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고증은 두고두고 해악을 끼친다 - 동아일보사의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 by 진성당거사

(이 포스팅의 내용은 문화재연구가 이순우 선생님이 다음 카페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 에 쓰신 글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잘못된 사진 고증의 예 역시 이순우 선생님께서 최초로 지적하신 내용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웬만한 시립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의 역사 (900번) 코너에는 자주 단골로 찾을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이 책.


이글루스 역밸에 계신 분들이라면, 이 책을 직접 들춰보지는 않으셨다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오명가명 한번 쯤 그 표지 정도보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1979년에 동아일보가 창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간행한 것이었는데, 79년 당시 3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각계에서의 호응이 매우 좋아서, 양장본 사진첩으로는 국내에서 거의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판매고를 기록, 1994년까지 계속해서 재판이 발행되었을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한 사진을 한꺼번에 주제별, 시대별로 묶어 낸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고, 개중에는 '최초로 발굴 소개된' 사진자료도 다량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 포함된 사진자료들은 그 후 수많은 다른 역사 관련 서적이나 신문, 잡지 기사, 심지어는 국정교과서나 국가기록원 자료실 공식자료에까지 이용되는 등 그 파급력이 대단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자체는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에 어떤 의미에서 한 획을 그은 것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의 출간 이후 32년이 흐른 지금 현재 이 책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고증 오류나 엉터리 내용이 허다하게 많다는 점이다. 개중에 특히 문제가 되는 것들은 다름아닌 '최초 공개되는 사진'들로 이 책에 처음 소개된 사진들이었다.

'최초', '독점'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신문사 편집부의 어쩔 수 없는 고질병이 나타난 케이스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이해해 줄만 하지만,  사진의 소개 이후 자그마치 30여년이 흘러가는데도 이 사진을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누구도 - 심지어 전공자들이라는 사람들의 태반도 -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말 한숨만 나는 일이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연대가 불확실하거나, 또는 피사체가 흐릿하게 나온 오래된 사진들을 분석하고 그 내용을 고증하고 감정하는 작업이 하나의 엄연한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는 이 책에 소개된 가장 크나큰 오류 두 가지에 대해서 지적해보려고 한다. 글 첫머리에서 밝혀 놓았듯, 이 내용은 이미 이순우 선생님께서 먼저 지적하신 내용이라 나는 단순히 그 내용을 다시 인용하고 소개하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지만, 어쨌든 이런 잘못된 내용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어떻게든 알리고 정정하려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역덕후가 할 일이 아닐까.

일단, 먼저 이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은 우리가 흔히 '아관파천' 사진으로 알고 있는 사진이다. '한국 백년'에 '최초로 공개된'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사진이며, 금성사 근현대사 교과서를 비롯한 수많은 책에 끊임없이 인용되어 왔던 사진이다.

책에 실려있는 사진 설명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
(1) "러시아 공사관으로 찾아온 日軍에게 자기의 뜻을 전하고 있는 高宗" - 2층 흰 두루마기를 입은 두 사람 중 오른쪽이 고종이고 왼쪽은 당시의 황태자 순종이다. 그 좌우에 있는 사람들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간 각부의 대신들이다. 사진 1,2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귀중한 사진들이다. 

그 옆에 붙어있는 사진 (2)는 이런 모습이다.

(2) "러시아 공사관으로 대포까지 끌고 들어가서 고종 알현을 강요하고 있는 일본군들" -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한반도에서 많은 이권을 상실한 일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종을 환궁시키려고 했다. 무엄하게도 남의 나라 공사관에까지 대포를 끌고 들어가서 국왕의 알현을 위협해야 할 정도로 그들은 이에 안간힘을 다했다.

자,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내용이 철저히 틀렸다는 것이다.
일단 두 가지 사실만 확실히 알아도 이 사진이 절대 아관파천 장면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먼저 러시아 공사관 건물의 모습, 그리고 저 문제의 첫번째 사진만 자세히 봐도 알수 있는 너무나 명백한 또 한가지 사실이다.

러시아 공사관 건물은 이렇게 생겼었다.

보시다시피 오늘날에도 잔존하고 있는 2층 망루를 제외하고는 건물 전체가 단층이었다.
즉, 고종과 순종이 서 있는 문제의 2층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종과 순종이 서 있는 칸 왼쪽에 또 다른 한 무리의 사람이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의 빨간색 테두리 안을 자세히 보라. 갓을 쓰고 있는 키 작은 소년이 하나 눈에 뜨일 것이다.


