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자선당 유구의 현주소........(문화재 반환에 대한 단상-2) by 진성당거사

1995년 12월 31일, 경복궁 한 켠에, 무게 107톤 분량의 때묻은 돌더미가 나무 상자에 담겨 운반되었다. 그것은, 1915년에 일본 상인 오쿠라 기하치로 (大倉喜八郎, 1837 ~ 1928)에게 매각되어 일본 도쿄로 옮겨졌다가, 1923년의 관동대지진으로 불타버린 경복궁 자선당 기단부의 잔해였다.

(* 자선당이 겪은 수난은 이미 여러 책에도 자세히 나와 있고, TV 교양프로를 비롯한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여러번 소개됐기 때문에 여기서 굳이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흔히 알려진 것처럼 자선당이 '조선관'으로 아예 현판을 바꿔 달았던 것은 아니다. 오쿠라 집고관이 지어진 후 조선 미술품을 이곳에 수장했을 뿐이다.) 

오쿠라 호텔에 옮겨진 직후의 자선당 전경, 1916년.
아직 오쿠라 집고관 (集古館)이 들어서기 전의 모습이다.

도쿄 오쿠라 집고관에 옮겨 세워진 자선당의 원경, 1921년경으로 추정.

거의 5년여에 걸친 목원대 김정동 교수의 끈질긴 추적 조사 끝에, 오쿠라 호텔의 한 구석에서 정원석으로 쓰이고 있던 깨지고 변색된 돌더미가 다름아닌 자선당 기단부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마침내 1995년, 이 자선당 기단부는 문화재관리국이 삼성문화재단의 무상 기증 형식으로 인수받아 경복궁으로 되가져왔다.

당시 신문기사에는 이렇게 실렸다.

1995년 12월 31일 경향신문 기사.


그리고, 자선당은 2001년에 이런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겉보기에는 꽤 옛 모습을 살린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단청 부분이 사진과 차이나는 부분이 여러군데 있는데다가, 가운데 돌계단은 본래 큰 것 하나였던 것이 작은 것 세 개로 놓였고, 잡상도 갯수가 안 맞고, 내부 평면구조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복원이야 비일비재하니 여기서는 별로 크게 신경쓰지는 않겠다.

문제는 저 기단부이다. 보다시피, 전부 새 석재가 사용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정밀조사 결과, 자선당의 옛 석재는 지진으로 전체적인 균열이 간데다가, 건물 붕괴시 발생했던 열로 인한 손상도 심각했고, 70년대에 정원석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모서리를 깨뜨린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새로 복원하는 건물에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선당 유구는 경복궁의 다른 장소에 이건시켜 따로 보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1999년 여름에 마침내 이건작업이 완료되었다.

그렇다면, 최초 반환 후 15년이 지난 지금, 자선당 유구는 어떻게 되어 있나? 


현재의 경복궁 자선당 유구 모습. 
(* 사진은 인터넷 검색 중 가져왔다)

앞에 보이는 한옥은 최근 복원된 건청궁 일원. 이곳의 복원도 엉망 진창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부분은 나중에 다루겠다,

이 자선당 유구는 아무 설명문이나 안내판도 없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경복궁의 가장 구석진 곳, 햇빛도 잘 안드는 뒷쪽에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 건청궁 한 쪽의 쪽문을 통해 나가야만 이 유구를 볼 수 있는데, 이 쪽문은 항상 잠겨있다. 경복궁 관리사무소 측에 연락을 취해도 늘 '보안상 문제'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고 하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나마 건청궁 복원 이전에는 탁 트이기라도 해서 이 유구를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 물론 그때도 비공개 권역으로 묶여있었지만 - 이제는 그 쪽문 아래, 문지방과 문짝 사이의 좁은 틈으로나 겨우 들여다볼수 있는 처지다.  (*아니면, 신무문 옆의 청와대 경비초소 옆에서 내려다보는 방법 - 이 사진을 찍은 구도 - 밖에 없다.) 

거기에다, 이미 균열이 심각한 석재 위에 흙을 깔아놓았는데, 여름 장마철이 지날때마다 주변 풀이 무성해지면 그 균열 틈으로 주변에 서식하는 잡초 뿌리가 끼어들어 균열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다. 설마, "오쿠라 호텔의 쪽발이들이 이 위에 나무도 심었는데, 잡초 쯤이야 뭐 괜찮겠지" 하는 사고 방식일까?

자선당 유구를 실제로 관람객이 들여다 볼 때의 상황. 
오른쪽 측면으로 보이는 건 건청궁 쪽문의 주춧돌과 기둥.
(* 역시 퍼온 사진이다)


도대체 이딴 식으로 구석에 쳐박아 두는 것도 모자라 아예 숨겨 놓고 훼손시킬 바에는, 애초에 이걸 왜 가져온답시고 난리 법석을 부렸던가?  니스 냄새 풀풀 나는 엉터리 건물 하나 지을 바에는 차라리 저 돌더미만 갖다놓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정당성과 교훈도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최근에는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현재 오쿠라 집고관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이천 향교방오층석탑'을 반환하라는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또 되가져와서 방치시키고 말 거면 쓸모 없는 일일테다. (*참고로, 그 석탑의 원위치는 현재 학교 운동장이고, 함께 서 있던 삼층석탑은 여러차례 옮겨다닌 끝에 이곳저곳에 심각한 훼손이 있는 상태다.)

