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리코 카루소 (Enrico Caruso, 1873 ~ 1921)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 (1873 ~ 1921)는 세계 음반 역사상 최초의 슈퍼스타였습니다. 1902년 4월 11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그랑데 호텔 403호실에서 녹음된 10곡의 오페라 아리아[1]는 당시 29세였던 이 신인 테너의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드높이는데 크나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1903년 말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처음 데뷔한 뒤, 1920년까지 17년 동안 메트의 주연 테너로서 77편의 오페라와 1607회의 본무대 공연, 그리고 1520회의 리사이틀에 출연하며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1920년 말 급성 늑막염으로 쓰러져 몇 차례의 수술을 거듭한 뒤 투병생활을 하다 1921년, 폐렴과 기관지 합병증으로 48세의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가 1902년부터 1920년까지 남긴 249장의 레코드는 계속해서 판매되었고,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CD로 복각되어 나오고 있습니다[2]. SP음반 시대의 성악가들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그가 남긴 레코드 중 가장 유명한 레코드는 단연, 1907년 3월 17일, 미국 뉴욕의 빅터 토킹 머신 주식회사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 (Pagliacci)' 중 '의상을 입어라 (Vesti la Giubba)' 입니다. 카루소는 1902년과 1904년에도 피아노 반주로 이 곡을 녹음했습니다만, 오케스트라 반주가 붙은 이 레코드야말로 그 중 가장 절창이라 하겠습니다 [3].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이라 할 , "웃어라 광대여! Ridi, Pagliaccio!" 가사 직전 터져나오는 그 긴 장탄식은 20세기 성악 예술의 엑기스가 아닐까 감히 말해봅니다.

영국 그라모폰 컴퍼니 (Gramophone Company) [4]의 라이센스 프레싱. 1907년 초판.
(음원 삭제했습니다.)
이 레코드는 정말 불티나게 팔려나가, 오늘날 세상 어디에서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SP음반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당시 광고에 따르면 100만 장이 팔렸다고 해서, 세계 최초의 밀리언 셀러 레코드라고도[5] 알려져 있습니다.
1907년의 녹음 기술이란, 나팔에 가수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면 나팔 끝의 진동막에 연결된 바늘이 왁스 원반에 소릿골을 새기는 원시적인 방식[6]이었지만, 카루소의 절창을 담아내는 대에는 그리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당대에 카루소의 공연을 들었던 사람들이나, 그의 동료와 친구들은 입을 모아, 레코드에 든 건 카루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My Records would be my autobiography."
1918년에 자기 집에서 축음기[7]를 듣고 있는 카루소의 모습.
카루소가 죽은 지 4년 뒤인 1925년, 전기식 녹음방식, 즉 마이크로 소리를 녹음하는 방식[8]이 마침내 도입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거의 모든 악기와 음악이 기술적 제약 없이 자연스럽게 녹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빅터 레코드사는 1925년 9월,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모든 전속 음악가들의 음반을 모두 새로 개발된 마이크로 다시 취입했습니다. 구식 기계식 녹음으로 이루어진 녹음들은 카탈로그에서 거의 모두 삭제되었고, 이렇게 새로 나온 전기 녹음 음반의 수요는 정말 폭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악 부분의 최고 인기주자 카루소는 이미 죽은지 오래라 신기술을 사용해 신보를 출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926년부터 빅터 레코드 사는 엄청난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 카루소의 레코드들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에 돌입합니다.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믹싱 기술을 사용해, 새로 녹음한 오케스트라에 카루소의 목소리만 옛 레코드에서 뽑아 덧씌워서 신보를 만들어내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옛 레코드에 들어간 오케스트라 소리를 삭제해야만 했고, 지금처럼 샘플링 기술이란 것을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다 보니 이 결과물들은 대개 엉망진창[9]이었습니다.
거의 200만 달러를 투자한 끝에, 6년이 지난 1932년 5월에야 마침내 이렇게 만들어진 카루소의 신보가 처음 발매되었습니다. RCA 빅터 사[10]는 "카루소가 다시 노래한다! (Caruso Sings Again!)" 이라는 카피와 함께 이렇게 만들어진 새 음반들을 크게 홍보했고, 여러모로 기술적인 제약이 많은 레코드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음반들 역시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1939년까지 총 64매의 음반이 '현대화'되어[11] 출시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카루소의 전설은 LP 시대의 도래가 찾아올 때까지 계속 살아남게 됩니다.