저 소년의 정체는 바로 이 사람.

바로, 영친왕 이은 (1897 ~ 1970)이다.


이 사진이 만약 진짜 아관파천 사진이라면, 이 사진에 영친왕은 찍힐 수가 없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5일 사이의 기간이고, 영친왕은 1897년 10월 20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사진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진 속 건물의 정체는 현재의 덕수궁 석조전 뒷편에 있던 커다란 서양식 벽돌건물, 돈덕전이다. 

그리고 사진의 정체는 당시 일본 측 자료와 대한매일신보 등의 보도로 미루어보아, 1907년 6월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한국을 방문했을 무렵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데라우치가 당시 덕수궁을 방문해, 대한제국 시위대에 통감부 대표 명의로 일본산 대포와 기관총을 기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이 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아닐까 한다. 

한편 서울대학교 이태진 교수는, 이 사진이 1907년 7월 22일에 헤이그 밀사 사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일본군 1개 대대가 덕수궁으로 쳐들어와 경내에서 고종 퇴위를 요구하는 무력 시위를 벌인 모습을 촬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태진 교수가 사료적 근거를 댄 것이 전혀 없는 관계로 그 주장에 대해서는 판단을 일단 유보해 둔다. 이것과 동일한 형태의 사진 판형이 프랑스 잡지 일뤼스트라시옹 1907년 9월 7일자에 보도된 것을 보아 이 사진이 분명 1907년 언저리에 촬영된 것임은 의심이 없어보인다. 

어쨌든, 이 사진은 아관파천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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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이 퍼뜨린 최악의 고증오류는 바로 이 사진이다. 사실 이 사진은 그 후 이 사진을 다른 책에 싣던 사람들이 멋도 모르고 사진에 제멋대로 가위질을 하는 바람에 그 정체가 더더욱 왜곡된 점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경술국치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알고 있는, 너무 유명한 사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진은 경술국치 때 촬영된 사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진이 경술국치 때의 사진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바로 이 '한국 백년'에 달렸던 설명문 때문이었다.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 합방이 되자 일인들은 재빨리 경복궁 근정전에 그들의 국기를 내걸고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근정전 위를 날고 있는 것은 일군(日軍) 비행기 삼중호 (三重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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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비행기??



비행기??!!





그렇다. 이 사진에는 본래 비행기가 찍혀있었다. 이 사진의 원래 판형은 이런 모습이었다.


'
이 사진이 '한국 백년' 에 실렸을 때의 모습.

누군가가 근정전 지붕 위에 찍힌 비행기를 보지 못하고 저렇게 빨간 선을 그은 부분만 잘라내어 책에 싣기 시작하면서 이 사진이 어느때부터인가 경술국치 바로 그 날의 사진처럼 인식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 사진은 1915년 10월 1일,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 개막식 날, 공진회 주최측이 일본 제국비행협회와의 교섭을 통해 행사용으로 섭외한 민간 비행기 "미에(三重)호"의 비행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비행기의 주인이자 조종사는 당시 일본 사법대신의 아들이자 훗날 일본 참의원을 지낸 오자키 유키데루 (尾崎行輝, 1888 ~ 1964) 였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미에 현의 이름을 딴 이 비행기를 타고 10월 1일 아침 8시에 용산연병장에서 이륙, 그날 아침 나절 내내 용산부터 경성 시가지 일대를 여러차례 비행하였던 것이다. 

오자키 유키데루와 그의 시범 비행행사에 대한 기록은 1915년 9월 28일자/10월 2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 두 건을 통해서 금방 찾아 낼 수 있다.

오자키 유키데루와의 인터뷰 기사. 1915년 9월 28일 매일신보.

아마도 1979년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에서는 1916년에 발행된 "조선물산공진회 보고서" 의 화보에 실려있는 사진을 그대로 게재한 것 같다. 이 비행기가 삼중호라는 것을 표시한 것도 이 책에 달려있는 캡션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책의 내용을 인용했으면서도 정작 '삼중호'가 어떤 비행기였는지, 비행기가 근정전 사진에 왜 찍혔는지는 전혀 고증할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1970년대 초반에 매일신보의 색인집이 자료화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마음만 먹었다면 삼중호가 어떤 비행기였는가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서는 아무 근거도 없이 민간 비행기를 졸지에 일본군 비행기로 둔갑시켰다.

