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데이빗 매이젤 (David Maisel) - "먼지의 도서관 Library of Dust".... by 진성당거사

저는 본래 사진 작가들의 모음집은 별로 보지 않는 편입니다. 어지간해서는 인화지에 뽑아서 액자에 걸어놓거나 개별적으로 소장하는사진들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에서 열리는 사진전은 기초적인 전시 개념도 없이 전시해놓은 경우가 많아 그닥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요)

우연히 몇 달 전 인터넷에서, 미국의 사진작가 데이빗 매이젤 (David Maisel)의 작품집 '먼지의 도서관 (Library of Dust)'에 대한 소개 글을 처음 읽었습니다. 뭔가 시선을 확 잡아끄는 내용이었기에, 수소문끝에 얼마전 그 책을 구해 읽었습니다. 한국에는 이 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여기 간단하게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 2005년, 데이빗 매이젤은 뭔가 쓸만한 사진을 얻을까 싶어 미국 오리건 주의 낡은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방문한 문제의 병원은 오리건 주립 정신병원 (Oregon State Psychiatric Hospital), 1883년에 개원한 뒤 100여년 동안 중증 정신병 환자들을 받다가 1995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채 방치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잭 니콜슨 주연의 유명한 영화,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의 로케이션 촬영지로 특히 유명했지요.

병원 주변을 이리저리 뒤지며 사진에 쓸만한 게 없나 기웃거리던 매이젤은, 완전히 황폐화된 본관 건물에서 뜻밖에 퍽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한 낡은 방을 찾아냅니다. 그 방은 병원 관계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일명 "먼지의 도서관 (Library of Dust)"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도서관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책 한 권 없이, 그저 낡은 책상 하나와, 송판으로 만들어진 선반에 낡은 구리 깡통 여러개가 잔뜩 쌓여있는 곳이었습니다. 

여기가 바로 문제의 '먼지의 도서관'입니다.

그 구리 깡통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 메이젤은, 깡통 각각이 독특한 빛깔과 질감을 갖고, 몇 개는 부식되었지만 퍽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몇몇 깡통에는 아래의 사진처럼, 거칠게 인쇄된 종이 라벨이 붙어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구리 깡통의 정체를 알게 된 매이젤은 전율합니다. 이 깡통들은 1913년부터 1930년대 언저리까지, 이곳 병원에서 사망한 무연고 환자들의 시신을 화장해서 그 재를 담아놓은 납골함이었던 것입니다. 깡통의 부식은 알칼리성인 인간의 유골이 구리와 반응하면서 나타난 화학 반응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깡통들이 조만간 폐기 처분될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된 매이젤은, 이 깡통들을 자신의 작품의 오브제로 삼고 약 3년 간에 걸쳐 이 수백여개의 깡통들과, 버려진 병원의 풍경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2008년에 이들 사진들은 "먼지의 도서관"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던 것입니다.
서문에서 매이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 방은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아무도 바라지 않는 버려진 영혼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스러지고, 잊혀지고, 먼지만도 못하게 취급되어 결국은 무생물과 일체화된 영혼들........두번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고, 그 속에서 마지막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였다.

아래, 작품의 일부 사진들을 소개합니다.






책이 출간된 직후, 이들 깡통들은 모두 폐기처분되었고, '먼지의 도서관' 역시 병원 건물의 철거와 함께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이미 수십년 전에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한채 죽은 이 사람들의 마지막 단편들이 그나마 이런 식으로 간직될 수 있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듭니다.


오레건 주립 정신병원의 철거 공사현장. 2008년 11월.


덧글

  • 2010/08/05 20: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迪倫 2010/08/16 11:04 #

    잘 읽고 보았습니다.

    덧붙여 링크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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