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축음기-8) 엔리코 카루소 외 5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6중창, '누가 나를 가로막는가' (1908) by 진성당거사

오늘은 초기 레코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유명한 레코드 한 장을 소개할까 합니다.

1908년 2월 7일, 미국 뉴저지 주의 빅터 레코드 사 스튜디오에서는, 아주 역사적인 레코딩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정말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진, 오페라의 6중창,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유명한 6중창, "Chi mi frena?" (누가 나를 가로막는가?) 가 최초로 취입되었던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테너였던 엔리코 카루소를 위시해, 폴란드 출신의 소프라노로 1890년대부터 약 20여년간 메트의 무대를 주름잡은 마르셀라 젬브리히 (Marcella Sembrich), 바리톤 안토니오 스코티 (Antonio Scotti), 베이스 마르셀 주르네 (Marcel Journet), 메조소프라노 지나 세브리나 (Gina Severina), 그리고 테너 프란시스코 다디 (Francesco Daddi)가 참가한, 요즘 말로 하면, "올스타 캐스팅" 레코드였습니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中 에드가르도 역으로 분장한 엔리코 카루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타이틀 롤로 분장한 마르셀라 젬브리히


물론 사람 숫자로만 따지면, 합창단의 레코딩도 그 이전에 몇 번 녹음된 바 [1] 있었습니다만, 해상도는 이미 크게 희생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의 형편 없는 레코드였습니다.

당시 빅터 레코드는 이 레코딩을 "회사 창립 이래 최고의 기념비적 성취"라고 명명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는데, 사실 과장도 아닌 것이, 당시의 그 형편없는 레코딩 기술로 6중창을 녹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은 1908년에 미국의 바리톤 레이날드 워렌라스 (Reinald Warrenrath)가 빅터 레코드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보시다시피 사진의 왼쪽 끝에 있는 흰 색 나팔에 크게 노래를 부르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팔 끝에 달린 운모 진동막이 진동하면서 그 아래 달린 바늘로 소리의 파형을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미세한 고음역이나 저음역을 녹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가수가 고음을 너무 크게 지르면 진동막이 깨져서 녹음 작업 자체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가수는 고음을 낼 때마다 뒤로 조금씩 물러나고, 다시 저음에서는 소리가 제대로 들어가도록 앞으로 천천히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무서운 고음으로 유명했던 소프라노 릴리안 노디카 (Lillian Nordica)는 1906년에 처음 레코딩을 했을 때, 당시의 레코딩 장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음 탓에 결국 스튜디오 문 밖에서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녹음을 해본 적이 없던 초창기 오페라 가수들은 이런 짜증나고 헷갈리는 작업 때문에 말 그대로 '나팔 공포증'[2]이라 불린 증상까지 보이곤 했는데, 성깔로 유명했던 호주 출신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넬리 멜바 (Nellie Melba)는 1904년에 있었던 자신의 최초 레코딩 세션에서, 이 헷갈리는 것을 참다못해 곁에 있던 녹음 기술자 벨포드 로열 (Belford Royal)의 따귀를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6중창을 녹음했다는 것 자체가 가히 어마어마한 일이었던 것이지요. 당시 빅터 레코드 사의 녹음 세션 일람표를 보면, 그 날만 해도 다섯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녹음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녹음을 편집한다는 개념을 꿈도 꾸지 못했고, 아직 로열티 체계가 완전히 적립되지 못한 터라 녹음 한 번당 가수들과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에게 취입료가 지불되었기 때문에[3], 한번 녹음이 실패할 때마다 터무니없는 금액이 날아갔습니다.

여기에, 이 레코드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 중 세 사람 (카루소, 젬브리히, 주르네) 은 이미 기존에 빅터 레코드와 로열티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레코드 한 장 당 1달러 50센트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했습니다. 이 4달러 50센트에, 기본 제작비 50센트,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과 오케스트라에 각각 50센트의 취입료를 지급했기 때문에 레코드의 가격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미친 가격, 7달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눈으로야, "고작 7달러? 에이, 그 정도를 가지고..."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당시 공장 숙련공의 주급이 평균 12달러였던 걸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동안의 물가 상승율을 고려해 이 레코드의 가격을 오늘날 금액으로 환산하면 126달러 52센트, 우리 돈으로 (2011년 4월 29일 환율 기준) 13만 5천원 가량입니다! 고작 3분 57초짜리 레코드 한 장, 그것도 한쪽만 녹음이 있는 쪽판이 그 정도 가격이었다는 건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이 레코드는 음반 역사상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시판된 레코드[4]로 악명이 높습니다만, 1953년에 RCA 빅터의 카탈로그에서 완전히 삭제될 때 까지 45년 동안 계속해서 스테디셀러로 팔렸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가장 흔한 오페라 SP음반 가운데 하나로 액면가보다 낮은 금액에 거래되곤 하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장음반 1 - 1908년 초판 프레싱 (Victor 96200)
* 레코드 가운데 부분에 쓰여진 가격에 주목하십시오!


소장음반 2 (1937년 일본 빅터의 한정판 앨범 "Historical Record Society" 수록 음반)
(Matrix # : C-5052-4)

(* 본 복각음원은 두번째 레코드에서 복각했습니다.)

(음원 삭제했습니다)


여하간, 초창기 기계식 녹음 시대의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지금 들어도 손색이 없는 환상적인 앙상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레코드를 축음기에서 들을 때마다, 정말 가수들이 말 그대로 기계 속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곤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레코드의 판촉용으로 빅터 레코드사는 프랑스의 고몽 (Gaumont) 영화사와 특별히 계약을 체결해, 1908년 말에 홍보용 "발성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레코드에 맞추어 무명의 배우들이 립싱크를 한 것이었는데, 실제 "발성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100여년전 실제 오페라 무대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래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References>

[1] 이미 1902년 4월에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 성가대가, 역사상 마지막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 (Alessandro Moreschi) 의 지휘로 녹음된 바 있었고, 그보다 훨씬 이전인 1888년에 있었던 런던 크리스탈 팰리스에서의 헨델 페스티벌에서,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들" 코러스가 구로 대령에 의해 녹음되기도 했습니다. 

[2] "Horn-o-phobia", 소프라노 로자 폰셀 (Rosa Ponselle)이 말년에 자신의 첫 녹음(1918년) 경험을 회고하면서 썼던 말입니다.

[3] 오늘날과 같이 녹음 세션에 참가하는 모든 음악가들에게 로열티가 지급된 것은 1943년부터 45년까지 미국 전미음악가협회의 주도로 이루어진 총파업이 있은 이후입니다.

[4] 저는 이럴때마다 우리가 CD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여담이지만, 1908년 당시 빅터 레코드의 카탈로그에는 공교롭게도, 이 레코드가 "Chi Mi Frena (What Restrains Me?); $7.00"으로 표기되었는데, 그래서 음반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Q :"누가 소비자를 가로막았는가", A : "7달러가 가로막았다" 라는 오래된 조크가 있습니다....^^; 

덧글

  • 들꽃향기 2011/05/02 10:47 #

    엉뚱한 소리일수도 있지만 엔리코 카루소의 분장 사진을 보고 승리한 루저라는 생각이..어흑...
  • 진성당거사 2011/05/02 12:21 #

    뭐....당시 기준으로 카루소의 키 (171cm)는 그래도 상위권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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