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Desert Island Discs" 30선...... by 진성당거사


(*모처럼 작정하고 올려보는 음악 관련 글입니다만, 심히 매니아틱한 글이니 양해 바랍니다.)

"Desert Island Discs"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아시는지요? 1942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영국 BBC 라디오에서 방송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지요. 굳이 그 제목을 번역하자면 "무인도 레코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프로그램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건, "무인도에 축음기 한 대만 겨우 건지고 표류하게 될 때, 구조를 기다리면서 들을 레코드가 고작 여덟 장 밖에 없다면 어떤 곡을 들을 것인가" 라는 방영 초창기의 컨셉 때문입니다. 

헌데 제게는 막상 저런 상황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겨우 여덟 장의 레코드만 고른다는 건 무리일 듯 합니다. 그래서 추리고 추려서 30장은 골라 갖고 다녀야 할 것 같네요. 여기 고른 레코드들은 모두 제가 가지고 있는 옛 축음기 음반들 가운데 골랐습니다. 이들 음반들은 이미 1960년대 이전에 생산이 중단되었고, 그 때문에 그 연주자나 레퍼토리가 거진 다 구닥다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누군가가 호응해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결코 중요하지도 않고, 누가 신경 쓸 것 같지도 않지만, 여기서 레코드들을 뽑은 기준에 대해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 장르는 클래식, 재즈, 국악, 기타등등,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만, 아무래도 클래식 쪽이 좀 많습니다.
* 레코드는 전부 편면반 (한쪽 면에만 녹음이 있는 레코드, 일명 "쪽판") 이라고 가정했습니다.
* 에디슨 레코드나 파테 레코드 등의, 일반적인 축음기에 재생할 수 없는 특수 레코드들은 제외했습니다.
* 가급적 복각음반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 스탠다드 곡이라 부를 만한 곡을 선정했습니다.

각 레코드마다 짧은 리뷰와 소개 넣겠습니다. 더러, 제 유투브 계정에 복각해 올린 곡들이 있는데, 링크를 걸어두겠습니다.


1. "I Pagliacci - Vesti la Giubba", Enrico Caruso, 1907.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수많은 녹음 가운데,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유명하고 가장 돋보이는 녹음이죠. 카루소는 이 곡을 1902년, 1904년, 그리고 1907년, 총 세 차례 녹음했습니다만, 단연 1907년의 녹음이야말로 절창 중의 절창입니다.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그의 활동 시기가 너무 오랜 옛날 (1921년에 사망)인데다, 마이크도 없이 나팔통을 쓰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녹음된 그 형편없는 음질 떄문에 선입견이 생겨셔인지, 그의 복각음반조차 제대로 들은 사람을 찾기 어려워 저는 늘 불만입니다. (심지어 '객석' 지의 모 필자는 카루소를 전혀 듣지않고 리뷰를 썼다는 걸 자기도 모르는 새에 실토해버렸지요.) 이 녹음은 무엇보다도, 아리아의 끄트머리 부분, "웃어라 광대여 RIdi Pagliaccio!" 라는 클라이막스 직전의 그 신음같은 장탄식에 정말 감동해버리고 맙니다. 이 레코드는 원체 많이 팔려서, 아직도 전혀 듣지 않은 신품을 배송비를 제하고 몇 천원에도 구할 수 있습니다. 낙소스나 Pearl에서 나온 복각 CD도 좋지만, 기회가 있으면 축음기에 원반을 걸고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허먼 클라인의 표현을 빌자면 카루소와 함께 가히 "CC" 시대를 열었던 주인공인 러시아의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이 부른,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중 마지막 장면, "보리스의 죽음" 부분입니다. 그는 이 장면을 이미 1906년부터 수 차례 녹음했습니만, 이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녹음은 1928년 7월 4일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의 공연 실황 녹음입니다.  전기녹음 초창기의 미숙한 기술 탓에 전화선으로 소리를 겨우 따서 녹음한 열악한 음질에도, 샬리아핀의 그 전설적인 악마적 카리스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녹음이지요. 

