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역시 훼이크고...,
바로 아래와 같이 생긴 사진.

이 사진은 대략 지난 2004년 무렵부터 다음 카페 '삼X극'에서 처음 공개된 뒤 심심할만하다 싶으면 이곳저곳에서 떡밥으로 휙 던져지곤 한다. 네이버/다음 메인 게시물에는 아래와 같이, 아마도 'X태극'에서 만든 댓글 봇이 아닌가 하는 괴기스런 댓글도 종종 보인다.

이전부터 저 사진의 정체가 뭔지 참 궁금했는데,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찾아보며 저 사진의 정체를 찾으려고 했다. 한번은 옛날 경주 신라문화제에서 중학생들이 만든 모형 가운데 저런 것과 비슷한 것이 있다는 아는 지인의 제보를 받고, 반가운 마음에 자료를 뒤적거렸지만, 신라문화제에 출품된 작품 목록 중에는 거북선이 없었기에 이건 허사로 끝났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연히, 학교 도서관 3층의 유붕로 기증도서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조그만 문고판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이런 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1970년대 무렵까지 '전통 조선(造船)기술 연구의 권위자'로 세간에 제법 이름이 알려졌던 故 김재근 교수가 1978년에 쓴 짧은 책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책에, 저 위에 있는 문제의 사진이 들어있는게 아닌가!
사소하지만 오랜 숙제 가운데 하나였던, 저 사진의 출처를 마침내 알아낸 것이다.
김재근 교수는 이 사진을 "A Pictorial Treasury of the Marine Museums of the World "라는 책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구글 도서검색을 해보니 1967년에 Brandt Aymar라는 사람이 쓴 책이었다. 어쨌든, 김재근 교수에 따르면, 이 사진 속의 거북선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선원교회 연구소'라는 곳에 소장된 것을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지만, 김재근 교수는 이 거북선이 아마 이 연구소 측이 거북선에 대한 글을 어디선가 읽고 제 나름대로 만들어 전시한 모형 따위가 아닐까 하고 추정하고 있었다. 거기에, 아주 원색적이지만 참으로 적절한 외양 묘사까지 곁들였다.
"그런데 그 꼴이 그로테스크하기 그지 없었다. 뱃머리에 용머리인양 만들어 붙인 그 면상은 귀신같이 험상 궂고, 쇠붙이로 만들어 늘어뜨린 닻은 배안에 들어갈 수도 없을만큼 크며, 선체를 공작한 솜씨 또한......어떻게 그것이 뉴욕, 그것도 그 한복판인 25번가 선원교회연구소에 자리잡고 있는 그 박물관에 전시가 될 수 있었을지....."
도대체 '선원교회 연구소'라는 것이 뭘까 궁금해서 한참동안 구글링을 한 끝에 간신히 찾아냈다. 미국 뉴욕에 있는 "The Seamen’s Church Institute of New York & New Jersey", 약칭 SCI 였다. 1834년, 뉴욕 부둣가에 위치하고 있던 한 감리교 교회에서 선원들에 대한 교육 및 재투자를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로, 세월이 흐른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큰 해상활동 교육 단체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서 다시 구글에서 "Seamen's Church Museum"과 "Turtle Ship"을 넣고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눈에 확 띄는 검색 결과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링크 걸린 부분의 글을 (저작권 문제로 일부밖에 서비스되지 않았지만) 자세히 읽어봤더니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이 거북선 모형이 다름 아닌 "한국의 정부에서 만들어 기증한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국내측 자료에 이런 모형에 대한 내용이 있을까 해서 다시금 인터넷을 뒤적거렸더니......
.
.
.
있었다.
그것도,
삼X극이나 참기름역사 애들이 그렇게도 저주해 마지 않는 국사편찬위원회 DB에.
아래 자료는 이승만 서한철에 묶여 있는 세 개의 문서다. 1956년 1월 6일부터 12일사이에 당시 주 UN 대사였던 임병직 전 외무부장관과 이승만/프란체스카 리, 그리고 SCI 박물관 책임자 사이에 오고 간 편지들의 묶음들이다.





