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 by 진성당거사

친척 관계라는 것은 가끔씩 전혀 뜻밖의 결과물(?)을 내기도 하지요. 가령 조지 W.부시와 버락 오바마, 그리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전부 먼 친척 관계라는 것은 꽤나 잘 알려진 사실이죠. 환빠들이 툭하면 대마왕 취급하는 이병도 박사도 결국은 대략 이완용과 38촌 정도의 친척 관계인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얼마전, 공익 근무 들어가기 전의 끔찍할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려, 위키피디아의 아무 항목이나 랜덤으로 읽어내려가다가, 우연히 아돌프 히틀러의 가족 관계를 정리한 페이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히틀러의 조카 이름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William Patrick Hitler (March 12, 1911 – July 14, 1987)" 

순간 떠오른 생각은,

"으잉? 뭐지 이건? "빌헬름 파트리크 히틀러"가 아니라 윌리엄 패트릭이라고?? 이 자식 나중에 창씨개명이라도 했나?

곧장 위키피디아 항목을 읽고서, 그의 인생 역정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대한 다른 몇가지 책들을 읽고 보니, 참으로 뭐랄까, 충분히 이글루스 포스팅 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야!)

뭐, 따지고 보면 저는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에드가 앨런 포의 고손자 격이 되는 사람과, 괴벨스의 외증손자 격이 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만 - 언젠가 여기에 포스팅을 할 수도 있겠지요 - . 그래도 이건 정말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되겠더군요. 

저는 2차대전사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무식한지라 - 특히 이글루스 강호제현님들에 비하면 정말 더더욱 - 이쪽 관련된 글은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여하튼 이 글은 그래도 시시껄렁한 잡담 정도 될 만한 소재는 될 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 1940년, 미국 뉴욕에서 어머니와 함께.
 

그는 1911년 영국 리버풀에서, 히틀러의 이복 형인 알로이스 히틀러 2세 (Alois Hitler Jr.)와, 아일랜드 사람인 어머니 브리짓 다울링 (Bridget Dowling)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알로이스는 그의 아버지와 14살 때 심각한 말다툼 끝에 집을 나온 뒤, 웨이터 노릇도 하고, 좀도둑질로 감방 살이도 하다 1908년 무렵에 친구를 따라 아일랜드로 건너가 날품팔이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그러다 그는 1년 후, 더블린 호텔에서 급사로 일하던 무렵, 경마장에서 만난 미모의 아가씨 브리짓 다울링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국 런던으로 야반도주를 감행한 뒤 결혼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 바로 윌리엄 패트릭이었지요. 

알로이스 히틀러와 브리짓 다울링의 혼인증명서 (위)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의 가톨릭 세례 기록 (아래)


하지만, 알로이스는 애초에 브리짓에게 구혼하면서 자신이 돈 많은 독일의 호텔 사장이라고 뻥을 쳤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들통나게 되었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금세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14년에 알로이스는 처자를 리버풀에 남겨둔 채 독일로 돌아갔고, 브리짓은 런던 북부의 혼지 (Hornsey) 마을로 이주해 그 곳에서 하숙집을 차려 겨우겨우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이윽고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알로이스 부부는 사실상 이혼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린 윌리엄 히틀러는 전쟁이 지속되고, 전 영국이 반독일 정서로 뒤덮이던 그 와중에도 별 탈없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는 동네에서 주로 애칭인 '빌리 (Billy)'로 통했는데, 학교에서는 수학, 지리, 생물, 작문 과목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착실한 학생이었습니다. 1918년에는 8살 나이로 학교 작문시간에 우등상을 타기도 했는데, 그 작문은 다름 아닌 "우리가 독일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였다는군요.

전쟁이 끝난 직후, 브리짓은 남편 알로이스가 사망했다는 독일 관청의 사망증명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알로이스가 만든 위조 문서였습니다. 두번째의 거짓말이었죠. 그가 이런 짓을 한 것은 그가 전쟁 중에 다른 독일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미 1920년 3월에는 알로이스의 두 번째 아들인 하인리히 (또는 애칭인 하인츠)가 태어난 상황이었습니다. 하인츠는 나중에 '아돌프 삼촌'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가, 결국 1942년에 대소련 동부전선에 참전 중 포로로 잡혀 고문사합니다.

하지만 이 거짓말도 약발이 별로 들지 않아서, 결국 1924년에 알로이스는 중혼죄로 독일 법원에 기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가 브리짓이 손을 써서 결국은 기소 취하됩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29년 4월, 알로이스는 브리짓에게 편지를 보내 당분간이라도 아들 윌리엄을 독일로 보내 같이 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1929년 6월, 이제 18살이 된 윌리엄은 독일로 건너오게 됩니다.

독일에서 지내던 무렵의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 1930년경.


