입구의 순종황제 어진 초본이나 중간 전시실의 석조여래좌상 복원품, 훈민정음, 창경원 장서각 (제실박물관) 청사진, 변상벽과 강세황의 초상화 작품들, 미륵사/왕흥사 사리장엄, 회암사 약사여래도/나한도 등등은 처음 공개되는 유물인데도 사람들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신안 해저유물이나 황남대총 유물도 거의 15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것도 있는데 다들 그냥 줄 서서 넘어가기에만 바쁘고요. 그리고 이대 박물관에서 온 전설의 "죽음을 부른 도자기", 백차철화포도문항아리나, 얼마전 다시 복원된 화엄사 꽃병 (홍치 2년명 항아리)은 어쩜 그렇게 구석에 처박아놨는지. 그 두 도자기는 전시장 가운데에 놓고 사방에서 볼 수 있게 전시해야 마땅한 것을, 한쪽 벽면으로 몰아놓으니 참 답답하더군요.

그리고 군데군데 패널 설명에도 오자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도대체 '유섭' (우현 고유섭)이 누구냔 말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와 아사카와 다쿠미의 한자도 틀려놨더군요. 사택지적비 원문 해석에서는 정월 9일을 9월로 번역해놨고요. 

하여튼, 전시 유물은 정말 기가 막히게 훌륭한 것들이었지만, 전시 자체는 참으로 엉망진창이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뭐 이거야 한국 박물관 행정의 고질병이긴 하지만, 적어도 소위 Centennial Exhibition인데 이 모양 이 꼴인건 좀 아니지요.


덧글

  • 나츠메 2009/10/04 17:10 #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ㅎㅎㅎ 일반인들은 한국 미술사에 대해 잘 모르니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설명을 자세하게 써 놓던가, 특정 유물에 집중하여 홍보하는 형태에서 탈피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되겠지요.
  • dunkbear 2009/10/04 17:27 #

    홍보부족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네요. 몽유도원도 외에 가치 있는
    다른 유물도 많다는 박물관과 언론 홍보 부족이랄 수 밖에는...
  • 을파소 2009/10/05 13:47 #

    오늘은 시간관계상 몽유도원도만 봤고, 추석 전날에는 몽유도원도를 못 보고 다른 걸 봤죠. 시간이 된다면 오늘도 다른 유물을 보고 싶었지만 오후에 회사에 나와야해서..ㅡㅡ; 다른 작품들도 나올 예정이니 두세번은 더 가야겠습니다.

    추석 전날 다들 몽유도원도에 몰린 덕에 상설전시관에서 하는 겸재 정선 전시회는 비교적 여유롭게 볼 수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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