'조선물산공진회 보고서'에 실린 원래의 사진. 동아일보의 사진은 이 사진을 퍼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사진 두 장의 검토만 보아도, 한번 잘못된 고증과, 그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두고두고 오류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지 않나 한다. '한국 백년'에는 이밖에도 오류들이 부지기수이지만, 글이 이미 너무 길어졌고, 아직까지 내가 직접 세세한 검토를 하지 않았기에 이 글에서는 일단 접기로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오류를 잡아내려는 노력이 지금까지 너무나 적었다는 점이다. 


P.S.

그러고보니 1970년대에는 신문사 기자들이 온갖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기사를 쓰던 시대였다. 경주 황남대총과 황룡사 목탑지 발굴 때 유력 일간지에서 말도 안되는 허위 기사를 내보냈었다. 그래서 당시 고고학자 조유전 선생이 그런 오보에 대해 신문사에 직접 항의하러 찾아갔더니 기사를 쓴 기자라는 양반 왈, "기사 내용은 한 오십프로만 맞으면 돼요,"였다나.

어쨌든, 잘못 아는것은 모르는 것보다 못한거다.

덧글

  • 야스페르츠 2011/01/13 13:08 #

    잘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그것이네요. 그나마 아관파천 사진의 경우에는 최근에는 오류임이 나름 알려져서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근정전 사진은... 저도 모르고 그냥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넣었을 정도이니... ㅡㅡ;;
  • 진성당거사 2011/01/13 13:43 #

    아, 그러고보니 지난 주말에 서대문형무소에 여자 친구랑 놀러가서 역사관 새로 구경했는데, 근정전 말고 또 다른 사진이 하나 오류가 있더군요. 고종 임금과 그 측근들 - 친일파들도 물론 상당수 있기는 하지만 - 이 석조전 계단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걸 "경술국치의 원흉" 비슷하게 캡션을 다셨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수정 부탁드립니다. (http://blog.naver.com/tcasuk?Redirect=Log&logNo=50024388604 - 지금 말씀드린 사진과 동일한 도판은 포스터 사진 기준으로 여섯번째에 있는 사진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13 14:11 #

    흠... 그 캡션 자체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요. 고종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인물들을 묶어서 서술한 건데.... 그 멤버들이 고종과 측근들이었군요... 그럼 또 오류네요. 그러고보니 연대도 틀리네... 나참. ㅡㅡ;;
  • 누군가의친구 2011/01/13 13:16 #

    이참에 잘못된 고증에 대해서 다시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대원군으로 알려진 사진 고증 이후 또 이런 사진의 고증문제보니 전체적으로 검토가 왜 필요한지 알만하군요.
  • 耿君 2011/01/13 13:41 #

    아 뼈아프네요.
  • 초록불 2011/01/13 14:02 #

    좋은 포스팅입니다. 지속적으로 오류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것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Mr 스노우 2011/01/13 14:05 #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추천하려고 했는데 지난번 대원군 포스팅을 추천했기 때문에 할수가 없군요 -_-
  • 한단인 2011/01/13 14:14 #

    설마 덕수궁은 아니겠지라며 스크롤을 내리니 덕수궁 돈덕전이 두둥
  • 궁상각치우 2011/01/13 14:33 #

    아관파천 사진은 좀 충격이네요. 교생때도 고종이라고 가르쳤는데 ㅠ
    그래도 이 포스팅 덕분에 오류를 알았으니 다음부턴 반복하지 않게되는걸 위안삼을 수 있겠습니다 ㅠ
  • 슈타인호프 2011/01/13 14:51 #

    그래도 첫번째 사진은 그전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두번째 사진은 정말 처음입니다. 좋은 지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행인1 2011/01/13 14:51 #

    저 사진 저도 아관파천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 hyjoon 2011/01/13 14:51 #

    좋은 정보 알아갑니다.
  • 소시민 2011/01/13 14:57 #

    "기사 내용은 한 오십프로만 맞으면 돼요,"

    - 그 기자분은 향후 데스크진에 합류해서도 후배 기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을가요...
  • rumic71 2011/01/14 18:05 #

    뭐 요즘은 오십프로만 맞춰도 잘한다 싶을 지경입니다.
  • ArchDuke 2011/01/13 15:33 #

    어익후.
  • 앨런비 2011/01/13 16:44 #

    어익후야-_-;
  • 들꽃향기 2011/01/13 19:37 #

    헐......저도 아관파천 사진으로 알고 있던 사항인데;;; 거의 충격이군요;;;;;ㄷㄷ 경술국치 사진도 그렇고;;;; 이건 정말 그저 머리를 두들기는 듯한 충격이란 말밖에;;;
  • virustotal 2011/01/13 19:55 #

    (약간의 조작?정리는)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에 맞게 다시적는거다 라는 말을 하던데

    좀 심하네

    동학농민반란이라고 했다가 혁명이라고 했다

    5,16 5.18 명칭이나 사진유물 해석관점이 좀 변하는건

    시대마다 변하지만 이건 ...