독일로 건너온 윌리엄은 대학에 진학해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아버지 알로이스가 미국산 안전면도기 수입업체를 경영했기 때문에 한동안 그는 유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겨우 2년 남짓 지난 1931년, 윌리엄은 다시 어머니가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우선 아버지의 사업이 대공황으로 거의 망해버려서 더 이상 유복하게 살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복동생 하인츠와 그 어머니 헤드비히와의 불화가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에 돌아온 윌리엄은 시골 학교에서 작문 교사 노릇도 하고, 우체국 서기 노릇도 했지만, 한동안을 무위도식하는 실업자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1933년, 여지껏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던 자신의 삼촌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 기회를 어떻게 살려서 일자리라도 얻을 수 없을까 하고 독일로 삼촌을 찾아갔습니다.

히틀러는 갑자기 불쑥 나타난 이 영국인 조카를 전혀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일자리를 원한다는 조카의 말을 듣고 그를 작은 은행에 취직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은행이 얼마 안가서 도산해버렸고, 윌리엄은 다시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조카를 오펠 자동차 회사의 조립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했지만, 육체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윌리엄은 이 일에 금세 싫증을 내고 뛰쳐 나와버렸습니다. 히틀러는 윌리엄을 오펠 사의 판매영업사원으로 승진시켜주었지만, 이번에는 회사의 지배인과의 말다툼 끝에 해고당했습니다. 결국 윌리엄은 알로이스가 새로 차린 작은 식당의 경리를 돕는 한편, 프리랜서 기자로 이곳저곳의 잡지에 공연 비평 따위를 쓰며 근근히 살았습니다.

윌리엄은 계속 독일에 머물었지만, 히틀러의 각종 정책들과, 특히 반유대주의에는 철저히 반대했습니다. 공공연히 유태인 친구들을 도왔고, 좌파 잡지에 히틀러를 공격하는 글을 실었으며, 한번은 그 때문에 돌격대원과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유치장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히틀러는 물론 이런 '막나가는' 조카를 지독하게 싫어했는데, 심지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윌리엄을 가리켜 "신물이 나는 역겨운 녀석"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훗날, 2차대전 중 미국에서 열었던 강연에서 윌리엄은 "내가 독일에 남아있었던 건 그저 아버지와 베를린 올림픽 경기관람을 하고 싶어서였다" 라고 술회했습니다.

그러던 1938년의 어느 날, 윌리엄은 삼촌 히틀러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독일 정부의 고위 직책을 줄테니,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라"는 요구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윌리엄은 주저없이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1938년 8월, 미국의 대중잡지 "룩(Look)"에 "내가 내 삼촌을 증오하는 이유"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본격적인 반나치 운동에 참가합니다. 1939년 마침내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윌리엄은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서, 신문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약 1년 간에 걸쳐 총 1,500여차례의 반나치 순회강연을 다녔습니다.  

전쟁 때문에 영국으로 돌아가기가 힘들어진데다, 독일군의 공습으로 런던의 집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윌리엄은 어머니와 함께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 정착했고, 1942년에는 어머니와 함께 책을 두 권 쓰기도 했습니다. 이 책들은 대부분 히틀러의 사생활과 과거지사에 대한 온갖 악소문과 풍문들로 가득한, 다분히 선전선동적인 내용이었는데, 특히 '히틀러의 진짜 혈통이 유태계'라는 소문은 이 책에서 처음 비롯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2년에 윌리엄 히틀러가 쓴 책, "독일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의 표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윌리엄은 대중에게 자신이 조롱과 비꼼의 대상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많은 이들이 그가 히틀러라는 이름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었고, 또한 1930년대에 독일에서 삼촌의 덕을 보려 했던 행적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단순히 출세와 돈에 눈이 먼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행적을 그런 시점에서 바라본 글들이 꽤 있습니다만, 다분히 편파적인 내용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그는 1943년에 미군에 자원 입대합니다. 하지만 독일계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자신을 미군에 배속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요청은 마침내 받아들여졌고, 그는 1944년 7월에 유럽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는 해군의 위생병으로 복무했고, 전투 도중에 독일군의 총에 맞아 부상당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해군에 입대한 후의 윌리엄 (위)과, 1947년 제대할 때의 모습 (아래


독일의 패전 이후, 윌리엄은 그곳에서 의료용 혈청을 민간에 배급하는 임무를 맡고 약 2년 동안 더 독일에서 지내다가 1947년에 제대했습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1930년대 초 독일에서 대학 시절에 사귀었던 독일인 여자 필리스 쟝-쟈크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모계의 먼 친척 이름을 따서 윌리엄 패트릭 스튜어트-휴스턴 (William Patrick Stuart-Houston)으로 개명한 뒤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종합병원의 채혈사 및 혈액분석 연구원으로 일하며 총 4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외부 언론과의 접촉을 일체 하지 않은 채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현재 1989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셋째 아들 하워드를 뺀 다른 형제들은 전부 생존해 있고, 이들은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아돌프 히틀러의 유일한 직계 혈족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히틀러의 혈통이 더이상 이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윌리엄 패트릭 스튜어트-휴스턴(히틀러)의 네 아들들. 
각자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에서 발췌한 사진.





