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1927) - 최종 복원판 by 진성당거사

프리츠 랑 감독의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는 누가 뭐래도 1920년대 독일 무성영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고전이자, 이른바 '디스토피아 SF'의 원조로 수많은 영화평론과 영화 연출개론 등에 끊임없이 인용되어 왔고, 2001년에는 UNESCO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메트로폴리스의 전경 모습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 - 사람을 잡아먹는 기계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명성 만큼이나, 그 필름이 겪은 수난의 내력도 유명합니다. 1927년 1월 10일에 베를린에서 개봉된 원래의 버젼은 153분이었지만, 100분을 넘기는 영화가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에 이 영화는 너무나 길고 지루한 작품으로 여겨졌고, '노사 갈등'. '노동자 봉기' 등의 과격한 소재를 담고 있는 작품인 탓에 해외의 상당수 영화 배급업자들은 이 영화를 그대로 배급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당시 이 영화를 제작했던 독일 우파 (UFA) 영화사는 재정난으로 인해 자사 영화에 대한 해외 수출 전권을 미국 파라마운트 사의 독일 지부에 매각한 상태였습니다. 파라마운트 사는 앞서 언급한 이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원작에 대한 엄청난 만행이라 할 수 있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극작가 채닝 폴록 (Channing Pollock) 을 고용해서, 영화의 길이를 원래의 반 남짓인 67분으로 줄여버리고, 플롯도 완전히 갈아치워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래 과학, 기독교적 알레고리, 비학(秘學),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뒤섞은" 작품이 "발광하는 미친 과학자가 저지른 난동 이야기"로 변모해버린 (* 둘 다 프리츠 랑의 표현) 것입니다. 물론 이 결과물은 플롯이 왔다갔다했고, 앞뒤가 안 맞았으며, 중요한 장면 상당수도 사라져버렸고, 등장만 할 뿐 하는 일이 없는 캐릭터들이 여럿 나타나는, 가히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비평가들은 입을 모아 이 영화를 씹어댔고, (H.G.웰즈는 무려 신문 두 페이지짜리 평론을 써서 신랄하게 이 영화를 비난했습니다), 흥행 성적은 저조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대중의 관심에서 너무나 빨리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1927년 미국 개봉 당시의 포스터 - 영화에 등장도 하지 않는 정체 불명의 인물이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이 편집판이 얼마나 원본과 동떨어졌나 알 만 합니다. 

1960년대 이후 각국의 수많은 필름 아카이브에서 여러 차례에 걸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프리츠 랑은 1976년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1927년의 난도질'에 여전히 격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1927년의 메트로폴리스는 영원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에 동독의 필름 아카이브에 보관되던 약 40분 남짓의 오리지널 네가티브 필름과 원래의 각본, 스틸 사진, 그리고 고트리프 후페르츠가 작곡한 원래의 영화음악 스코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자료들을 토대로 한 10여년에 걸친 길고 긴 작업 끝에 마침내 2001년, 독일 무르나우 영화아카이브에 의해 원작에 가장 근접한 123분 길이의 복원판이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30여분 남짓 되는 장면이 빠져 있어서, 빠진 부분을 자막으로 대신해서 복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7월, 아주 뜻밖의 발견이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립영화박물관에서 편집이 없는 원본 그대로의 153분짜리 메트로폴리스 필름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이 필름은 아르헨티나 현지 상영판의 편집을 위해 독일에서 바로 복사해 왔던 원본 필름의 16mm 복사본으로 밝혀졌습니다. 박물관 측은 이 필름을 1950년대부터 소장해왔지만, 아무도 그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메트로폴리스의 복원작업을 주도한 독일의 영화 역사가 에노 파탈라스 (Enno Patalas)의 끈질긴 추적 끝에 뒤늦게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이 필름은 2008년 10월에 독일 무르나우 영화아카이브에 인계되었고, 1년 반 동안의 복원 작업 끝에 드디어 올해 2월 12일, 독일에서 라이브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추어, 83년만의 재개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새로 발견된 필름의 상태는 극도로 열악했습니다. 16밀리 필름으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화면 상단부와 오른쪽 일부가 잘려나갔고, 엉망으로 보관해온 탓에 화면 전체에 심한 스크래치가 있는데다, 중요한 두 장면은 필름이 너무 심하게 부식되어 도저히 되살릴 수가 없었기에 결국은 이 복원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무려 83년만에 독일 무성영화의 최대 걸작을 감독이 의도한 바 그대로,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2010년 2월 12일 베를린 프리드리히 국립극장에서의 재개봉 모습

1927년의 오리지널 영화음악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 

영화가 전체적으로 기대고 있는 기독교 성경에서 차용한 알레고리와, 등장 인물 사이의 갈등과 대립, 미래도시 메트로폴리스의 전체적인 구조 등등이 이제야 확실해지고, 그 수많은 엑스트라들과 물량 공세가 여지껏 아무 역할도 못하던 처지에서 벗어나 영화 전반에 구석구석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1927년의 영화다보니 이곳저곳에서 허점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반부는 퍽이나 정신없게 진행되고 - 원작 소설이 신문에 연재 중이었기 때문에 디테일을 생략한 탓이라고는 합니다만 - , 가장 중요한 악역인 과학자 로트방은 끄트머리에 가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댑니다. 여주인공 마리아 역의 브리지트 헬름은 1인 5역을 하는데다 무성영화시대의 과장된 연기가 겹치다보니 거의 조울증 환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929년에 이 영화를 봤던 심훈의 표현대로, "우리로 하여금 덮어놓고 '엄청나구나!' 하는 소리를 뿜어내게 하는" 특수효과와 연출력은 8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경탄시키기에 충분합니. 이게 CG와 매트 촬영따위도 없던, 순전히 '노가다'로만 만들어진 화면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래 올리는 화면들은 지난 2월 12일 독일 Arte 채널에서 라이브로 방송된 메트로폴리스 복원판 재개봉판을 캡쳐한 것입니다. 벌써부터 다음달 10일로 예정된 DVD/Blu-Ray 출시가 기다려지는군요. 

새로 발견된 장면 (1) - 메트로폴리스의 환락가 '요시와라' 클럽
 - 이 장면을 보고 1920년대의 베를린 퇴폐 나이트 클럽문화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 발견된 장면 (2) - 로트방의 집에 설치된 '제단'
- 이 장면의 발굴과 함께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가 보다 뚜렷해졌습니다.

새로 발견된 장면 (3) - '바빌론의 창부' 이야기가 쓰여진 성경 페이지 (재구성)
- 이 장면의 발굴과 함께 '바벨 탑'과 '바빌론의 창부'가 엮인
영화 속의 기독교 알레고리가 비로소 확실해졌습니다.
 

덧글

  • 소시민 2010/09/24 12:09 #

    무자비한 가위질은 작품에 대한 크나큰 폭력이죠. 이렇게나마 원본에 가까운 필름을 접할수 있게 되 다행입니다.
  • 페스츄리 2010/09/24 22:04 #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에 대한 좋은 소개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잠본이 2010/09/24 22:56 #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T.T
  • 신광철 2010/09/25 01:45 #

    같은 작품을 또 구입한 적은 없는데 또 구입해야겠네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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