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및 해방 후 마개조당한 조선시대 관청 건물 Worst 10 by 진성당거사

안동 동헌의 복원 그리고 엉터리 복원

어제 이오공감에 오른 팬저님의 글에 조금 덧붙이고자 하는 의미에서 짧게 써보는 글이다.

현재 전국의 지정문화재 가운데에는 줄잡아 약 80여 채의 조선시대 동헌 및 객사 건물이 잔존해 있다. [1]  이들 가운데 그 원형을 온전하게 유지한 채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극소수, 아니 사실 없다시피한데, 그것은 이들 건물의 절대 다수가 일제강점기 이후 그대로 관공서 건물이나 또는 사유 건물로 전용된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문화재 안내판이나 기타 책에서는 이런 행위가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이라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것은 대개 어불성설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타이쇼 말기 까지의 일본에서도 이런 식으로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근대식 관공서로 전용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유리창을 끼우고 벽체를 허물어 평면을 개조하는 등의 개조 및 변형이 생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나마 몇몇 건물의 경우는 아예 원 위치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진 사례도 허다하다. 

일제강점기 때는 그랬다고 쳐도, 해방 후에도 이들 건물들은 1990년대까지 본래 모습을 찾지 못한채 개조된 상태 그대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경우가 많은데, 대개 우리 스스로가 이들 건물의 역사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탓이 크다. 심지어 가깝게는 1970년대까지, 건물이 낡고 협소하다는 이유로 조선시대 관청을 그냥 허물어버리고 새 건물을 지은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2]

오늘 소개하는 건물 10채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관청 건물 중 현재까지 살아남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가운데, 그 개조 변형된 이후의 상태가 가장 엉망이었던 건물들만 모았다. 이들 건물의 다수는 90년대 이후 '복원'되었는데,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나마도 영 형편없는 모습이거나, 또는 사실상 신축에 가까워졌다.

1. 안성객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54호)

1995년 지정 당시의 모습. 조선 초기에 지어져 조선 중기에 보수된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안성군 도서관으로 쓰이다가 1932년 명륜여자중학교에 불하되어 강당 및 도서실 용도로 쓰였고, 지정 당시에는 명륜여자중학교 교장실 및 숙직실로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평면 구조는 완벽하게 원형을 상실했고, 초석과 기단은 완전히 자리가 뒤바뀌고 파손되었으며, 여말선초기의 주심포 배흘림기둥 목구조는 흔적만 빼고는 이미 완전히 퇴락했다.   

1996년 복원된 이후의 모습.
건물 부재 거의 모두를 교체하고 좌우 익사의 사라진 칸을 덧대면서 사실상 신축이 되었다.


2. 봉화 봉서루 (鳳棲樓) (경북 문화재자료 제 418호)


2002년 지정 당시의 모습.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물로, 본래는 봉화현 동헌의 문루이자, 고을 유림들의 회합 장소로 이용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지만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봉화군 봉성리 시장통으로 옮겨져 시장 상가건물로 쓰였고, 다시 1950년대 중반에 개인에게 불하되어 가정집의 일부가 되었다.



2010년 현재의 모습. 2007년 무렵 봉화군에서 복원 공사를 했는데, 이미 문루로서의 기능을 살리지는 못하고
그저 주변 정리 및 부속채 건물을 한식으로 추정 복원하는데에 그쳤다.
 


3. 창녕 객사 (경남 유형문화재 제 231호)

조선시대 창녕읍의 객사 건물로 쓰이던 건물이다. 본래는 여느 객사와 마찬가지로 가운데 주사(정청)와 좌우 양편의 좌우익사가 있는 큰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1924년에 창녕군수가 추진한 공설시장 이전 계획에 맞추어 시장통으로 이전된 뒤 1988년까지 시장 좌판으로 쓰였다. 그후 남은 건물의 일부만 1989년에 창녕 만옥정공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좌우익사는 온데간데 없고, 벽체와 바닥구조도 전혀 원형을 고증할수 없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현재의 모습. 이제는 공원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그늘 구실을 하고 있다.


4. 제주향교 명륜당 (본래 제주유형문화재 제 2호, 현재는 비지정문화재)

1970년대 중반의 모습. 조선 태조 원년에 처음 향교가 지어질 때 처음 지어진 이후 여러차례 중건을 반복한 끝에 1827년에 마지막으로 중건되었다. 그후 1920년대 중반에 유리창을 끼우는 등의 개조 공사가 있었지만, 어쨌든 원형을 크게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건물이 낡고 퇴락했다는 당시 제주 군수의 지시 및 제주시 새마을협의회의 의견 탓에, 건물이 헐리고 말았다. 

