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기사)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 에 대한 촌평 by 진성당거사

(기사 원문 링크)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28385.html



일단 한줄 요약 :  "내 이럴 줄 알았지..."

(1910년대 중반쯤의 광화문 사진)


정말 저럴 줄 알았다. 콘크리트 광화문도 흉물이라면 흉물이었지만, 대목장으로 신응수 씨가 결정되었을 때부터 이미 저 공사는 뭔가 크게 하자가 벌어질거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신응수 씨가 현존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인간문화재 대목장인건 사실이지만, 이제 고인이 된 다른 대목장들에 비하면 기술도, 공부도, 대목으로써의 자질도 완전히 수준 이하라는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그가 손댔던 수 많은 복원/수리 공사 가운데 지금까지 업계에서 좋은 평을 받는 건 사실상 없다시피하니까. 뭐. 이 사람의 '만행'에 대해서는 추후 본인이 책을 쓰게 되면 누누이 얘기가 나올 것 같으니 여기서는 길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이 글 중간중간에 조금씩 나오게 되어 있다.)

일단 나는 문화재청이 왜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이 해 광복절에 광화문을 공개할 예정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마 같은 빛 '光' 자가 들어가서 그런 건 아닐테지? 경술국치 100주년을 따진다 쳐도 8월 29일에 맞춰 공개하는게 이론상 맞지 않나? 게다가 광화문이 일제강점기에 완전하게 철거되었던 것도 아니고, 1951년 초엽에 가서야 폭격으로 문루가 불타버려 그제야 원형을 상실한 것인데, 굳이 광화문의 복원에 맞추어 경술국치 100년을 기념할 이유가 없지 않나?

게다가, 흙과 생석회를 섞어서 쌓아올리는 궁장을 공기 단축을 위해 양생도 안하고 마구 지어놓으면, 기사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금세 습기 때문에 균열이 가서 힘만 세게 가하면 다 무너질게 틀림 없지 않나? 아, 뭐, 신응수 씨는 그런 면에서 경복궁 내에 이미 수 차례의 전적을 올린 바 있기 때문에 더 할 말이야 없다. 조금 다리 품 팔아 볼 생각만 있다면 한번 경복궁 강녕전, 교태전, 자선당 주변의 담장들이 어떤 상태인가 확인해 보라. 지난 15년 동안 최소 다섯 차례의 땜질이 가해진 형편인데도 꼴불견이다. 자경전 옆 꽃담이 150년 동안 별 탈 없이 잘 남아있는 것과는 터무니없이 대조적일 정도로. 아래 있는 사진은 다리 품 파시는 걸 아껴드리기 위해 준비한 사진. 작년 여름 장마철을 지난 뒤 경복궁에 들려 찍은 사진이다. 사진 찍기 전 손만 살짝 짚었는데 사고석 사이의 회가 떨어져 나가 저 모양이 되었다. 저게 겨우 15년 된 회칠이라는 사실.


(이게 대한민국 궁궐 복원의 현실)


수문장청과 영군직소는 오류투성이로 드러난 북궐도형을 제외하고는 원형을 고증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거의 상상의 나래를 펴서 다시 지은 것인데, 과연 이게 1860년대에 지어졌던 진짜와 얼마나 비슷할까는 둘째치자. 몇 칸 되지도 않는 조그만 건물의 공기 까지 줄여보겠다고 산자도 안 깔았나? (저 기사는 산자를 '대나무 발'이라고 설명했는데 틀린 설명이다. 산자는 기와를 얹을 흙을 깔기 전에, 서까래의 틈을 메우고 흙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깔아 놓는 싸리나무 구조물이다.) 

개판 공법을 신응수 씨에게 물어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신응수 씨의 (자화자찬적) 책들을 읽어봐도 알겠지만 개판공법은 1980년대부터 '한옥도 변해야 산다!'는 그 자신만의 생각에서 일본 전통공법을 벤치마킹해 신응수 씨 자신이 고안한 기술이다. 물론, 일본의 기후조건과 한국의 기후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건 거의 고려되지 않고 시도된 것이다. 일본과는 지붕의 치목구조가 상당히 다른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에 개판을 깔 때 기와와 지붕의 안정성이 과연 제대로 유지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천 보탑사 등지에 시공한 것들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서서히 부식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별 탈은 없는 듯 하다. 좀더 두고 지켜 보자.)

