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글.....) 전라북도 정읍에는 '궁궐'이 있었다..... by 진성당거사

저 말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사실이다. 

1929년,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전라북도 정읍군 대흥리에는 '어쩌면 내지의 황거보다도 더 클지도 모를'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궐이 지어졌다. 총 500칸이 넘는 45채의 우람한 기와집이 들어섰고. '창덕궁 공사 때 참여한 목수들'이 '개마고원에서 베어온 우뚝한 강송'을 써서 지은 웅장한 전각 내부에는 화려한 단청과 함께 자개를 박은 커다란 옥좌가 설치되었다. 

이 공사를 주도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


보천교 교주 차경석 (1880?~ 1936) 


그렇다. 일제 시대에 '차천자'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보천교의 교주 차경석이 이 '궁궐' 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건물들의 정식 명칭은 "정읍 보천교 진정원(眞正院)'이었지만,  차경석이 자신을 '천자'라고 부르며 '시국'이란 자신만의 국호와 연호까지 정해놓은 상황이었으니 사실상의 궁궐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증산교, 그리고 보천교를 비롯한 증산도 떨거지들의 1920년대 친일행각이야 이글루스의 수많은 강호제현들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신 바, 굳이 여기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어찌 되었든, 1931년 무렵에 이 전각들이 완공되었을때는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강릉에 있는 대순진리회 교당도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아마 증산도 계열의 유사종교들은 대개 뭔가 크게 건물 짓는 데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1931년 완공 당시의 정읍 보천교 진정원, 일명 '차천자 궁궐' 전경.

정읍 진정원의 안마당 모습. 가운데의 삼문은 전주 동헌의 정문을 뜯어왔다는 설이 있다.
옆의 종각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해체되어 내장사 대웅전의 재목으로 사용되었다. 


진정원의 본당이었던 십일전 (十一殿).


여기서 잠깐, 이 '십일전' 건물,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1936년에 차경석이 사망한 뒤 보천교 조직은 얼마 못가서 와해되었고 - '일제가 강제해산시켰다'는 것도 맞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차경석의 사망 직후 교단 자체가 아예 급속도로 몰락했던 것 같다. - 진정원 건물은 그냥 텅텅 빈채로 남아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 조선 불교계의 총본산 격으로 서울 시내에 새로운 사찰을 건립하기 위해 뜻을 모은 사람들 - 그 중에는 만해 한용운도 포함되어 있었다 - 이 이 건물에 눈독을 들였고, 결국 십일전은 해체되어 서울로 옮겨졌다. 


보천교 십일전을 해체하는 모습. 흔히 건물을 다시 조립할 때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윗부분 공포의 상태나 주변의 현장 모습을 볼 때 해체 과정의 사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듯 하다.

 
1938년 10월 25일, 마침내 2년여의 공사 기간과 17만원의 공사비, 목공 7000명, 와공 200명, 연인원 6만 5000명이 동원된 끝에 '경성 태고사 대웅전'이 낙성되었다. 만해 한용운은 그 해 말 '불교유신' 제17호 (1938)에 투고한 '‘총본산 건설의 재인식’이라는 글에서, 태고사 대웅전의 규모와 그동안 들어간 노력들을 열거하면서 “만일 이 건물을 신축하자면 최소한도 100만원은 초과치 아니하면 안 되겠다고 하니 얼마나 훌륭한 집인가.”라고 적고 있다.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긴" 형국인 셈이다. 여기서 '곰'과 '사람'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태고사는 이후 1954년에 그 유명한 소위 '비구-대처승 분규 사건'이 터진 와중에 '조계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에 따라 대웅전도 자연히 '서울 조계사 대웅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의 서울 조계사 대웅전의 모습.

조계사 대웅전이 된 십일전을 제외한 진정원의 다른 건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종각에 걸려있던 범종은 일제 말엽에 공출되었고, 종각 건물 자체는 1956년에 인근의 유명한 사찰인 내장사에서 대웅전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옮겨갔다. 내장사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건물들을 중건하기 위해 이 진정원 건물들을 많이 헐어간 듯 하다.

