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정희 혈서 관련 기사를 보고 문득 생각난 노래........"혈서지원" by 진성당거사


오늘 박정희 혈서 관련 기사를 보고 문득 생각난 노래가 있었다. 옛날 SP음반으로 내가 소장하고 있는 노래.

1943년에 오케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이 부른 노래, "혈서지원 (血書志願)".

제목만 들어도 군국주의와 싸이코스런 냄새가 풀풀 풍기는 노래랄까. 어떻게 이런 소재를 대중가요로 할 생각을 헀는지. 일제 말엽 조선을 통치하던 일본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막장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노래를 부른 가수들, 왼쪽부터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



<노래 듣기>




<가사 - 원본 가사지의 내용 그대로 전재>


1.

白)무명지 깨물어서 붉근 피를 흘려서 
日章旗 그려 놓고 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ㅅ자 쓰는 事然 두 글ㅅ자 쓰는 事然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2.
朴)海軍의 志願兵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달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感激에 못니기어 손끗츨 깨무러서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志願합니다 


3.
合)나라님 허락하신 그 恩惠를 잊으리 
半島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4.
南)半島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피ㅅ줄 
한나라 지붕아래 恩惠닙고 자란몸 
이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5.
合)大東亞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츰 
구름을 혜치고서 솟아오는 저 해ㅅ발 
기쁘고 반가워라 두손을 合掌하고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1940년대 일본에서는, 당시 레코드의 원료였던 셸락(Shellac)을 온통 군수물자로 쓰게 되었다. 그래서 원료가 부족했던 탓으로, 이 레코드는 두꺼운 판지를 안에 넣고 그 위에 셸락을 얇게 코팅한 식으로 제조되었다. 음반 상태 자체는 매우 깨끗하지만 - 워낙 노래가 유치한 탓으로 거의 듣지 않은 듯 싶다 - 레코드 안쪽의 판지가 부식되면서 레코드 표면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 덕택에 음질도 나쁜 편이고.

이 노래는 해방 후와 6.25 전쟁 중에 보훈처가 가사를 아주 살짝만 바꾸어 "혈청지원가"라는 군가로 사용했기에, 이 노래를 더러 멀쩡한 대한민국의 군가로 기억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이 개사(改辭)에 대해서는 유종호 선생이 회고록 "나의 해방전후"에서 짧게 언급하신 적도 있다.

오래전 네이버 블로그에 이걸 올렸다가, 자칭 보수를 자처하는 노인네들이 "이까짓 노래 가지고 애매한 사람들 친일파로 몰다니, 너는 대한민국의 수치다" 어쩌구 하며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까지 써가며 욕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물론 그때 나는 내 블로그에 이 노래를 포스팅했을 당시 저 가수들이 친일파라고 쓴 적도 없었다. 저 노래가 파시즘으로 뒤범벅이 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욕을 했을지언정.

그리고 하나 더, 이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이 '친일 행위'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친일파'라고
도매금으로 묶여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염상섭이나 윤봉춘, 한용운, 심지어 김사량 같은 사람들도 모두 친일파로 묶이게 될 테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친일 행위가 잘못이 아니라거나, 저런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을 변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글루스 강호제현들께서는 잘 알아채실거라고 믿는다.


아래는 노래 다운 링크.








P.S.

당시 블로그에 올라왔던 덧글 가운데 그나마 수준이 제일 괜찮았던 덧글. 2006년 8월 20일에 작성된 글이다. 글이 좀 난삽하지만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놓는다. 글쎄, 남인수 같은 경우에는, 1940년 당시 일 년에 당시 돈으로 2만원 가까이 벌어들이고 있었는데. 이런 거 외에도 몇몇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아래 덧글에서처럼 친일가요를 불렀던 행위가 고육지계였다는 말이 통할런지는 모르겠다.


'친일'의 개념은 이런 것이 아니오. 나라 없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활동하는 대중 연예인들의 시국(時局)에 관한 정보(특히 '일제 패망'이란 '유비통신(流飛通信)')는, 지금 '**연구소'에 몸뚱이만 앉혀 놓고 서류 따위나 뒤적거리는 '책상물림' '지식인'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고. 특히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는 시기, 이제 '총독부'를 밀치고, '일제 군부(日帝軍部)'가 전면에 나서서 무자비하게 설쳐대는 광기(狂氣)와 폭거(暴擧)는 오늘만을 안일하게 살아 있는 그대들의 상상력이나 사고 체계로는 결코 제대로 된 인식괴 이해에 도달하지도 못할 것이오. 그리고 솔직히 말해, 20대에서 30대로 갈까 말까 한 젊은 나이에 촉망(囑望)받는 장래성(將來性)을 다 포기한 채 용감하게 총칼들고 망(亡)해 가는 적국('대일본제국(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버릴 앙으로 전선(戰線)에 나가겠소, 아니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뱌랑 끝에서 피(避)할 길만 있으면, 그까짓것 무슨 소리든 입으로만 좀 나불거려 주고 살 길로 빠지겠소? 그래서 가사는 별 문제가 아닌 것이라오. 그래도, "조명암-박시춘-남인수 콤비"는 끝까지 조선어로 노래했고, 앞서 불렀던 "의무제(강제) 시국 가요"의 내용을 뒤엎어 가며 노래했으니, "친일 가수"라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망발이지요(수천만 명의 조선인이 몇 년 동안을 아침마다 회합 때마다 수천, 수만 번을 한창 "요배"하고 "서사"를 외우고 있었던 그 때 그 당시에 '의무제'에 걸려 두세 번(곡) 불렀던 그 노래는 다음 활동을 접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고욕지계였지요. 이 당시에는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 있었답니다. 氣가 막힌 이야기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오? 대답은 스스로 찾아 보기 바라오!



덧글

  • 초록불 2009/11/05 21:24 #

    한 핏줄을 강조하면서도 나랏님과 대동아공영권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 재미있군요. 재미는 있는데, 씁쓸합니다.
  • 消爪耗牙 2009/11/05 22:19 #

    정치적으로 올바른 견해는 재미가 없어서.

    수분과 비슷한 비율로 인체를 구성하는 미지의 성분인 '까분' 의 발산을 위해서도 유명인사들은 까일 짓을 해줘야 함.
    연아님과 팩느님 빼고.

    그리고 사람은 일단 까고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사리가 생김...
  • 어릿광대 2009/11/07 20:59 #

    이건 가사만 봐도 ㄷㄷ하군요;;
  • 2009/11/07 22:1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떡벌 2009/12/11 11:55 # 삭제

    역시 개덕일답군요.ㅎㅎ
    친일 좃선일보 방상훈의 충견 개덕일이 박정희의 친일을 찬양고무한 것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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