신기술의 도입까지는 봐준다 쳐도, 이걸 신축 건물이 아닌 문화재 복원에 이용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얘기일까? 사실, 이 공법은 어디까지나 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 그리고 지붕 무게 감소효과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지붕 내구성의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태원의 승지원 - 삼성 이건희 회장 자택 - 같은 건물이나 보탑사의 목탑/금당 등의 건물 신축은 완전한 신축이니까 그렇다 쳐도, 문화재 복원에 이 기술을 쓰는 건 얘기가 다르지 않나 싶다. 사실 흥례문 복원과 근정전 해체수리 당시에도 신응수 씨는 이 공법을 여기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해서 결국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될는지는 시간이 보여주겠지만, 이미 1층 기둥과 지붕의 이음매가 살짝 뜨고 있는 흥례문의 상태를 보니 착잡하기 짝이 없다. 거기에 관계자라는 사람의 말도 가관이다. "이상이 생기면 즉각 조치하면 된다"고? 그 즉각 조치라는 건 지붕을 다 뜯어내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라는 걸 모르는가보다. 

문루 복원 얘기는 이정도로 끝내겠다. 테크니컬한 얘기가 과하게 길기도 하고, 아직 광화문의 문루 완공 상태를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니까.

어쨌든........

차라리, 분명 10여년 안에 또 한바탕 수리가 들어갈 게 뻔한 신응수 표 2010년산 광화문보다는, 콘크리트로 막무가내식 공사를 해놓고도, '앞으로 천 년은 갈 겁니다'라며 흐뭇하게 얘기하던 1968년의 현장 책임자 구일옥 씨의 자신감만용이 낫겠다. 아니, 소위 '복원'이 더 큰 아쉬움과 원형 파괴를 낳는 판국이니, 차라리 1926년에 광화문이 일제에 의해 완벽하게 철거되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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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여기서부터는 추가적이고 쇄말적인 문제들.....)

기사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어도 광화문 석축 부분의 문제도 사실 심각하다. 석축의 경우 거기에 옛날 광화문의 석재가 과연 얼마나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의 회고에 따르면, 1968년에 콘크리트 복원에 착수할 당시 이 석재들을 새 석재들과 파묻어서 뒤섞은 뒤에 지었다고 했는데, 이번에 철거 작업을 보니 그 석축 부재를 확인할 생각은 전혀 없이 그냥 드릴로 깨뜨려 폐기해버렸다. 남은 건 여장 양 옆의 석수 두 마리랑 해태상, 그리고 홍예 고임돌의 부조 석재 세 개 뿐인 거 같은데, 이걸 가지고 광화문 '복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거의 1년 이상 지지부진하게 끌었던 현판 문제도 있다. 처음 논의 당시에는 그 글씨가 '박정희의 글씨라서 군사문화의 흔적이니 교체해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갔는데, 나중에 이 문제가 수구꼴통 진영 일부에 의해 크게 불거지자 갑자기 말을 바꿔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현판이기 때문에 원형 훼손'이라는 궁색하고 거짓말투성이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전국에 교체해야 할 현판은 수백 개가 넘고 그 중에는 조선 중기까지 연대가 올려가는 것도 있다. 박정희 글씨가 보기 싫어서 교체할 바에는 전국에 널린 박정희 필 현판을 다 교체해야 역사의 형평성에 맞지 않겠나?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부석사 현판과 서울 보신각 현판을 포함한 수 많은 가로쓰기 현판들을 쓴 우남 이승만의 현판도 다 갖다 치워야 될테고. 게다가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박정희가 쓴 광화문 현판이 70년대 초반에 한번 교체되어 현재 서로 다른 필치의 두 종류 현판이 남아있다는 것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이 쯤에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아,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 
용서해다오, 나는 그 증표로 삼고저 이렇게 붓을 든 것이다.

