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축음기-9,10) 표도르 샬리아핀 - 1926년/1928년 오페라 무대 실황녹음들 by 진성당거사

오늘은,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세계의 거의 모든 오페라 무대를 석권하며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베이스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러시아의 오페라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Feodor Chaliapin, 1873 ~ 1938)의 실황 녹음 두 개를 소개합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 샬리아핀 (Feodor Ivanovich Chaliapin, 1873.2.13 ~ 1938. 4.12)


샬리아핀은 1901년 11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영국 G&T 회사를 위해 7곡의 노래를 처음 취입한 이래, 1936년 일본 도쿄에서 가졌던 리사이틀[1] 직후 남긴 녹음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장 300여곡의 다양한 음반을 남겼습니다. 평론가 허먼 클라인 (Herman Klein)의 말을 빌리면, 동갑내기 엔리코 카루소와 함께 세계 오페라의 "CC" 시대를 열었다 할 정도로 오늘날까지 모든 베이스 가수의 모범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러시아 민요부터 독일 리트, 심지어 이탈리아 칸초네에 이르는 다양한 리사이틀 레퍼토리와 함께, 거의 모든 장르에 이르는 다양한 오페라에 출연했습니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장 유명한 배역은 단연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및 보이토의 오페라 "메피스토펠레스"[2] 의 타이틀 롤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실황녹음 두 개 역시 바로 이들 오페라의 공연 때 녹음된 실황녹음입니다.

1925년 마이크를 사용하는 전기 녹음의 시대가 열린 것은 가히 음반 녹음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녹음조차 안 되던 저음역과 고음역의 레코딩이 거의 완전하게 가능해졌고, 오케스트라 역시 이전처럼 편성을 줄이거나 교체하는 일 없이[3] 악보에 나온 그대로의 녹음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울러, 그 이전에는 거의 꿈도 꾸지 못했던[4], 음악회의 라이브 실황녹음을 녹음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상업적 실황녹음에 가장 처음 발을 디딘 회사는 바로 영국의 HMV였습니다. 그들은 1925년 말부터 실황연주를 녹음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벌였습니다. 때마침 런던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인 코벤트 가든 (Covent Garden)의 새로운 공연 시즌이 돌아오게 되자, 이들은 곧바로 코벤트 가든과의 협의를 통해 오페라의 실황 녹음을 뜨기 위한 각고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오늘날에야, 가령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를 HD 비디오에 돌비 디지털 오디오로 감상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집니다만, '실황연주의 녹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나도 생소하던 그 시절에는 어떻게든 녹음 그 자체를 하기 위해 온갖 고충을 다 겪어야 했습니다. 녹음 스튜디오의 통제된 환경에서조차 아직 100퍼센트 완벽한 결과를 거두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5], 거대한 오페라 무대라는 통제 불능의 공간에 마이크를 설치하는 과정부터, 입력되는 녹음의 음색 및 볼륨조절, 그리고 그 밖의 온갖 기본적인 녹음 세팅을 모두 기초부터 다 다시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무대 커튼박스에 설치했던 마이크가 바닥으로 떨어져 리허설 중이던 오케스트라 단원 한 사람의 머리를 찍어 뇌진탕을 일으키게 만들기도 했고, 마이크 음색 테스트를 시도하던 중에 과부하가 걸려 마이크가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온갖 기술적 문제를 다 극복하고,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 싶었던 찰나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녹음을 위해 가장 중요한 녹음 턴테이블이 너무 커서 문으로 들어오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마이크가 연결된 전선을 밖으로 끌어내 이것을 지하로 몽땅 매설한 뒤, 그것을 코벤트 가든 길 건너편 우체국의 뒷방에 연결하고 거기에 녹음 턴테이블을 설치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무대를 직접 볼 수 없게 되었기에 녹음 기술자들은 큰 난관에 빠졌습니다. 녹음을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하는 수 없이, 마이크를 하나 또 설치하고, 이것을 전화선에 연결해서는 녹음실에 설치한 전화로 연결해 기술자들이 전화로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되었든, 1926년 5월 31일 저녁, 마침내 코벤트 가든의 실황 연주가 처음으로 녹음되었습니다. 샬리아핀이 출연하는 보이토의 오페라 '메피스토펠레스'의 일부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한번에 길어야 4~5분 남짓밖에 녹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페라의 전체를 다 녹음하지는 못하고, 샬리아핀의 솔로 아리아가 나오는 아홉 대목만 녹음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녹음이 잘 된 한 면은, 1926년 7월에 마침내 일반에 발매되었는데, 발매가 되기 전부터 이미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은 녹음 역사상 최초로 예약 판매된 음반이 되었습니다.