    저도 몇개 엉터리 기사들 생각나네요

    고종황제가 근대화 한다고 처음 (인가 아무튼기억이 잘안남) 아시아에서 전차를 서울에

    설치했는데 그걸 죄다 기자들은 왜정시대 일제가 설치했다고

    일제가 만든 전차선유구가 발견되었니 전차가 어떻니

    아무튼 역사나 과학은 거의 구라 엉터리죠

    최근에 나온 DDR4가 모뎀도 아닌데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105015014&spage=1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드라마 3편을 1초 만에 내려받을 수 있는 차세대 고성능 DDR4

    메모리가 랜카드나 광케이블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올해 나온것도 이런데 옛날꺼는 당연하죠
  • milln 2011/01/14 07:52 #

    기사중에 설명이 좀 부족하긴 한데 제반사항을 충족한 상황에서 (회선 속도, 하드 rpm 등) 램속이 다운로드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건 맞죠.

    보통 램속보다는 다른게 훨씬 쳐지기 때문에 (100M회선이라고 해 봐야 초당 10M 약간 넘으니까..) 현실적으로 램이 다운로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거의 없는거지..
  • virustotal 2011/01/14 16:53 #

    milln 님 그게 어느정도는 맞다는건 웬만한 사람이면

    전부다 압니다. 하지만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서는 오해 곡해를 할 가능성이 높게 적었죠

    내부전송속도가 FSB가 올라간걸 마치 그게 광케이블처럼 적으니 컴퓨터 전문사이트 기사와 설명과 대충대충 이런게 나왔다 적는

    일반기사는 천양지차죠
  • hislove 2011/01/18 17:16 #

    "내려받다"에 "데이터를 메모리로 읽어들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만.
  • OffSpeed 2011/01/13 20:10 #

    위 두 사진이 전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 강희대제 2011/01/13 20:17 #

    후.. 역시 이태진씨는 저기가서도 개드립을...
  • ygy2011 2011/01/13 20:32 #

    ㄷㄷ... 제가 갖고 있는 1987년 서문당에서 나온 사진책에도 저렇게 잘못 서술되어 있네요. 아마 저 책 이후에 나온 사진책들은 저런 오류가 되풀이되었을것 같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1/01/14 05:52 #

    서문당 사진첩이면 '민족의 사진첩'이라는 그 책 얘기신가보군요. 그 책은 한술 더 뜹니다. 그 책의 편집자 중에 지난번 포스팅에서 제가 언급한 정성길 씨가 있는데, 그 사람은 말도 안되는 얘기를 가지고 엉터리 고증을 하는데는 선수입니다.
  • ygy2011 2011/01/14 15:39 #

    민족의 사진첩은 아니고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조선시대, 근대한국)' 시리즈입니다. 이규헌 씨가 해설한게 3권이고 정성길씨는 없어서 다행이네요. 책의 협조처에 동아일보사가 있는 걸 보니 아마 저 책의 내용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 카니발 2011/01/13 20:35 #

    쿨럭, 아관파천 저 사진은 당연한듯이 고등학교 근현대사에서 아관파천 사진으로 쓰이고 있는데 오류였군요.; 덕분에 잘 알고 갑니다.
  • 을파소 2011/01/13 23:00 #

    익숙한 사진들이 실은 오보였군요.
  • 유머나라 2011/01/14 22:14 #

    정말 역사란.. 철저히 고증해야겠어요~
  • 파랑나리 2011/01/18 13:30 #

    기사란 한 오십프로만 맞으면 된다는 그 기자라는 이름의 사기꾼의 정신상태가 궁금하군요. 그럼 오십프로는 틀려도 된다는 건가? 거짓말에 사실을 적당히 섞어야 더 잘 먹히는 걸 생각하면 저 기자는 자기가 기자가 아니라 사기꾼임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있으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놈입니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기자는 위장된 직분입니다.) 괴벨스같은 짓을 벌이는 놈들을 보면 그냥 확!!
  • 만슈타인 2011/01/20 20:51 #

    이거 뭐... 진짜 위험하군요 (...)
  • 노리개 2011/01/21 02:52 #

    이렇게 간결하고 쉽게 써주셔서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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