1932년 나온 '현대화'된 카루소의 음반 (일본 빅터 라이센스반).
라벨 제일 위에 있는 "VE"는 이 녹음이 전기녹음이라는 표시입니다.
(음원 삭제했습니다)
<Notations>[1] 당시 이 레코드들은 현재 EMI의 전신인 그라모폰 앤 타이프라이터 컴퍼니 (Gramophone & Typewriter Company, 약칭 G&T)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카루소를 최초로 녹음한 녹음 기술자 프레드 가이스버그 (Fred Gaisberg, 1873 ~ 1951)는 이 밖에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약하던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최초로 취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2] 카루소가 남긴 음반 전체를 복각해놓은 전집물은 총 3종 있습니다. 소니-BMG 클래식의 "The Complete Caruso (12CD)", 펄 (Pearl) 레이블의 "The Caruso Editions (4 Volumes, 12CD)", 그리고 낙소스 (Naxos) 레이블의 "Enrico Caruso - The Complete Recordings (12CD)" 입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음질면에서나 구성면에서나 뛰어난 것은 Naxos 레이블의 전집입니다. 이 앨범은 세계적인 복각 엔지니어 워드 마스턴 (Ward Marston)이 복각한 것인데, 잡음도 거의 없고, 원 소스가 매우 깨끗해 카루소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펄 (Pearl) 레이블 판 역시 워드 마스턴이 90년대 초반에 복각한 것인데, 음질은 매우 양호하지만 펄 레이블의 다른 모든 CD가 그렇듯 잡음이 그대로 들어있어, 잡음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소니 BMG 클래식에서 나온 전집은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큰 앨범입니다만, 1960년대에 형편없는 원 소스에서 복각된 마스터 테이프를 그대로 재사용한 것인데다 같은 녹음이 두 번씩 잘못 포함된 사례가 3건이나 있어 구성면에서도 많이 뒤떨어집니다.[3] 여담이지만, 객석의 모 리뷰어는 카루소에 대해 쓰면서 그의 목소리가 서서히 발전했다는 걸 설명하면서, 1902년, 1904년의 녹음에 비해 1907년 버젼이 1분 이상 길다는 것을 예로 들었지요. 문제는 1907년 버젼이 1분 더 긴 이유는, 다른 버젼과는 달리 노래가 끝나고 반주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리뷰를 쓴다는 사람이 음반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그 내용은 그 글을 묶어 낸 단행본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국내의 오페라 애호가들이 2차대전 이전의 '오페라 황금기'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4] 그라모폰 앤 타이프라이터 컴퍼니는 1902년에 미국의 빅터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해 빅터의 자회사가 됩니다. 그렇게 되어 빅터 레코드사와 그라모폰 사 간의 음반 원반은 서로 라이센스 형식으로 교환되어 발매됩니다. 한편 그라모폰 앤 타이프라이터 컴퍼니는 1907년에 타자기 생산을 중단하고 축음기 생산에만 주력하게 되면서 상호를 '그라모폰 컴퍼니'로 바꾸었고, 이윽고1911년부터는 자회사 빅터 레코드의 상표인 그 유명한 "His Master's Voice"를 사용하면서 회사 이름도 "HMV 그라모폰 컴퍼니" 로 하게 됩니다. 경제 대공황으로 회사의 재정이 어렵게 되자, HMV 그라모폰 컴퍼니는 1931년에 영국 콜럼비아를 비롯한 경쟁사들과 합병을 추진, 거대 그룹인 EMI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5] 당대의 광고나 글에서 이 레코드가 100만장이 팔렸다는 기록을 쉽사리 찾을 수 있습니다만, 당시 빅터 레코드 사의 생산 능력을 고려할 때 이것은 사실이 아닌 듯 합니다. 이 레코드의 구체적인 판매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또 다른 '밀리언 셀러'로 알려진 소프라노 알마 글룩의 1914년 레코드 "Carry Me Back to Old Virginny"가 실제로는 고작 20만장 남짓 팔렸던 것을 볼 때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팔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카루소는 1920년에 빅터와 계약 내역을 조정하면서, 그때까지 팔린 모든 레코드에 대한 로열티 190만 달러를 선불로 받았는데, 이를 그의 로열티 계약에 비추어 역산해보면 당시까지 그의 모든 레코드가 약 500만장 정도 팔렸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6] 이런 방식을 어쿠스틱 녹음, 또는 기계식 녹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녹음을 하는 데에는 당연히 기술적인 제약이 커서, 인간 가청 범위의 거의 반 정도밖에 소리를 잡아내지 못했고, 특히 팀파니나 더블베이스의 저음, 바이올린이나 트럼펫의 고음은 아예 녹음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녹음에서도 오케스트라가 마치 풍금 소리같이 들리는 것은 바이올린의 고음이나 타악기 소리가 거의 녹음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7] 이 사진 속에 보이는 축음기는 카루소가 1918년 미국인 도로시 파크 벤자민과 결혼했을 때, 빅터 레코드사가 결혼 선물로 준 '중국풍'의 축음기입니다. 