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외로 이 사진자료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적다. 이 사진은 1910년 12월 3일에 세키노 타다시 박사가 익산 미륵사터를 방문해서 촬영했던 사진이다.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이 담긴 최초의 사진인 셈이다. 이미 조선 영조 때부터 탑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세키노가 이 곳을 방문했던 무렵에는 이처럼 정말 참담하기 그지 없는 몰골이었다.
석탑의 4면 가운데 멀쩡히 남은 건 이쪽 한 면 뿐이었고, 뒤의 세 면은 완전하게 무너져버렸는데, 세키노 본인도 조사 보고에 "이나마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적어두었다.
만약 총독부의 '긴급대책' 이 없었다면 이 석탑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 '긴급대책' 조차, 결국은 지금 눈으로 보면 대단히 몰지각하기 짝이 없는 콘크리트 땜질이기는 하지만 (사실 땜질이라는 표현도 사실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콘크리트의 양이 백 톤이 넘었다고 하니 사실상 재건축이나 다름 없었던 듯.), 그나마 이정도의 땜질도 없었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다사다난했던 지난 100년 동안 이 석탑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이제 해체 작업이 완전히 완료된 모양인데, 이걸 다시 어떻게 세울 생각일까. 뽀사시한 새 돌을 써서 탑을 아예 '복원' 할건지, 그게 아니면 다시 콘크리트 작업을 할 건지. 뚜렷한 대책이 별로 없는 모양인데 궁금하다.
기단부까지 해체한 상황이니, 이미 사실상 '백제시대의 흔적'은 모두 사라진 셈이다. 애초에 미륵사지 석탑이 무너진 것도 기단 하부 지반이 불안정하기 때문이었는데, 9층으로 복원하든, 6층으로 복원하든, 현재 상황에서 기단 하부를 완전히 파내서 새로 구축하지 않는 한은 탑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만약 이 상태로 복원 작업이 지지부진해진다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큰 석탑은 1400년의 역사 저편으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
참고로, 1964년에 유네스코 산하 ICOMOS (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국제 기념물 및 유적 위원회)가 발표한 베니스 헌장 (Venice Charter)에는 “문화재 보수의 목적은 문화재의 미학적·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있으며...추측이 되는 시점에서 중지돼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일단 조선 후기에 만들어 놓은 석축들을 제거했음에도 1층 탑신부의 모습은 커녕, 탑의 전반적인 구조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이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추측이 되는 시점'을 이미 한참 오래전에 넘겨버린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덧글
몰지각해서가 아니라 당시에는 최선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지금 메이지 덴노릉을 가보면 이 무슨 흉물이냐(...)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긴 하지만요(...).
그나저나 정말 기단부까지 해체했는데 뭘 알 수 없다면 큰일이네요. 돌을 재활용하겠다고는 하지만 택도 없을테고.
지지부진하게 철막에 가려진 상태로 10년을 넘기고 있으니.. 익산태생으로써 참 갑갑하고 답답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