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는 훨씬 긴 영화였지만, 현존하는 것은 1998년에 러시아의 고스필모폰드 영화 아카이브에서 발견된 9분 남짓 되는 일부분입니다. 필름의 보존 상태가 굉장히 열악한데다, 사운드도 굉장히 음질이 나쁘고 화면과 핀트가 잘 맞지 않습니다. 그나마 제가 약간 사운드를 보정하고 음량을 높였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부분은 어느 마을 (충청북도 청주군 사주면 사창리)의 구장 어른이 긴긴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경작지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신사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는 등의 갖은 애를 쓰다가 쓰러지는 장면입니다. 쓰러진 구장 어른이 그를 부축하기 위해 달려온 두 여인네에게 말하는 긴 설교 내용이 특히 하이라이트라 하겠습니다.
한국영화총서에 따르면 전체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하지만 한국영화총서의 줄거리 기록은 몇몇 인물들의 기억이나 당시 광고 따위에 의존하여 집필된 경우가 많아서 내용에 대단히 오류가 심하기 때문에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닙니다.
주인공 이옹(翁)은 지나사변이 일어나자 마을 청년들에게 시국과 일본군의 분투를 들려주는 한편 근로보국을 목표로 하는 공사장에 나가 열심히 일한다. 그 후 일본군이 남경을 점령하자 이옹은 손수 일장기를 만들어 동네사람들을 이끌고 신사에 참배하고 공동 경작지를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모든 이익을 저축보국으로 돌렸다. 어느 날 병을 얻은 이옹이 없어져 사람들이 그를 찾았는데 그는 일장기 아래 두 손을 짚고 일본 궁전을 향해 죽어 있었다.
이 영화는 해방 후에 김화랑으로 이름을 바꾸고 악극단 활동 및 코미디 영화 연출을 한 이순재가 감독 및 각본을 맡았고, (한국영화총서에 따르면) 김건, 복혜숙, 김일해 등의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일본이 중일전쟁 발발 이후 본격적인 전시국가체제를 갖추고 식민지 조선을 '총후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키려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무렵의 작품인만큼, 당시 시대상이 잘 묻어나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프로파간다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개봉 당시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금방 잊혀졌다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건, 등장인물들이 알게 모르게 '내지'(일본) 사람들에 대한 경쟁심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점인데, 이 점은 특히 생각할 수록 복잡해지는군요.
긴 말은 더 하지 않겠습니다. 이글루스 여러분들께서 각자 감상해보시길.
P.S.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충청북도 청주군 사주면 사창리가 지금 행정구역으로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제 지명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알고 계신 분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보다 이런 자료를 볼 수 있어서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랄까 링크 신고 합니다.
지금도 하고 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