미국 출신의 바리톤 로렌스 티베트의 가장 유명한 녹음 가운데 하나죠. 솔직히 거의 단역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에스카미오의 이 아리아를 이런 식으로 임팩트 철철 넘치게 소화해낸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실제로 이 레코드를 축음기에 걸고 들어보면, 바로 앞에서 목청을 뽑는 듯한 느낌이지요.  특히 두번째 가사 시작 부분의 고음 처리는 대단합니다.  다만 코러스 부분은 좀 울리는 듯하게 들리는 것이 아쉽습니다. 티베트의 다른 레코드 가운데서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을 편곡한 유명한 노래 "Goin' Home", 유진 오닐의 연극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 "Emperor Jones"의 피날레, "Standin' in de Need of Prayer"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4. "Tristan und Isolde - Isoldes Liebestod (Mild und Leise)", Frida Leider, 1931.
프리다 라이더의 레코드는 그 기량 면에 있어서나 음질에 있어서나 남긴 그 모든 녹음들이 다 탁월합니다만, 특히 1931년에 영국 Parlophone에서 취입한 이 레코드는 그 중에서도 더욱 탁월합니다. 비록 12인치 레코드 한 면에 녹음을 다 수록하느라 중간중간 생략된 악절도 있고, 마지막 부분도 조금 급한 감이 있습니다만, 오히려 그 면이 이 아리아의 독특한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곡은 레코딩 역사의 최 초창기부터 녹음이 되어 왔던 것이라, 원체 명반이라 부를 곡을 고르기가 어렵습니다만, 메타 자인마이어 (Meta Seinemeyer)의 1928년 버젼이나, 릴리안 노디카 (Lillian Nordica)의 1911년 버젼, 그리고 아주 유명한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 (Kirsten Flagstad)의 1935년 버젼도 좋습니다. 

5. "My Soul Has Been Anchored in the Lord", Marian Anderson, 1936.
미국 출신의 흑인 콘트랄로 마리안 앤더슨의 전성기 시절 녹음 가운데 그녀의 목소리를 가장 제대로 들려주는 녹음입니다. '콘트랄로' 라고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믿기지 않을 만큼의 고음도 제대로 소화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콘트랄로 특유의 깊고 뚜렷한 저음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앤더슨은 1932년부터 1936년 사이에 미국 RCA 빅터에서 일련의 녹음들을 취입하는데, 후기의 다소 노쇠한 목소리나, 아주 초기의 음정/음질이 불안한 녹음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될 정도입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흔히 앤더슨을 흑인 영가 가수로 인식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앤더슨은 북부 출신이었기 때문에 흑인 영가를 들을 기회가 없었고, 이들 노래들을 성악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처음 배웠다고 합니다.

겨우 서른일곱의 나이로 요절한 위대한 스페인의 메조소프라노, 콘치타 수페르비아의 녹음 중에서도 제가 가장 아끼는 곡입니다. 가히 황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자유자재의 성량 조절, 스테이지에서의 얼굴표정까지 상상할 수 있을 뚜렷한 표현력, 여기에 1927년의 녹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완벽한 음질까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콘치타 수페르비아는 생전에 여태 정확한 숫자조차 집계되지 않는 엄청난 양의 음반을 남겼기에 그녀의 녹음들 가운데 최고를 꼽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제게는 그녀의 '하바네라'와 함께 몇 번이고 질리지 않고 들을 레코드입니다. 

