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국립경주박물관에 버젓이 남아있는 '만파식적'...(!) by 진성당거사


방금 초록불 님의 에밀레종 포스팅을 읽고 문득 생각나서, 전에 써뒀던 글을 올려본다. 에밀레종이랑 별 상관은 없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신라시대 유물이 지금까지 전래되어 남아있다는 건 기막힌 일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이 지금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 버젓이 남아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
아니, 뭐, 그 전설을 그대로 믿으라는 소리는 아니고, 이것이 문제의 만파식적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국립경주박물관에 '신라 옥적(玉笛; 옥피리)'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옥피리 하나가 현재까지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 (물론,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은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은 다 아실터.)

아래 사진은 문제의 물건. 



위 사진은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것을 업어온 것. 이 유물이 가장 최근에는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의 특별전에서 (별 주목받지 못한 채) 전시된 바가 있지만, 쓸만한 최근의 사진자료가 통 없어서 그냥 일제시대의 사진자료를 스캔해 올렸다.

일단 사진에 있는 대로,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에 옥으로 만들어진 피리가 두 개 들어있다. 이 두 개 가운데 진짜 '만파식적'은 앞에 있는 거무죽죽한 물건이다. 상자의 자물쇠 부분에는 월성, 안압지, 첨성대 등이 선각으로 새겨져있고, 자물쇠 자체의 모양은 에밀레종의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그런데 140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도대체 어떻게 이 물건이 지금껏 남아있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여기서는 간략하게 이 '만파식적'이 어떻게 21세기인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는지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삼국유사에 잘 나와 있듯이 경주 월성의 천존고에서 보관하던 '만파식적'은 신라가 멸망하면서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가, 고려 광종 때 경주에 객사 동경관을 새로 지으면서 이 건물로 옮겨 보관했다. 그러나 초기에 동경관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이 피리도 불에 타 세 조각으로 깨졌는데, 이것을 납으로 땜질하고 그 위에 은테를 둘러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연산군 때에는 연산군이 이를 조정에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냥 흐지부지 된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전해져 내려오던 이 옥피리는 다시 임진왜란 때 경주 관아가 쑥대밭이 되면서 없어졌다. 그 후 광해군 때의 경주 부윤이 '신묘한 옥피리가 없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옥피리의 옛 모습을 상고하여 새롭게 만들어 보관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저 사진에서 뒤에 보이는 또 다른 피리이다. 

하지만 숙종 16년인 1690년, 동경관에서 근무하던 향리 김승학이 폭우로 무너진 동경관의 담장을 보수하다가 전란 중에 누군가가 감추었던 것으로 보이는 문제의 옛 옥피리를 찾아낸다. 김승학은 죽을 때까지 이 피리를 집으로 가져와 몰래 보관하였는데, 그가 죽자마자 당시의 경주 부윤 이인징(李麟徵)이 그의 유족에게서 이를 압수하여 다시 동경관에 갖다 놓았다.

(이상의 내용은 이 옥피리가 들어있는 상자의 뚜껑에 새겨져 있는 내용과 '동경잡기' 등의 기록을 참조했다.)

혹시나 누군가한테 필요할까봐서, 옥피리가 들어있는 상자 뚜껑의 명문을 원문대로 옮겨놓는다.
방점 표시 이런 건 일일이 다 끊기 귀찮아서 그냥 안했다.

上之三十二年余尹東京不變山河物唯徑尺玉笛然中入回祿今藏董黯點粉粹者十數片也歲壬申州人金承鶴者於客舘毁垣掘土得一枚而私閟之守不謹而折其央然後爲人所發而輸諸官其制三節九孔圓直象竹徵于破片頗近特其色白碧殊盖亦羅代舊物也嗟夫白旣歷數千年碧亦歷數千年經變故不一再而白顯則碧沉白毁則碧出古國遺器將泯而復傳命物者意亦豈偶然也然酆釰再合爲千古異事若使白不歸灰爐而碧都其出更唱迭和於月城凰臺之間則物之神而迹之異奚遽不若哉重爲慨也於是滓白蠟融粘之裝以白金藏諸匱而幷記其顚末于此以爲後人考云上任之翌年正月人日識.


이후에는 이 옥피리에 대한 기록이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영조 임금이 "경주의 신묘한 옥피리는 조령 고개 넘어가면 소리가 안난다면서?"라고 말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도 있고, 정약용이 쓴 짧은 글, "계림옥적변(鷄林玉笛辯)"도 있다. 정약용의 글은 다음과 같다. (실학자 답게 살짝 Skeptical한 뉘앙스를 풍기는 글이긴 하지만 여하튼 재미있다.) 역시 방점표시 없으니 알아서들 해석하시라. 그닥 어렵지 않다.