차라리 가져간 물건일바에야, 무턱대고 내놓으라고 법석을 부리기보다는, 그네들이 그 유물들을 잘 보존하는지, 그 유물의 역사성에 대해 그네들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덧글

  • 하늘사랑 2010/07/30 13:02 #

    천 번 만 번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문화재를 관리하는 당국에서는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만 워낙 신경들을 쓰다 보니,
    이런 이야기쯤에야 마이동풍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목소리에도 귀를 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hyjoon 2010/07/30 13:23 #

    진성당거사님은 여러모로 초공감이 되는 글들을 써주십니다. 특히 문화재 부분에서.....(-_-)b
  • 슈타인호프 2010/07/30 13:38 #

    어처구니가 없군요. 정말 진성당거사님 말씀대로 자선당 자리에 저 돌덩이만이라도 갖다두는 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

    건청궁 뒤편이 보안지역이라는 건...청와대 앞길 산책도 허용하는 마당에 이해가 안 되네요. 경복궁 경내에 주둔하는 경비부대 때무이려나요.
  • 진성당거사 2010/07/30 14:22 #

    경복궁 내 주둔하던 경비부대는 재작년(2008) 초에 철수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0/07/30 14:24 #

    아, 군부대 말고 전경대도 다 철수했나요? 모르고 있었습니다.
  • 無碍子 2010/07/30 14:10 #

    엉터리 건물 하나 지을 바에는 차라리 저 돌더미만 갖다놓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한 복원이라고 동의 합니다.
  • 무갑 2010/07/30 15:24 #

    제발... 보도블럭 갈아없을 돈좀 복지예산이나 문화재 보호예산으로 쓰면 안되나 몰라요..ㅠㅠ
  • 프랑켄 2010/07/30 16:08 #

    참....문화재청 놈들 혈세값을 못하는군요.
  • 타누키 2010/07/30 20:06 #

    잘봤습니다~
  • 1111 2010/07/30 22:05 # 삭제

    윗대가리들이 신경 쓰는 일이 아닐테니 일이 이따구로 돌아가는군요. -_-;;
    저렇게 방치하면서 잘도 우리문화재 소중하니 돌려달라는..소리를 하는군요
  • MessageOnly 2010/07/30 23:25 #

    반환된 것을 주안점으로 삼는다면 그 석재를 그 자리에 놓고 건물을 올리지 않는게 나았겠는데...
    반환석재를 그대로 두는 것이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지 모르겠군요...이럴바에야 석재를 반환받은 것도 퇴색되는 일이고..
    저 현 자선당의 경우 구들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해서....정말 어떻게 지어진 건물인지 더 궁금하기도 합니다. -ㅠ-;
  • 푸른화염 2010/07/31 01:22 #

    .. 아... 전에 가서 유구를 먼발치에서 봤었는데 그게 자선당 유구였군요. ㄱ
  • 노리개 2010/07/31 03:55 #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 2010/07/31 14:38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바람불어 2010/07/31 17:47 #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일본 갔을때,
    도쿄의 제국호텔에 옮겨놓은 자선당에서 하룻밤 자보고 바닥난방이 좋다는 걸 알게되어서
    이후 자신의 건축에 적용했다는 얘기를 들은적있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0/07/31 20:20 #

    우선, 자선당은 오쿠라 호텔 앞에 옮겨세워졌습니다. 제국호텔과는 다른 곳이지요. 라이트가 온돌방에서 자봤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곳은 조선에서 근무한 바 있던 모 일본 관료의 저택에 꾸며진 온돌방이었습니다.
  • 행인1 2010/07/31 20:50 #

    아이구 머리야...;;; 문화재청 답다는 말 밖에는 안나오는군요.
  • 스카라드 2010/09/21 09:48 # 삭제

    그냥 조선왕조가 미우니까 저런 식으로도 보복하자는 발상이 아닐지?? - 정말로! - 조선까들이 우글거리며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잠식한 현실에서 조선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광화문이 소실되었을때 좋아라했던 조선까들을 보면 - 대표적인 경우 참기름@@@들 - 우리나라에서 조선문화재를 대놓고 파괴하지 않는 것에 안도할 뿐입니다.

    문화재청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만주대제국 고구려,대륙백제,황제국 발해와고려의 문화재이지 조선의 문화재는 아닐 겁니다. 아마 그럴겁니다. 일본을 갈구기 위한 양념으로서 조선이 필요한 겁입니다.--; 털썩~~~~~~~~~~~~~~~~~~~~~
  • 스카라드 2010/09/21 09:55 # 삭제

    오타 났군요. 광화문이 아니라 숭례문 소실이었습니다. 좀 헷갈리는군요. 에고고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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