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1979년 10월 10일자 경향신문을 통해 처음 소개된 뒤 여러 역사 관련 서적에 소개된 아래의 '대원군 칼라 사진'에 대해 퍽 미심쩍게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이 사진은 가톨릭 대구교구의 정순재 신부가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의 루이 델랑드 신부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해, '사진 연구가' 정성길 씨(* 사진 수집가,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 명예관장) 의 손을 거쳐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해서 보도했습니다. 이후 이 사진은 대원군이 청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찍은 사진이라고 추정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대원군의 다른 알려진 사진과는 얼굴 모습이나 수염 등이 달라보이고, 국내에서 유존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이상한 모양의 관복을 입고 있는데다가 (*청나라에서 찍은 사진이라 알려진 근거입니다만). 또한 대원군의 살아 생전에는 별로 유행하지 않던 (*1860년대에 처음 개발되었다가 금세 시들해졌고, 다시 1900년대에 유행을 탔지만 이내 진짜 칼라 사진의 등장으로 쇠퇴한) 채색 유리원판 사진이라는 점 등등이 퍽 이상했습니다. 비교를 위해 아래 지금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대원군의 사진 두 장과, 초상화 (1881년 흑건청포본)을 올립니다.

주한미국공사 호레이스 알렌이 소장했던 사진. 1885년경 인화 (촬영연대 미상).

대원군이 청나라에서 찍은 것이 확실한 사진. 1883년 8월 6일 중국 텐진에서 촬영.
이 사진과 위의 사진을 비교해봐도 확실히 얼굴 모습이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우연하게 위키피디아 검색 도중에 눈에 확 띄는 사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사진의 원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Phan_Thanh_Gi%E1%BA%A3n
이 사진은 베트남 응웬왕조 조정의 중신으로 베트남의 프랑스 초대 대사를 역임한 유학자이자 관료인 판타인쟌 (潘淸簡, 1796 ~ 1867)의 사진으로, 1863년 그가 프랑스에 파견되었을 당시에 촬영된 사진이며, 원본 네가티브와 프린트는 현재 프랑스 파리의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비록 사진의 해상도가 별로 좋지 않지만, 위의 '대원군 사진'이라 알려진 사진과는 입고 있는 관복이나 바닥에 깔린 융단 등등이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1865년에 촬영한 (해상도가 좀 더 나은) 판타인쟌의 또 다른 사진 역시 문제의 사진이 판타인쟌이나 그와 연관이 있는 인물일 가능성을 높입니다. 무엇보다도, 대원군의 얼굴에서는 광대뼈가 거의 도드라져보이지 않는 데 비해, 판타인쟌의 얼굴에서는 저 칼라사진과 마찬가지로 광대뼈가 퍽 도드라져 보입니다.

게다가 저 칼라 사진에서는 사진의 주인공이 훈장 같은 것을 패용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판타인쟌은 1862년에 프랑스 정부와 베트남 조정 사이에 체결된 사이공 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이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로부터 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당대의 베트남 명사들이 레종 도뇌르를 비롯한 훈장을 여럿 받기도 했습니다.
배움이 짧아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대원군은 평생 어디에서도 훈장을 받은 적이 없는 듯 합니다. 대한제국의 훈장은 (양력) 1899년 7월 4일 반포된 칙령 제 30호 "표훈원 관제"에 의해 처음 공식 제정되었고, 대원군은 (양력) 1898년 2월 22일에 타계했으니까요.
쉽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1979년 당시 사진의 최초 발견자가 특별한 역사적 이해 없이 이 사진을 곧바로 대원군의 사진이라 지레짐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역사에 퍽 무지한 탓에 수많은 사진을 잘못 고증한 것으로 꽤 악명이 높은 정성길 씨가 이 사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찌되었든, 잘못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게 아닐까요.
(추가 - 11/01/10, 오전 10시 23분.)
구글 검색으로 찾아낸 또 다른 판타인쟌의 사진입니다. 1863년의 사진과 동일한 장소로 보이는 곳에서 서서 찍은 사진입니다.





덧글
사진자료는 사진으로 비교하는 것이 가장 좋지요. 흑백사진이긴 하지만 관복의 문양이 일치하는 걸 보니 제대로 짚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승만의 책 '독립정신' 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이라 알려진 사진 등은 좀더 검토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ps. 무려 1860년대 당시 전통 복식 차임의 동양인이 튈르리 궁전에 나타났으니, 프랑스 상류사회의 호기심이 대단했겠죠?ㅋ
자국민 죽이고 서로 전투를 벌인 나라에 훈장을 줄 리도 없고(대원군도 당연히 안 받았을거고;;)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해볼 때 다른 나라에서 훈장(저 모양만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훈장을 생각할 때)을 줄 확률도 거의 없을 것 같네요 @ㅅ@
저 사진 속의 인물이 대원군이라고 베트남사람에게 소개한다면... 상당히 부끄러워 지겠네요...
링크를 해 보았는데,
어휴 관심들이 대단하군요.
이미 다들 제대로 판단하고 계신 것처럼,
저 관복은 베트남 것임이 분명해요. 관복의 문양이 화려 대담하지요?
단지,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악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판타인쟌은 분명 아니구요.
베트남에서 망건은...본적이 없는데, ,,,저 관모 안의 선이 무엇일지 나도 궁금하군요.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 못해서 나도 답답합니다.
미안해요.
최병욱
우리가 지금 멸시하는 베트남 사람들이야말로 "적어도 19세기만으로 한정하더라도" 우리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저 조복과 저 당시 우리 중신들의 조복을 머릿속에서 비교해보니...
하긴 필리핀 사람들은 1950년대에 장충체육관을 지어주었다는 판에...
왕족과 돈 좀 있고 방귀 좀 뀌는 양반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던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는, <못난 조선>의 저자의 재미난 질문이 있더군요.
뭐, 이글루스 분들은 그 저자인 기자 아줌씨를 어떻게 볼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그저...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인 90년대 초반에 <한문> 교과서에 나온 어느 실학자의 주장, "우리도 무역을 하면 비단으로 옷 해입고 좋은 종이에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등이 생각나서 말이죠.
PS. 물론 경복궁 중건의 여파로 흥선대원군이 사치를 금했다고는 하지만...
모르면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