덧글

  • 들꽃향기 2010/07/02 01:36 #

    .............;;; 일전에 우려하셨던 신응수씨 주도의 복원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군요.;;; (한편 지금 나오는 음악이 왜 하필 '레퀴엠'인지....=_=;;)

    사진으로 찍으신 15년된 회칠이 저 모양인 문제에 대해서는, 궁궐이용객들의 파손행위라는 같잖지도 않는 이유로 변명하는 것 같더군요 =_=;;
  • 프랑켄 2010/07/02 12:25 #

    다른 건 모르겠고. 근정전 보수 공사할 때 덧지붕으로 기붕 하중 줄인 것은 잘 했다고 보는데요. 아무리 한옥이 부재와 부재를 연결해주는 -특히기둥과 보쪽이 - 연결해주는 결구가 취약해서 지붕 하중이 좀 있어야 한다지만, 지붕 하중이 너무 과해서 기둥이 짜부라지고 보가 휘어지는 등 '붕괴 일보'상태였다고 하니 줄여주는 게 정상이겠지요. 그리고 흙이 뭐 단열성능 있다고 하지만, 기와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데 무게 더해서 좋을 건 없고 무엇보다도 습기를 흡수하는 특성상 10년만 지나면 서까래 썩게만드는 등 내구성에 좋지 않은데 흙은 그만 쓰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0/07/02 16:34 #

    2003년 무렵까지 근정전의 지붕이 퍽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고, 신응수 씨의 책에도 분명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렇게 쓰여 있긴 합니다만, 근정전 해체 수리 공사 당시 감리업체의 기록에는 보와 기둥 부분이 붕괴 일보 직전 상황이었다는 말은 없더군요. 문화재청 주도로 발행된 공식 보고서에서도 몇몇 부재가 파손되기는 했지만 그게 정말 건물의 전반적인 붕괴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였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심각하게 위험했던 건 경회루와 조계사 대웅전 등이었죠. 둘 다 솔직히 공학 같은 것은 싸그리 무시한거나 다름 없는 위태로운 건물이었으니까요.

    근정전의 지붕이 처지게 된 이유는 건물이 초창되었던 조선 고종 때 시공을 잘못해서 그리되었다기 보다는, 1929년 이후 제대로 된 보수 공사 없이 계속 흙만 더하고 기와만 갈아내는 번와공사만 시행한 탓에 지붕의 전체 무게가 지나치게 무거워진 탓이 크다고 봅니다. 1979년과 1988년에 있었던 번와공사는 그 중에서도 특히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이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게 어찌 되었든, 흙의 양만 적당히 유지하면 전통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시켜도 별 상관이 없는데, 거기에 안정성도 확실히 보장받지 못한 개판 공법을 시공해 넣었다는 사실이 제게는 썩 좋은 해결책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저희 학교 공과대학 건축사연구실의 전문가 분들과 얘기해 본 바로는, 덧지붕을 깔았을 경우 덧지붕에 붙게 되는 철제 못이 원 부재에 시간이 흐를 수록 파고들어 기존의 하부 구조체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고 하더군요.
  • 프랑켄 2010/07/06 13:01 #

    글세요. 제 생각에는 신응수 대목장의 안목이 더 진실에 가까운 거 같군요. 감리업체나 문화부가 전문적인 건축기관이 아닌 이상 겉만 보고 이상이 별로 없다 싶어 별 문제 없다고 볼 수 있어도 막상 수리하는 쪽은 다 알게 되는 법이죠. 더군다나 신응수 대목장은 근정전이 붕괴 직전이었다고 거짓을 말해도 얻을 수 있는 이득같은 게 없지 않습니까? 뭐 더 이상 추측은 안 하겠습니다.
    그리고 흙의 양을 적당이 유지하면 별 상관이 없다고 하셨는데, 흙을 올리는 그 순간이 바로 '과대적재'상태가 되죠. 전통 한옥은 지붕의 골 및 모양을 잡는데 적어도 15센치의 흙을 써야 하는데, 이러면 흙의 무게가 수십톤이 되는 건 예사입니다. 거기다 무거운 지와까지 올리니 기둥 및 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어마어마해지죠. 특히나 긍정전이나 경회루 같은 대형 건축물은 지붕의 골이 깊은 만큼 흙의 두께가 1미터 가까이 되니 더더욱 위험도가 높고요. 나무가 중량 대 인장 및 강도가 우수한 재료지 아주 우수한 재료는 아니니 기둥이 주저앉고 보가 부러지는 게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거죠.
    더군다나 현재 생산되는 기와는 가스 가마에 구워서 강도 및 불투수성이 아주 좋은데 비해서 무게가 재래식 기와보다 50퍼센트나 나가
    니 지붕 중량문제가 아주 중요해질 수밖에요.
  • 松下吹笙 2010/07/18 16:44 #