추가) 
사실 이게 뭐 학교 보고서도 아니고 해서 원출처는 그냥 스킵하려고 했는데,
덧글도 달리고 했으니 출처를 안 적을수는 없겠습니다. 

Bradley F. Smith, Adolf Hitler; His Family, Childhood, and Youth, 1967.
Wulf Schwarzwaller, The Unknown Hitler: His Private Life & Fortune, 1989.
Bridget Dowling-Hitler, The Memoirs of Bridget Hitler, 1979 (*originally published in 1942).
Steven Lehrer, Hitler Sites: A City-by-City Guidebook, 2002.
Francis Trevelyan Miller et al., History of World War II, 1945. 

이밖에, 지난 2000년 The New Yorker 지에 실린 기사를 비롯해 인터넷에서 엑세스 가능한 여러가지 자료들도 역시 참고했습니다. 

덧글

  • 들꽃향기 2010/04/29 02:52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작 외모조차도 거의 틀린 히틀러의 조카는 반나치주의자인 것도 모자라....;;;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파간다의 선봉이 되었군요.....ㄷㄷ
    (그것도 히틀러 유태인 혈통설의 시조가 정작 히틀러의 조카였다니....그저 후샏......)

    그나저나 히틀러의 마지막 친척후손들이 참 안타깝군요...친척조상이 죄를 지었다고 후손들이 마법사가 되기로 결심하다니...으헝헝.....ㄷㄷ
  • moduru 2010/04/29 03:13 #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히틀러의 친척이 남아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직계(?) 혈통에 관한 글이 흥미롭게 보이네요.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330601011
  • 한단인 2010/04/29 05:21 #

    [그래서 이들은 히틀러의 혈통이 더이상 이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진성 마법사가 들으면 '배가 불러터졌군'라며 격노할 소리!(탕!)
  • rumic71 2010/04/29 07:24 #

    "따, 딱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결혼 못 하는 게 아니라능! 우리들 혈통은 이어져서 안 되는 거라능!"
  • 한단인 2010/04/29 10:52 #

    핑계도 좋다..라고 하고 싶지만 사진을 보니... 이건 배가 불러터진 거지요. 아님 호박씨까...(응?)
  • 초록불 2010/04/29 08:48 #

    마지막 대목에서 헉...
  • 행인1 2010/04/29 09:05 #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총통의 친척이로군요. 그나저나 마지막 대목에서...
  • 대한민국 친위대 2010/04/29 10:27 #

    총통가카를 깐 총통가카의 친척들이군요... 근데 마지막은 참. 히씨 성의 삼촌이 나쁜 (삐-)지 자손들이 뭔 죄가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들의 잘못에 대해 까고 반성하면서 할건 다 하는데 말입니다.(?)
  • 네비아찌 2010/04/29 18:01 #

    윌리엄 패트릭은 정말 절묘한 순간에 줄을 잘 섰군요. (역시 사람은 줄을 잘서야....)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искра 2010/04/30 23:36 #

    아돌프 히틀러의 직계 형제로는 이복 형 알로이스와 이복 누나 안젤라, 친동생 파울라가 있었지요.
    알로이스의 자식들에 대해선 언급하셨고, 아돌프의 마수로부터 끝내 자살하고 만 겔리의 어머니인 안젤라는 겔리 외에도 아들(루돌프)과 딸(엘프리데)이 한명 씩 더 있었습니다. 각각 아들 한명씩을 더 낳아서 히틀러의 조카가 둘이 더 있습니다. (근데 이들도 자식은 없는듯) 친동생 파울라는 평생 결혼을 안 해(윌리엄의 아들들과 같은 숭고한 결단은 아니었음) 자식이 없어 직계 혈족은 완전히 끊어질 예정이지요.
  • 밀리가미 2012/05/24 22:22 #

    아무리 그래도 미군에 입대까지 하고(이건 독일계라는 이유로 거절되었으나 대통령한테 편지까지 써서 억지로 들어간 거지만...)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히틀러 친척이지만 후손이 뭔 죄가 있다고...;;,입양이라도 하시면 성은 이어지지만 피는 이어지지 않는데...;;
  • Wish 2012/06/01 15:09 #

    블로그 켜놓고 엔하위키에서 넘어왔습니다

    진짜 후손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 2012/08/18 12: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되니츠 2013/06/20 10:26 #

    사진 설명이 하나 잘못되어 있군요. 해군 입대 전후의 사진에서, 위가 전역 할 때이고 아래 사복 정장 사진이 입대할 때입니다. 패트릭의 정복 가슴께에 포제 휘장이 하나 보일 텐데, 이것은 당시 미군이 부착하던 예비군 흉장이지요.
  • 주인백 2015/03/09 17:15 #

    얼마전에 서프라이즈에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진짜 이분 화병으로 졸도 안한게 다행,
    유대인들을 도와주고 고위직도 포기하고 미국으로 왔는데도
    안믿어줌, 군대가서 죽기살기로 싸워도 안믿어줌,.
    도대체 인간들이 남의 희생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이해력과 공감능력이 떨어질수가 있는지,.
    인간들의 극도의 무지함과 이기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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