축음기의 뚜껑에는 카루소가 1904년에 빅터 레코드사와 처음 녹음했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의 골든 디스크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축음기는 카루소가 죽은 뒤 빅터 레코드사의 뉴욕 대리점에 있는 전시장에 전시되었는데, 1929년에 도난당해 지금까지 행방을 알지 못합니다.[8] 마이크는 이미 1890년대에 개발되었지만, 전자 기술의 미흡함으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다가 192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에 영국 콜럼비아 사에 의해 최초의 전기 녹음 음반이 발매되었지만 음질은 끔찍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본격적인 전기 녹음 기술은 1924년 말 미국의 벨 전화 연구소 (Bell Telephone Laboratories) 가 개발한 카본 마이크에 의해 처음 상용화 될 수 있었습니다.[9] 당시에는 테이프가 고안되지 않아 음원을 편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카루소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헤드폰을 쓰고 카루소의 목소리를 들으며, 싱크가 맞을 때까지 계속해서 연주를 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믹싱이라고 해 봐야 겨우 소리의 볼륨을 키웠다 줄였다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카루소의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희한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고, 이퀼라이저가 없었기에 소리의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의 '정갈한 아이다'에서는 중간에 나오는 팡파레 부분이 원 음원과 새로 녹음된 음원이 섞여 엉망이 되었습니다.[10] 빅터 레코드 사, 정확히는 빅터 토킹 머신-레코드 주식회사 (Victor Talking Machine-Records Company)는 대공황이 불어닥친 1929년, 라디오 제조업체였던 RCA와 합병을 하여 RCA 빅터 주식회사로 거듭나게 됩니다.[11]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렇게 '현대화'된 레코드들은 퍽 엉망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빅터와 EMI는 1932년부터 일명 "2번 카탈로그"라고 하는 별도의 카탈로그를 발행했습니다. 이 "2번 카탈로그"는 과거의 기계식 녹음 음보들과, 역사적으로 중요한 명사의 연설녹음 등을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이 카탈로그를 통해서 카루소의 음반들 모두가, RCA 빅터의 SP음반의 생산이 최종중단된 1955년까지 계속해서 판매되었습니다. 어쿠스틱 녹음의 수요가 거의 없다시피했던 때였음을 감안하면, 카루소의 위상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덧글
그런데 사실 Fred Gaisberg는 'Engineer'보다는 'Executive/recording producer'에 가깝습니다. 당시에도 EMI에는 전담 engineer들이 있었거든요(이 중 Robert Beckett이나 Arther Clarke 같은 사람들은 아마 모노랄 말기와 스테레오 초기까지 계속 일하더군요). http://fischer.hosting.paran.com/music/review/toshiba-emi-anthologies-k.htm 에서도 제가 전에 producer에 가깝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카루소가 조금더 팔팔하면 전기녹음을 했을테고, 전성기때의 목소리는 느낄수는 없어도 그의 아우라를 느끼게는 해주는 녹음이 남았을텐데 매우 아쉽죠
최근에 45회전으로 엘피시절 마이너 회사가 복각한 리사이틀을 구입했는데 아 노래 잘부른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형편없는 녹음 -특히 반주-이 매우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도 음질이 그저그래요. 게다가 상태도 그저그렇고.. 나중에 복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