1940년 무렵에는 옆 동네인 관청리에 살던 시골 지주 조재홍이라는 사람이, 진정원의 건물 세 채를 헐어다 자기 땅에 옮겨 짓고 자기 집으로 삼았는데, 이 집은 80년대 이후 폐가로 방치되어있다가 최근 등록문화재 214호로 지정되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해서, 한 시절 저 남도 지방에서 상당한 위세를 떨쳤던 한 유사종교의 흔적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아직까지 용케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핑백

  • Jogyesa Temple II: Lotus Lantern Boogaloo 2011-05-09 01:25:06 #

    ... ly born religious sect, Bocheongyo, and moved it from Jeongeup in Jeollabuk-do to Seoul (see photos here). The main hall of the new temple was mostly complete in 1938, and work on the rest of the temp ... more

덧글

  • 프랑켄 2010/07/30 16:11 #

    저 십일전 건물이 평수가 근정전 건물보다도 더 넓었다고 하는군요.
  • Esperos 2010/07/30 16:16 #

    프랑켄// 평수만 더 넓은 게 아니라 건물 격 자체를 근정전보다 더 높게 지었어요 (____) 달리 차 천자라 불린 게 아니지요.

    십일전 건물은 차경석 유족들이 주장하기로는 조계사 대웅전으로 옮겨 지을 때 왜곡이 있었다 합니다. 실제보다 좀 축소됐다는 거죠. 하지만 건물 실측에 나선 논문을 보면 사진상으로 계측한 십일전이나 조계사 대웅전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하니(달라진 부분이 있긴 하더랍니다) 유족들이 십일전을 좀 더 미화해서 기억한 듯합니다. 더불어 대흥리의 대흥이란 지명도 보천교로 말미암았으니 그 위세를 알 수 있죠.
  • 진성당거사 2010/07/30 17:13 #

    논문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혹시 그 논문 제목과 저자 아시면 알려주시겠습니까?
  • Esperos 2010/07/30 17:24 #

    진성당거사// 심심풀이로 읽던 논문 뭉텅이들 중 하나라, 파일이 집에 있어요. 지금은 학교인데 내일 집에 가니 확인해보고 알려드리지요.
  • Esperos 2010/07/31 22:27 #

    진성당거사// 제가 본 논문은 '보천교 본소 건축물의 행방'(2001, 김재영)입니다만, 이 논문에서도 안후방이 쓴 논문 둘 '불교 총본사의 창건고' '조계사의 역사와 문화'를 재인용했다고 하는군요.
  • 진성당거사 2010/08/01 07:49 #

    지금 현재 알려주신 논문 모두를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만, 대부분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라서 그런지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는 것도 많고, '보천교는 민족종교였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다가, 엉뚱하게도 인근의 수운교 건물과 진정원을 비교하려고 하더군요. 건물 자체에서는 고주 하단을 자르고 하단부에 돌기둥을 이어 놓은 것 말고는 별 차이 없는 것을 위의 사진으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합니다.
  • Esperos 2010/08/01 11:11 #

    헛. 엉뚱한 건물을 비교했다고요? 그것 참 놀랍군요. 저는 심심파적으로 읽어보고 '그런갑다' 하고만 넘어갔는데, 한 큐에 사실관계 오류를 알아내다니 참 대단합니다 ^^;;
  • moduru 2010/07/30 16:19 #

    큰아버지댁이 정읍인데 한번도 못본 걸 보니... 다 뜯겨 나간 모양이군요.
  • Esperos 2010/07/30 16:19 #

    보천교를 남도 한 지방에서만 위세를 펼쳤다 하기는 어렵다 생각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증산도 사람들이 전라도 쪽에 선교하러 가면, 노인들이 "보천교가 다시 왔다" 하면서 경계하더라나요 하하.
  • 셰이크 2010/07/30 17:33 #

    한 말의 전라도지방이야 한마디로 신흥종교의 천국이었죠. 동학으로 시작해서 온갖 종교가 명멸하다가
    지금도 건재한 건 증산도, 원불교 정도일까요. 천도교야 처음 위세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고...
  • 한단인 2010/07/30 18:30 #

    이거 뭐야 무서워....
  • asianote 2010/07/30 19:29 #

    백백교에 맞먹는 종교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 無碍子 2010/07/30 19:31 #

    http://ko.wikipedia.org/wiki/%EC%B0%A8%EA%B8%B8%EC%A7%84

    워키에서 차길진으로 검색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 MessageOnly 2010/07/30 20:20 #

    지금도 전주에는 온갖 종교사원이 모여있지요.
  • 푸른화염 2010/07/31 01:19 #

    조계사 대웅전에 저런 비밀이 있었군요.
  • 행인1 2010/07/31 20:40 #

    훌륭한 재활용 사례인듯 합니다.(응?)
  • 2011/07/19 13: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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