이승만과 임병직 대사/SCI 관계자 사이에 오고간 편지들 모음.
마지막 편지는 프란체스카 리 여사가 보낸 것이다.
정리하자면, 저 사진에 나온 거북선은, 1956년 당시 SCI의 주최로 열린 세계 30여개국 전통선박 모형 전시회에, 당시 한국정부 주도로 (*이승만의 지시로) 출품된 일개 모형을 찍은 사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조선일보 DB에도 1956년 4월 13일자에 "거북선 모형, 美 해사에 기증" 이라는 기사가 있다. 물론 저 협회와 '해군사관학교'는 다른데다, 시간적인 차이도 3개월이나 나지만, 기사 작성자의 착오일수도 있고, 1950년대에 거북선 모형 제작이 꽤나 활발했던 걸 생각하면 - 한산도의 거북선 축소모형이나 서울 이화장에 있는 이승만 소장 거북선 모형 2개 모두 다 1950년대에 제작되었던 것들이다 - 어쨌든 저 문제의 거북선과 관련이 있는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아래는 조선일보 기사 캡쳐 (*자료 연결에 조언 주신 비밀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저런, 구한말 선교사가 찍은 사진이네 어쩌네 하는 소리는 어디서 나왔을까.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네이버 검색에서 "거북선 실제 사진" 을 찾아보니, 웹문서들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다.

나림회보라는 책은 찾아보니 나주 임씨 중앙화수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라고 한다. 그냥 집안 사람들끼리 가끔씩 간행하곤 하는 그저 그런 회보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런 책이 나주 임씨 문중 밖에 유통될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 이 떡밥을 처음 뿌린 사람이 나주 임씨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사진이 무슨 대단한 발견인양 떠들어놓고, 전문가들이 주목했다는 (*그나마 남천우 교수 따위 사람들을 '전문가'로 부를 수 있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까지 썼지만, 사실 사진을 소개한 내용 자체는 김재근 교수가 쓴 내용을 그대로 적어놓은 걸 볼 때 그 책을 베껴놓은 게 틀림없다. 글을 옮겨 적을 때 오타를 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진"이 선원교회 박물관에 있었다는 것'이라고 쓴 걸 보아 그나마도 김재근 교수의 책도 제대로 안 읽은 것 같다. 김재근 교수는 분명히 책에서 '선원교회 연구소 박물관에 있는 거북선'이랬지, '거북선 사진'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 기사에서 한 가지 주목할 건, SCI 박물관 소장품들이 1969년에 '매사추세츠 주 폴라버 해양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는 것이다. '폴라버'는 분명 매사추세츠 주 폴 리버 (Fall River)를 가리키는 게 틀림없다. 구글의 힘을 다시 빌려본 즉, 이 동네에는 유명한 사설 해양박물관이 하나 있다. 아마 문제의 거북선 모형도 지금쯤 이 곳에 보관되어 있지 않을까.
내가 이 모든 걸 다 알아내는데 도합 단 4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삼X극이 저따위 거짓말로 사람들을 수 년간 낚아왔던 것에 비하면,
그리고 내가 그에 버금가는 시간만큼 이 사진의 날조경위를 찾아 헤멘 것에 비하면,
정말 한심하고 허무할 정도로 조금밖에 안 걸린 셈이다.
한참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저따위 사이비 거짓말이 더이상 널리 퍼지지 않도록 하고 싶을 뿐이다.
요약 : 뭐, 구한말 선교사가 찍은 사진? 呵呵. ㅅㅌㄱ은 즐쳐드셈.
덧글
결론적으로 저 사진은 현대한국 정부가 미국에 선물한 모형의 촬영이라는 지적 자체부터가 의미있는 지적인데, 이런 문제까지 파헤치시다니 놀랍고도 박수를 보낼 따름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
(저런 자료까지 수집하셨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시겠지
이것도 안타까운 일이에요.
라는 고전명언은 역시 유용하군요 -_-a
이제 남은건 풍악을 울려라!
떡밥 격파하는데 단지 키보드와 마우스만 필요했을 뿐 ㅋㅋ
하나에 몇 번 때려야 하는겁니까?
...정말 모형사진이었군요.
떡밥이 또다시 하나가 사라지는군요.ㅎㅎ
모형이였다 이거군요 저사진 정체가 진짜 몇년이되도록 궁금햇는데
이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