이 녹음은 솔직히 '정상적인' 감상에는 전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그가 직접 자작자연으로 연주했다는 역사성 자체가 대단하긴 하지만,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은 프랑스 G&T 레코딩 스튜디오의 지독한 와우 플러터 (*녹음 턴테이블의 회전 속도가 계속 느려졌다 빨라졌다 하는 현상) 탓에 피아노의 음색이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로 흔들리니까요. 하지만 그 불완전함 자체가 오히려 이 레코드를 들을 떄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거친 잡음과 웅얼거림 속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피아노의 소리가 초현실적이기도, 때론 몽환적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세계적인 복각 엔지니어인 워드 마스턴 (Ward Marston)이 자신의 레이블에서 이들 프랑스 G&T 사의 1900년대 초반 피아노 녹음들을 묶은 CD를 발매했는데, 저 플러터 현상을 최대한 보정해서 놀랄만큼 깨끗한 음질로 복각해냈습니다. 그리그 뿐만 아니라, 드뷔시, 생상스, 마스네, 샤미나드. 라울 푸뇨, 루이 디에머 등등, 이름만 들어도 숨이 멎을 듯한 지지난 세기의 전설로만 남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CD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인데다 복각도 아직 제대로 안되었습니다만, 막 물이 오르던 시절의 하이페츠가 박력있고 격정적인 연주를 마구 쏟아낸다는 사실만으로도 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게 겨우 16세 청소년의 연주라니요! 

9. "Tambourin Chinois (Kreisler)", Fritz Kreisler, 1936.
위에 소개한 하이페츠의 연주와는 정반대로, 격정이나 박력은 좀 덜하지만 대신 풍성함과 성숙함이 물씬 묻어나는 연주입니다. 크라이슬러는 이 곡을 1926년에도 한번 연주했지만, 음질이나 연주면에서 이 쪽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사실 1936년 즈음에는 크라이슬러가 이미 전성기를 흘려보내고 서서히 그 실력을 잃어가던 때라고들 하지만, 이 녹음은 예외가 아닌가 합니다.

10. "La Ronde des Lutins (Bazzini)", Yehudi Menuhin, 1932.
바치니의 "요정의 춤"은 19세기 후반 이후로 가장 인기있는 바이올린 곡이었고, 녹음의 여명기때부터 줄기차게 녹음되었던 스탠다드 곡이라 사실 '최고'의 연주를 가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전형적인 19세기 주법으로 연주된 얀 쿠벨릭의 1901년 녹음을 시작으로 추천하고 싶은 연주가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1932년에 예후디 메뉴인이 연주한 이 버젼은 미샤 엘만이 듣고 좌절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연주죠.

나디아 불랑제의 동생이었던 릴리 불랑제가 남긴 몇 안되는 곡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 짧은 소품입니다만, 이토록 아름다운 첼로 연주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78회전 음반 시대의 첼리스트 가운데 아무래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단연 파블로 카잘스입니다만, 카잘스의 곡들은 원체 복각도 많이 되어 있고, 가끔은 너무나 흔한 곡을 별 특징 없이 밋밋하게 연주한 것들도 적지 않아서, 제가 최고의 첼로 연주로 꼽고 싶은 곡은 오히려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루빈스타인의 연주에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제게 있어서 그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새롭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의 취향과는 달리 저는 그의 쇼팽 연주는 그렇게 와닿지 않습니다.
 
벤자민 브리튼의 합창 작품인 "A Ceremony of Carols"의 일부입니다. 아직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 녹음이 복각된 적은 없는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저는 이 레코드를 처음 들었을 때 하프가 이렇게 표현력이 풍부한 악기였나 하는 느낌에 새삼 놀랐습니다.

14. "Peer Gynt - Morning Mood (Grieg)",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cond. Thomas Beecham, 1938.
토마스 비첨이 당대의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뭔가 특출났던 점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자신에 녹음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지휘자였다는 점이겠지요. 분명 그는 자신의 녹음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고, 전기녹음, LP나 스테레오 등으로 이어진 신기술의 연속에 가장 발빠르게 적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38년에 나온 페르 귄트 조곡 1번 앨범의 첫장인 이 레코드는 과연 1930년대의 "비첨 사운드"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 들으면 전신이 상쾌해지는 싱그럽고 편안한 연주입니다.

15. "Lohengrin - Prelude to Act 3",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cond. Arturo Toscanini, 1929.
이 곡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연주한 연주도 드물지요. 토스카니니 특유의 과격함과 날렵함이 잘 살아있는 녹음입니다. 그리고 토스카니니의 녹음 중에서는 가장 음질이 양호한 편이 아닌가 합니다. 잘 알려져있듯 토스카니니는 비첨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자신의 녹음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요. 같은 날 녹음된 로엔그린 1막 프렐류드의 경우만 보아도, 연주는 기막히지만 녹음 자체에 온갖 하자가 넘쳐나서 악명이 높습니다.