慶州有玉笛一新羅舊物也他人吹之不能聲唯慶之工得聲之然且有一工能之則他工不能聲其人死而後有代而聲之者出焉國朝嘗徵此笛與能聲此笛者在途吹弄其聲嘐亮至鳥嶺之北笛忽啞旣至京縣之重賞而聲之聲竟不出令帶之還至鳥嶺之南而吹之其聲依然玆所謂靈奇而不可詰者也余曰此詐也見其笛肉肥而管窄無異乎出聲之艱也出聲艱故他人猝然遇之不能聲慶之人童習老專而得擅其藝也方一人之擅藝也諸人不苟習也至其乏而承之其必死而後出者妄也若夫至北而啞尤其詐也橘渡淮爲枳鸚鵒不踰沔者彼其有動植之性隨地氣之冷煖而有所變異也若笛頑石也惡有是哉黠奴恐笛之不還而己之被留也爲之詐以神其說而人且靡然聽信不復究其理也大抵人莫不樂誕以自愚故爲之辯.

그러나 이 물건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은 1909년 창경원에 '어원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시초)이 들어서면서였다. 당시 경주를 방문했던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통감이 "이런 진귀한 물건은 마땅히 어원박물관에서 수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물건은 만들어지고서 거의 처음으로 마침내 경주 땅을 벗어나 창경원 박물관에 전시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옥피리는 1929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이 들어설때 까지 서울에 계속 전시되었다. 식민사학자로 악명 높은 이마니시 류가 1912년에 이 물건을 감정하고 논문을 하나 쓰기도 했다.

1929년에 돌아온 이 옥피리는 그 후 1973년에 새로운 국립경주박물관 건물이 완공되어 박물관이 이사를 갈 때까지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과 금요대와 함께 밀폐 전시실에 놓여 전시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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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 하나, 이 물건이 과연 신라시대의 유물이기는 한건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확실하게 해 줄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훈, 장사현 등의 분석에 따르면 이 옥피리는 분명히 남아있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악기와는 완전히 다른 운지 형태와 취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중국 수당시대의 피리와도 유사한 모양이라고도 한다. 신라시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최소한 무척 오래된 악기인 건 틀림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고작 길이 55cm에 지나지 않는 조그만 옥피리가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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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들꽃향기 2009/12/24 23:04 #

    일전에 제가 아는 음악하시는 분이, 확실히 송대 이후 아악이 한번 재조정되면서 나온 피리와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다만 그것만으로 '만파식적'이라 하긴 힘들고 신라 혹은 고려 초기의 고적(古笛)이라는 점은 저도 공감하고 싶습니다.
  • 진성당거사 2009/12/24 23:10 #

    그렇죠. 무엇보다도 삼국유사에, '만파식적'은 대나무로 만든 물건이라고 쓰여있지 않던가요.
  • 초록불 2009/12/24 23:04 #

    오호, 그렇군요. 듣고보니 어디선가 한 번 들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상세한 내용은 처음이군요.



    그리고... 그닥 어렵지 않다의 포스...^^
  • 이레아 2009/12/25 01:34 #

    어... 그런데 옥을 납으로 땜질하는게 가능한건가요... 어라??
  • 我幸行 2009/12/25 07:09 #

    옥을 금으로 때움니다. 납은 금보다 강도가 낮지만 땜질이 불가능하지는않을 것 같습니다.
  • 我幸行 2009/12/25 07:13 #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소시민 2009/12/25 09:35 #

    한편 연산군 때에는 연산군이 이를 조정에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냥 흐지부지 된 모양이다

    - 연산군에게로 올라왔다면 만파식적의 운명은 어찌됬을련지 궁금해지네요.
  • 耿君 2009/12/25 14:12 #

    이런 걸 떡춘에 올려도 좋았겠네요 ㅎ
  • 어릿광대 2009/12/25 14:19 #

    신라시대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지금까지 남은건 대단하네요..
  • ..... 2009/12/25 16:19 # 삭제

    전 유럽에 흩어져있는 '예수의 성유물'을 전부 짜맞추면 거대 기형 괴물이 탄생.....
  • 한단인 2009/12/25 19:00 #

    우와... 문헌을 그대로 존중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긴 몇천년 된 죽간도 가끔 발굴이 되니깐 신라 말 대나무 악기라고 해서 발견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어요.
  • 2009/12/31 02: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12/31 22: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슬기로운생활 2010/01/18 21:37 # 삭제

    이 글, 제 블로그 '스크랩 게시판'에 담아가려하는데요(물론 출처를 밝히고), 문제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좋은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 )
  • 역사관심 2013/06/15 00:39 #

    오래전에 읽었던 글인데 귀수산관련 글을 읽다가 다시 역검색으로 왔습니다.
    다시 읽어도 흥미찬란한 글입니다.
    만파식적추정 피리...저 피리는 지금보다 훨씬 유명해질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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