'파우스트' 중 메피스토펠레스 역으로 분장한 샬리아핀. 1915년.


보이토 오페라 "메피스토펠레스" 중 "나는 모든것을 부정하는 영혼이라네 (Son lo spirito che Nega!)"
1926년 5월 31일, 영국 런던 코벤트 가든 왕립오페라하우스 실황녹음.
1926년 발매 초판.
HMV DB-942-A (Matrix # : 2-052308)

(음원 삭제했습니다)


그런 온갖 난관과 악조건 속에서 녹음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샬리아핀의 목소리는 정말 아주 뚜렷하게 잘 들립니다. 진정, 그의 전설적인 카리스마가 온 몸으로 느껴지는 녹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에 힘입은 HMV의 기술진은 뒤를 이어, 6월 8일에 호주 출신의 전설적 소프라노 넬리 멜바(Nellie Melba)의 은퇴 공연을 녹음했고, 다시 6월 15일에 이탈리아 출신의 명테너 조반니 제나텔로 (Giovanni Zenatello)의 '오텔로' 실황공연을 녹음하는 등, 1926년 코벤트 가든의 거의 대부분의 주요 오페라를 녹음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CD로 복각되어 오늘날까지도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6].

HMV는 뒤이어 1927년에도 코벤트 가든에서의 실황 연주를 녹음할 계획을 세웠지만, 하필이면 그해 초 새로 바뀐 경영 이사진 측이 이를 승인하지 않는 바람에 그 해에는 아무것도 녹음하지 못했습니다[7]. 결국 실황연주 음반의 판매 수익 분배율을 이전 협약의 세 배로 올린 후에야 마침내 녹음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이윽고 1928년 6월 4일에, 샬리아핀의 가장 유명한 출연작, "보리스 고두노프"를 상당부분 녹음하는 개가를 올립니다.

이 녹음이야말로, 샬리아핀이 남긴 수많은 '보리스 고두노프' 녹음 가운데 가장 결정판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그 악마적 카리스마는 물론이거니와, 당시 관중의 반응까지도 고스란히 들을 수 있어[8], 마치 감상자 본인이 1928년의 코벤트 가든 관중석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집니다.


보리스 고두노프 역으로 분장한 샬리아핀, 1913년.


무소르그스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중 '보리스의 기도와 죽음' 
1928년 6월 4일 영국 런던 코벤트 가든 왕립오페라하우스 실황 녹음.

미국 빅터의 1930년대 후반 라이센스 프레싱 (Victor 15177-A,B, 2면에 나뉘어 녹음)
(Matrix # : CR-2142-1/2143-1)

(음원 삭제했습니다)

<References>

[1] 여담이지만, 그의 리사이틀은 정말 말 그대로 '랜덤 게임'이었습니다. 그의 리사이틀에서는 곡목 200개가 인쇄된 프로그램을 나누어 준 뒤, 이들 가운데 샬리아핀이 즉석에서 아무거나 찍으면 오케스트라나 반주자가 황급히 반주를 준비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그날그날 몇 곡을 부를지는 샬리아핀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행태입니다만, 오히려 당시 청중들은 그것도 샬리아핀의 매력이려니 하고 그 '스릴(?)'을 즐겼다고 하니 말 다했지요. 