    한옥이 기둥과 보의 결구가 취약해서 지붕에 무게를 둬야 한다라.... 초가집은 기와집보다 대충지어도 지붕 무게가 가벼운데염. 결구가 취약해서 문제가 아니라 결구라는 결합 방식 특성상 목부재 수축과 이완을 고려하야 중력방향으로 어느정도 무게가 있으면 집이 돌아가지 않는 점이지염. 사실 그부분도 충분히 건조되지 않은 목재를 사용한 탓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10년만 지나면 서까래를 썩게 만든다라.... 몇십년 되어도 서까래 안썩습니다 --; 날림으로 공사하지 않는 이상.... 기와 잘 놓고, 보토깔고, 그아래 적심도 놓는데 왜 썩습니까 --; 그럼 전국의 한옥은 10년마다 서까래부터 보수공사해야 합니까 --; 적심을 넣는 이유가 먼데요.. 서까래를 보호하고, 지붕 무게를 줄이기 위함이 아닙니까?
  • 松下吹笙 2010/07/03 10:51 #

    산자보다 개판 공법이 더 안정적입니다. 흙이란 수분을 머금고 있어서 산자와 흙이 같이 있는 경우보다 개판이 안정적이지요. 그리고 기사를 보니 아구토 바르기전 기와를 보고 알매흙이 빠져나왔다고 하는데 이건 전통건축을 모르는 소치 입니다. 그리고 문화재 전통 공법과 신공법 논란은 이미 예전 부터 나오는 애기 입니다. 목조 문화재 수리에 있어서 보존과 원형 유지의 경계성은 참으로 애매 합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문화재 수리에 있어 대구경 목재는 수입산 목재 밖에 없어서 수입해오는 실정입니다. 그럼 문화재 원형이냐 아니냐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근정전의 경우 귀고주가 전나무로 되어 있고, 결구가 복잡하여 전단파괴가 되었습니다. 이 기둥을 소나무로 바꾸었는데 이는 구조적 안정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강회다짐 역시 20세기 후반에 문화재 기법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기법입니다. 따라서 양성기간이니 어쩌니 하는 애기도 결국 전통적인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지요. 그리고 문화재 표준 시방서에 따르면 양성기간은 1주일입니다. 하지만 기사의 궁장의 경우는 폭이 좁기 때문에 그럴필요가 없지요. 차라리 광화문 지붕의 양성기간이 문제가 된다면 모를까요.
  • 松下吹笙 2010/07/03 10:59 #

    그리고 궁장의 양성기간과 사고석담장의 줄눈을 비교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줄눈이란 결국 사고석 담장을 만든 후 줄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양성기간이 충분합니다. 그대로 노출된 채 마르기 때문이지요. 그럼 저 줄눈에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재료의 문제겠지요. 현재 문화재 표준시방서는 강회에 대한 재료가 매우 한정적입니다. 최근에 의궤나 문헌기록 분석으로 매우 다양한 강회시공법이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기법에 대한 고증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문화재청의 강회 시공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지요.
  • 2010/07/05 21:00 # 삭제

    지적하신 석축은 6.25때 피폭되어 불에 타버렸기때문에
    겉은 멀쩡해도 재사용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60년대에 복원할 당시에도 원래의 석축은 많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0/07/12 09:07 #

    김재원 관장의 회고대로라면 그래도 그 구석재들을 새 석재 안에 파묻었다고 했으니, 제법 남아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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