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축음기-11) 아멜리타 갈리-쿠르치 - 즐거운 나의 집 (1927) by 진성당거사

오늘은 1920년대 성악 녹음으로는 드물게 국내에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제법 있는 음반 하나를 가볍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1910년대 말부터 20년대 중반까지 세계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았던, 아멜리타 갈리-쿠르치 (Amelita Galli-Curci, 1882.11.18 ~ 1963.11.26)가 부른,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 입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으로 분장한 아멜리타 갈리-쿠르치, 1919년.


갈리-쿠르치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오페라보다는 콘서트 리사이틀에 크게 집중하기 시작했고[1], 레코딩 레퍼토리 역시 이전과는 달리 오페라 아리아보다는 콘서트 넘버 위주로 편성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그녀의 장기였던 믿을수 없을 정도의 기교를 보여주기에는 목소리가 다소 쇠퇴한 탓도 있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이사진들과의 갈등과, 딤즈 테일러(Deems Taylor)나 밀턴 크로스 (Milton Cross) 등을 위시한 당대의 평론가들이 그녀의 기교를 영 좋지 않게 평가하는 것에 질려버린 탓이 컸습니다.

이들 음반들은 그녀의 오페라 음반들보다는 훨씬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갈리-쿠르치 특유의 초절기교를 느끼거나, 예술적인 완성도를 충분히 느끼기에는 그렇게 적합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녀는 1927년 초부터 1928년 말까지 빅터 레코드 사에서 가진 여러차례의 레코딩 세션에서, 주로 영어권 가곡들을 영어로 불렀는데, 이 음반들은 그녀의 이탈리아식 억양과 딕션이 원체 뚜렷한 나머지 가사를 알아듣기 곤란할 정도이지만, 당시 대중들에게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중 가장 히트를 친 음반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오늘 소개할 음반, 즉 1927년 5월 13일, 남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호머 새뮤얼즈 (Homer Samuels)의 피아노 반주로 녹음한 이 음반이었습니다. 이 음반은 1955년에 RCA 빅터가 클래식 SP음반의 생산을 완전 중단할때까지 28년 동안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카탈로그에 실렸을 정도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흔하게 구할수 있는 음반이지만, 그 인기 탓인지는 몰라도 이 음반을 깨끗한 상태로 찾기랑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 복각음반은 1940년대 초반 발매된 것인데, 음반의 원 소유주가 음반을 퍽 많이 들어 음반 전체가 마모된 탓에 잡음이 많이 심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음원 삭제했습니다)


초절기교로 소문났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르기에는 퍽이나 잔잔하고 평이한 곡이긴 하지만, 갈리-쿠르치는 이 곡을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잃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음반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1920년대 녹음의 수요가 거의 전무한 국내에서도 퍽 잘 알려졌는데, 그것은 아마 1988년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의 끝부분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 때문일 듯 합니다.



이 영화속에서는 축음기로 이 레코드를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데, 아래 캡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음반의 레이블이 1940년대 미국 발매반 [2] 이라 사소하긴 하지만 고증오류의 예가 아닐까 합니다.

<References>

[1] 갈리-쿠르치는 1930년 1월을 끝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한 뒤, 계속 콘서트 무대에만 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대결절 수술을 받고 한동안 노래를 접어야만 했습니다. 이후 1936년에 단 한번, 54세의 나이에 시카고에서 '라 보엠'의 미미 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는 영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한번 맡고 형편없는 평을 받은 뒤로는 완전히 무대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녀는 같은 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에 있는 작은 농장을 사서 그 곳에서 남편과 함께 조용하게 살며 노래 강사 및 요가 강사(!) 노릇을 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2] 일본에서도 이 음반이 일본 빅터 레코드사를 통해 1928년에 발매되었고 이후 1940년대 초반까지 오랫동안 발매되었습니다만, 일본에서 발매된 클래식 음반의 경우 음반 레이블의 주변에 구불구불한 무늬가 있는 일명 "스크롤" 레이블이 사용되었을 뿐 저런 원형의 레이블은 전쟁 이후 1946년 초에 생산이 재개될 때까지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덧글

  • 漁夫 2011/05/22 20:36 #

    저도 딱 '반딧불의 묘지' 연상했는데 역시....

    전 78회전에는 익숙하지 않은지라, ball mark와 nipper가 같이 있는 레이블은 처음 봅니다.
  • 들꽃향기 2011/05/22 20:47 #

    저도 반딧불의 묘에서 처음 알게된 기억이 나네요. ㅎㅎ 잘 듣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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