[2본래 그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 역으로 개가를 올렸지만, 19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무래도 베이스가수인 본인에게 주목이 갈 수 밖에 없는 보이토의 버젼으로 차츰 선회하게 됩니다. 샬리아핀의 메피스토는 2미터가 넘었던 그의 거구 탓인지는 몰라도 스테이지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마력을 뿜어냈다고 하는데, 한때 '파우스트'에서 그와 같이 공연했던 소프라노 로테 레만 (Lotte Lehmann)은,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연기하는 것은 도저히 설명불가능이에요.....메피스토펠레스가 순결한 마르게리트를 타락시키도록 도와달라고 자연의 힘을 구하는 장면 다음에 그는 무대 뒤쪽에 나무처럼 서있었어요. 그래요.진짜 나무같았죠. 그런데 갑자기 바람처럼 사라진 거에요. 어떻게 그랬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어요. 마치 흑마술같았다니까요. 그런데 막이 끝날 즈음에 어떤 키 큰 존재가 내 머리 위로 나타나는가 싶더니 메피스토가 무서운 거미같이 하고서는 창문을 둘러싼 채 파우스트와 나를 포위하는 거에요.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니까요. 오페라가 아니고 현실의 공포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막이 내린 다음에야 메피스토펠레스는 샬리아핀으로 돌아왔어요. 그제서야 나는 한숨을 쉴 수 있었구요. 정말 샬리아핀의 연기는 마법같은 놀라움이었습니다."

[3더블베이스 대신 트럼펫을 더 넣는다던지 하는 식의 편성 교체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기계식 녹음 시대의 관현악 연주에 거의 열에 아홉은 편곡자 명이 기재된 것도 다 그 이유에서입니다.

[4이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자료실 담당자였던 라이오넬 메이플슨 (Lionel Mapleson)이 1900년부터 1904년까지 메트 오페라의 실황을 에디슨의 실린더 축음기로 여럿 녹음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녹음들은 대개 음질이 극도로 열악해서 자료적 가치 이상의 역할을 빼고는 거의 감상하는 게 무리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 밖에 1920년에도,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1차대전 전몰자 추도회 및 무명용사 장례식이 당시 개발 단계에 있던 마이크 녹음장비로 한 차례 녹음되어 발매되었지만 이것도 음질은 끔찍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5] HMV는 1925년 7월부터 전기녹음을 시작했습니다. 

[6] 당시에 녹음되었지만 당대에도 발매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복각되지 않은 녹음들이 대략 전체 녹음량의 절반 가량이 됩니다. 대부분은 음질상의 문제가 있어 발매되지 않은 것이지만, 몇몇 녹음들의 경우 음질에 문제는 없지만 1920년대 당시 다른 음반사와 레코딩 계약을 체결한 가수들이 녹음에 들어있는 바람에, 80년이 넘은 아직까지도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공개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7궁여지책으로, 근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샬리아핀이 출연한 오페라 "모차르트와 샬리에리"의 실황녹음이 한 차례 녹음되었지만, 녹음 준비 자체가 급하게 이루어진 탓에, 음질은 양호하지만 녹음의 음향 밸런스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8본 음원의 5분 30초 부분에서 보리스가 옥좌에서 몸을 일으키다 앞으로 푹 고꾸라지는 장면을 보고 관중들이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 들립니다. 이 밖에도 여기 올리지는 않았습니다만, 당시 녹음된 실황녹음 가운데 다른 부분, 예컨대 보리스가 환영을 보고 그 환영을 쫒으려 하는 부분에서는, 샬리아핀이 무대에서 의자를 집어던지는 소리와 그에 놀란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들어있습니다. 

덧글

  • 초록불 2011/05/15 15:44 #

    음악에 대해서 별 관심은 없지만 정성들인 포스팅은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갓난눈 2011/05/16 08:37 #

    귀신도 곡허게 맹근다는 샬리아핀이군요, 모처럼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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