16.. "Lover Man", Charlie Parker, 1946.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에서도 나왔듯 이 음반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지요. 이 녹음은 단연코 반드시 축음기로 들어야만 제 맛이 나는 녹음인 듯 합니다. 찰리 파커의 아우라가 레코드의 음구 한 가닥 한 가닥에 완전히 녹아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17. "Potato Head Blues" , Louis Armstrong & His Hot Seven, 1927.
루이 암스트롱의 음반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그가 남긴 최고의 녹음으로 꼽길 주저하지 않는 녹음이지요. 다만 복각음반의 경우 악명 높은 핏치 논쟁 때문에 그 진가를 제대로 맛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높은 핏치 (원반을 기준으로 81rpm) 쪽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매 웨스트와 탈룰라 뱅크헤드가 이 레코드를 무려 최음제 용도로 썼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확실히 암스트롱의 그 유명한 트럼펫 솔로 파트에는 사람의 피를 흥분시키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18. "Rhythm King", Bix Beiderbecke & His Gang, 1928.
젊은 나이에 요절한 코넷 주자 빅스 바이더벡의 위대한 걸작 녹음이죠. 음질도 완벽한데다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특유의 핑거링, 축음기로 들으면 온 몸을 전율시키는 드럼 비트까지. 1920년대 최고의 재즈 앙상블 녹음이 아닌가 합니다.

19. "Rhapsody in Blue", Paul Whiteman & His Orchestra with George Gershwin, 1927.
초연 당시의 연주자들이 그대로 참여해 녹음했다는 역사성만으로도 중요한 레코드죠. 조지 거슈윈의 깔끔한 피아노 연주가 특히 돋보이고, 비록 에올리안 홀에서 초연되었을 당시의 스코어 전체가 다 녹음되지는 않았지만 (그로페의 편곡 스코어를 사용했습니다) 가장 오리지날에 가깝고 가장 재즈다운 연주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거슈윈과 폴 화이트맨은 1924년에도 기계식 녹음으로 이 곡을 녹음했던 적이 있는데, 연주 면에서는 그쪽이 훨씬 더 낫지만 불행히도 음질이 제대로 받쳐주질 못합니다. 한편 이 레코드가 녹음된 지 이틀 뒤에 브런즈윅 레코드에서도 오스카 레반트의 피아노 연주로 연주된 버젼이 녹음되었는데, 이 녹음 역시 강추입니다.

20. "In the Mood", Glenn Miller & His Orchestra, 1939.
70여년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유명한 곡이라 곡 자체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복각음반도 원래의 레코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발랄함과 생기를 느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복각반은 마치 귀마개를 하고 솜이불을 머리에 덮은 채로 듣는 듯한 느낌일까요. 저는 이 레코드를 축음기의 명기 중 명기라는 EMG 축음기로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거대한 호른에서 말 그대로 울려 나오는 스윙 재즈의 선율에 절로 1939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21. "Mean To Me", Annette Hanshaw, 1929.
1920년대 후반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의외로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가수 아넷 핸쇼의 대표곡이죠. 달콤하지만 끈적이지 않는 그 목소리에 필적할 만한 재즈 보컬은 아마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그녀의 노래들을 가지고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뮤지컬 "Sita Sing The Blues"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요. 이 노래 역시 그 영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22. "Strange Fruit", Billie Holiday, 1939.
빌리 할리데이라는 이름을 들을때마다 바로 생각나는 노래죠. 그 무섭고 슬픈 가사와 처연한 피아노 전주, 그리고 빌리 할리데이의 말이 필요없는 그 강렬한 보컬. 몇년 전, 이 레코드를 손에 넣을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23. "Some Enchanted Evening", Jo Stafford, 1951.
본래 "Some Enchanted Evening" 은 뮤지컬 '남태평양 (South Pacific)"에서 베이스 에치오 핀자가 불렀던 곡이고, 그 버젼도 훌륭한 메리트가 있지만, 조 스태포드의 이 버젼은 뭔지 모를 아련함과 나른함에 그만 울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스태포드의 그 독특한 보이쉬한 목소리는 언제나 매력있게 들립니다. 단순히 보이쉬한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노래의 무드에 따라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톤이 바뀌는 것이 언제나 인상적이었지요. 제가 미국을 여행하던 도중 TV뉴스에서 그녀의 부고를 접하고 슬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50년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여자 재즈 보컬들 가운데 망설임 없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24. "My First Impression of You", Fats Waller, 1937.
팻츠 왈러 역시 너무 일찍 세상을 뜬 데다가, 국내에서 아는 사람이 드물어 그저 아쉬운 사람입니다. 뒤끝없이 털털한 피아노와 왈러 특유의 그 걸걸한 목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이루죠. 제가 가지고 있는 레코드는 왈러의 친필 싸인과 당시 레코딩 스튜디오 프로듀서의 코멘트가 쓰여있는 테스트 프레싱인데, 꽤 가지고 있는 테스트 프레싱들 중에서도 제가 가장 아끼는 녀석입니다.

