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축음기-4) 톨스토이의 육성 낭독 녹음 (1909) + 보너스! by 진성당거사

오늘의 주인공은 엄밀히 따지면 음악가가 아니라 세계적인 대 문호 되겠습니다. 굳이 그 약력과 이력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러시아의 19세기 대 작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9.9. ~ 1910.11.20)의 육성 녹음입니다.


1908년에 러시아의 사진작가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가 촬영한 톨스토이의 칼라 사진.


1890년대 이후, 톨스토이는 그 무렵 새로 개발된 수많은 신문물을 통해 세계 방방곡곡의 대중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알리게 됩니다. [1] 그는 19세기에 활동한 그 어느 작가들 가운데서도 소위 '멀티미디어'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날까지 수천 장의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사후 두 편의 영화 분량으로 편집된 기록영화 필름들[2]과, 그리고 오늘 소개할 육성 녹음이 남았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레코드는 1909년 10월 31일, 영국 그라모폰 컴퍼니를 위해 그가 녹음한 네 장의 레코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여기서 그가 쓴 잠언집인 "Thoughts for Every Day" [3] 의 한 구절을 뽑아 낭독하고 있습니다. 이 녹음은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외부 링크 대신 파일을 그대로 올립니다. 

1930년대 HMV '2번 카탈로그' 재발매반.
HMV E-158-A, (Matrix # 6878)
라벨 하단에 새겨진 글씨는 톨스토이의 친필 서명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녹음에서 다소 슬라브 억양이 들어간 영어로 약 50초 동안 말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형편없는 번역 실력으로는 감히 번역하기 주저스러운 예스런 문장이라 번역 없이 원문만 쓰겠습니다.

That the object of life is self-perfection, the perfection of all immortal souls, that this is the only object of my life, is seen to be correct by the fact alone that every other object is essentially a new object. Therefore, the question whether thou hast done what thou shouldst have done is of immense importance, for the only meaning of thy life is in doing in this short term allowed thee, that which is desired of thee by He or That which has sent thee into life. Art thou doing the right thing?

그는 같은 날, 이 잠언집의 다른 대목들을 뽑아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고 그의 모국어인 러시아어 [4]로 각각 낭독해 녹음했습니다. .역시 먼치킨 

저는 이 다른 녹음들을 전부 복사본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만, 음질이 너무 열악한데다, 프랑스어 버젼을 제외하고는 그 내용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따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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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이 녹음이 톨스토이가 남긴 레코딩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1895년에, 남아프리카 출신의 영국계 러시아 사업가인 줄리어스 블록 (Julius Block)이 에디슨에게서 구입한 '완성형 축음기' [5]로 자신의 작품 두 편과 러시아어 마태복음 구절을 부인 소피아와 함께 낭독했는데, 이 녹음은 지난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푸쉬킨 기념관 인류학박물관에서 발견되어 최근 마스턴 (Marston) 레이블에서 복각되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1908년에, 톨스토이는 에디슨에게서 80회 생일 선물로 또 다른 최신형 실린더 축음기를 선물받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아마 이 기계로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는 것에 푹 빠졌던 듯 한데, 이 축음기로 자기 작품의 낭독이나, 비서 발랑탱 불가코프에게 남긴 구술 지시 등을 녹음하기도 했고, 손자들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음성 메시지 같은 사적인 녹음들과, 심지어 동물 소리 성대 모사 (!)에 이르는 온갖 것들을 녹음했습니다. 톨스토이 역시 러시아판 얼리어답터의 원조  이들 실린더 50여개는 현재까지 톨스토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를 모아 지난 2001년에 CD가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보너스 삼아, 톨스토이가 작곡한 피아노 왈츠를 한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피아니스트 레라 아우어바흐가 2004년에, 톨스토이의 야스나야 폴라냐 저택에 남아있는 톨스토이의 피아노로 연주한 녹음입니다.





<References>

[1]  사실 톨스토이가 이런 신문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 알리는 것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톨스토이 본인보다는 그의 딸이자 훗날 톨스토이주의를 전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알렉산드라의 역할이 더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최근 개봉한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에서도 살필 수 있듯, 1905년 이후로 그의 야스나야 폴랴나 저택에는 상주 영화카메라맨들이 식객으로 눌러 앉아 그의 거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필름에 기록했습니다.

[3] 이 책은 국내에서도 2007년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4톨스토이는 이 4개 국어 외에도 스웨덴어, 이탈리아어, 투르크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잠언집은 당시까지 러시아어 원문말고는 다른 번역본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4개 국어 녹음들은 모두 톨스토이가 직접 번역해 낭독한 셈입니다.

[5] 이 기계에 대해서는 나이팅게일 육성녹음 포스팅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덧글

  • Jes 2011/04/03 21:12 #

    오오 톨스토이 옹 위인은 역시 그냥 있어도 간지가 넘치는군요.
  • 하늘사랑 2011/04/04 15:57 #

    톨스토이가 작곡한 피아노 곡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곡의 감미로움은 더 놀라움을 줍니다.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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