25. "대금독주 요천순일지곡", 김성진, 1954.
어린 시절부터 국악 관악기, 특히 대금에 큰 매력을 느꼈죠. 배워보려고도 했지만 아무래도 재능이 없는지 전혀 제대로 불지 못하고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김성진이 연주한 이 대금독주는 요즘 국악 공연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진짜배기 '예인의 혼'이 아직 남아있는 듯 해서 늘 좋습니다. 국악 녹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던 1950년대에 나온 레코드이고, 당시의 국산 레코드치고는 음질도 정말 좋아서 들을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26. "춘향가 中 오리정 이별 대목", 이선유, 1931.
지금은 전승이 끊어져 거의 불리지 않는 이선유판 동편제 판소리의 면면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녹음입니다. 춘향이가 오리정에서 이도령과 이별하면서 "인제 가면 언제 와요?" 하며 통곡을 하고 이도령이 탄 말 다리까지 붙잡아가며 온몸으로 이별을 거부하는 대목인데, 살짝 울리는 열악한 음질과 지글거리는 잡음 속에서도 머리가 쭈뼛 서는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27. "춘향가 中 쑥대머리", 임방울, 1934.
일제강점기 때 이화중선의 '추월만정'과 함께 조선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레코드로 유명하지요. 임방울은 쑥대머리 대목을 1929년에 콜럼비아에서 처음 취입한 이후 여러 차례 불러 녹음으로 남겼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1934년에 오케 레코드에서 녹음한 버젼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비록 음질은 좀 열악하지만, 옥중의 춘향이 심정을 마치 춘향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심정으로 부른 사람은 아마 임방울 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28. "단가 진국명산", 송만갑, 1930.
동편제의 거장 송만갑의 최초 녹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에게 붙었던 국창이라는 이름이 절대 허명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녹음이죠. 그는 1913년에 일축조선소리판 (일본 Nipponophone 레이블)에서 처음 이 단가를 불렀고, 1935년에 빅터에서도 다시 취입했지만, 이 녹음에서는 그 유명했던 철성도 쇠약함 없이 고스란히 들을 수 있고,  음질 역시 전기녹음 초기 판소리 녹음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만큼 좋아서 단연 그의 대표 녹음이라 부를 만 합니다.  

29. "심청가 中 심황후부녀상봉 대목" , 이동백, 1929.
이동백의 판소리 녹음 가운데 빅터에서 녹음한 춘향가의 이별가 대목과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녹음입니다. 남아있는 그의 사진에서도 느껴지는 가객으로서의 당당한 풍채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심봉사가 눈을 딱 뜨는 순간의 그 쩌렁쩌렁한 고성은 명창으로서의 천부적인 끼와 재주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30. "Spoken English and Broken English", George Bernard Shaw, 1929.
사실 이 레코드는 양면에 걸쳐서 녹음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썼던 기준에는 들어맞지 않지만, 정말 재미있는 레코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이 레코드는 1929년에 영국 '링구아폰 협회 (The Linguaphone Institute)'에서 한정판매했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강의 녹음입니다. 쇼는 이 레코드에서 "Spoken English"와 "Broken English"에 대해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설명하는데, 딱딱할 것 같은 주제 속에서도 특유의 위트를 잘 살립니다. 자기 자신과 부인을 스스로 놀려먹는 자학 개그까지 구사하며 '잘못된 영어'의 예를 드는 지경에 이르면 절로 웃게 됩니다. 21세기 대한민국 영어 시장에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영어 교재가 없을까요?



덧글

  • 漁夫 2010/12/28 23:10 #

    솔직이 여기 꼽힌 녹음 중 하나도 갖고 있는 넘이 없어서... 카루소는 살까 하다가 포기. 아, 크라이슬러의 EMI 녹음은 있군요.

    제가 주로 모으는 분야에서는, 사실 78회전 녹음들은 실내악과 피아노 쪽이 대부분입니다. 피아노는 78회전 시대에도 음색이 잘 보존된 녹음이 많은 반면 - 특히 소리가 잘 잡힌 넘은 Edwin Fischer와 Alfred Cortot의 녹음들 아닌가 싶습니다 - 현악기를 LP/CD로 복각한 넘들은 대체로 음향의 광채가 죽는 수가 많아서 좀 꺼리게 되더라고요. 78회전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제 주력 시기는 50~70년대입니다. 요즘은 시대 악기 중심으로 디지탈도 좀 사지만 어디까지나 주력은 모노랄과 스테레오 시대지 그 바깥은 아닌성 싶군요.
  • 진성당거사 2010/12/29 09:14 #

    에드윈 피셔나 알프레드 코르토의 레코드는 확실히 당대의 녹음 중에서도 음질이 대단하지요. 다만 코르토의 20년대 중반 녹음들은 마이크가 과하게 피아노와 가까웠던지 좀 음질이 열악한 축입니다. 복각도 그럭저럭 잘 되긴 했지만 여전히 오리지날의 순정도에는 좀 못미치죠. 슈나벨이나 엘리 네이, 박하우스는 또 어떠신지요? 그리고 아주 오래된 피아노 녹음들을 원하신다면 라울 푸뇨나 루이 디에머, 생상스, 드뷔시부터, 프란시스 플랑테, 블라디미르 드 파흐만 등도 복각해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아마 카루소의 발매 음반 중에 한 70퍼센트는 보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rumic71 2010/12/29 13:52 #

    생각해보면 무인도에서 전력 공급이 제대로 되기 힘드니 유성기를 가지고 가는 게 정답이기는 하군요.
  • 진성당거사 2010/12/29 14:32 #

    바늘만 풍부하고 몇 년 안에 모터 윤활만 어떻게든 시킬 수 있다면 레코드가 닳아빠지도록 들을 수 있겠지요. 여기 리스트에 있는 곡 중에 들어보신 곡 있으신가요?
  • rumic71 2010/12/29 14:50 #

    -일전에 떠 주신 것들은 물론 제외하고-카루소와 페르귄트는 들어본 것 같은데 집에 소스가 있는지 좀 뒤져봐야 확인할 것 같고, 재즈 쪽은 제가 생 초짜라 무슨 곡인지도 잘 모릅니다...그나마 아는 곡이 글렌밀러인데, 유튜브 소스로 들었으니 음질을 따질 수도 없군요. (놈놈놈에서 이 곡을 유성기로 돌리는 장면이 나왔더랬지요) ...
  • 번동아제 2010/12/30 00:08 #

    전 별달리 명반이라 할 것도 없지만 결혼하면서 LP 돌릴 수 있는 오이오를 버린 것이 후회될 때가 많더군요. CD는 무언가 빠진듯한 소리가...
  • 캐스트너 2011/02/11 13:32 #

    와! 브리튼의 캐롤의 제전 하프 간주곡을 선정해주시다니 웬지 제가 영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 시간 나시면 그 연주 제게도 한번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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