1980년대에 새로 지어진 현재의 제주향교 명륜당 모습. 그럴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박정희 정권 때 이후 유행한 목조건물을 빙자한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이다. 
건물 앞 깃대에 걸린 새마을깃발을 보면 뭔가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5. 청도동헌 (경북 문화재자료 제 403호)

조선 영조 때 지어진 건물로, 대개 관공서로 전용되어 개조당한 대개의 동헌과는 달리 일제시대에 지방 유림들의 시사 장소로 쓰이면서 그럭저럭 원형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1956년에 근처에 있던 화양국민학교가 전쟁 중 불탄 건물 대신 이 건물을 이축해 사용하면서 이렇게 엉망이 되고 말았다. 기단부와 주초는 말할 것도 없고, 평면 구조도 거의 완벽하게 변형되었다. 

2007년에 복원된 청도 동헌의 현재 모습. 그나마 사진자료를 토대로 복원해서 원형과 꽤 가깝다고 여겨지지만, 이마저도 원 부재는 거의 다 폐기하고 새 부재를 사용한 것이니 이것도 사실상 신축인 셈이다.


6. 청주 동헌 (충북 유형문화재 제 109호)

조선 효종 때 처음 짓고 순조 때 중창한 건물로, 일제시대에 청원군청으로 사용되었고 그 후 2007년 해체보수 될 때까지 청원군청 사무실 및 비품창고로 사용되었다. 국내에 남아있던 옛 동헌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하지만, 이마저도 이런 식으로 원형을 거의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복원은 거의 상상의 나래를 편 셈이 되었다. 그나마 이 복원도 여기 소개한 건물들 가운데 가장 엉망이었다.


2007년 전면 해체보수 공사 이후 복원된 청주 동헌의 모습. 일제강점기와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손상된 기둥을 동바리 이음 대신 몽땅 잘라내서 건물의 높이가 거의 1미터 가량 줄어들었고, 알수 없는 이유로 장대석 초석을 자연석으로 교체해 원형을 훼손했다. 게다가 여전히 청원군청 주차장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3] 보존에도 이만저만 나쁜 것이 아니다. 


7. 대전 기성관 (대전 문화재자료 제 29호)


조선시대 진잠현 동헌 건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면 네 칸에 측면 두 칸이라는 해괴한 평면구조는 어지간한 동헌 건물의 평면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일제강점기에 이축되던 관아 건물 가운데 건물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경우는 비일비재한데 [4] 이 경우도 아마 그런 경우가 아닌가 여겨진다. 어쨌든 이 건물은 1934년에 이축되어 오랫동안 등기소와 우체국 등등으로 쓰이다가 1992년 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유성구청의 창고가 되어 있었다.  

복원된 기성관의 현재 모습. 시멘트와 아스팔트 등등으로 덮어 씌웠던 기단부를 다시 파낸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동헌의 원형을 상고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임의로 평면구조와 벽체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은 별로 좋은 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8. 경주 동경관 (경북문화재자료 제 3호)  


고려 태조 때 처음 지어진 경주의 객사 건물로, 강릉의 임영관과 함께 고려시대부터 그 연원을 상고할 수 있는 유서깊은 객사 건물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중건하는 과정에서 이곳 담장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만파식적이 발견되었던 것은 이전에 포스팅 했던 적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영조 때 중건한 것이다. 일제시대에도 지정 유적으로 보존되며 매우 드물게 그 원형이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1952년에 국립경주박물관 [5] 강당으로 쓰기 위해 이축하면서 이축 부지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정청과 좌익사는 "버려버리고" 우익사만 이축해버렸다.  

오늘날의 경주 동경관 모습. 경주박물관이 1974년 신관으로 이사간 뒤로는 경주문화원 강당으로 쓰이고 있다.


9. 청주 망선루 (충북 유형문화재 제 110호)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난왔을 때도 이 누각이 있었다고 하니 무척 오래된 누각인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취경루라 불렸는데, 조선 성종 때 한명회가 이 곳에 놀러와서는 망선루로 이름을 바꾸어 그 때부터 망선루라 불렸다. 그 후 여러차례 중수되며 오랫동안 잘 남았는데, 1923년에 청주 군청의 부속건물을 짓느라 헐리게 되어, 근처에 있던 청주제일교회 측이 불하받아 이곳에 이축했다. 하지만 1층 부분 전체를 완전히 벽돌과 시멘트 구조로 개축하고, 건물 전체에 벽체를 만들어버려 원형을 잃어버렸다. 그 후 2001년에 청주 상당공원으로 옮겨져 복원되기까지 이런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2001년 이축 복원된 망선루의 모습. 청주제일교회 구내에 위치해 있던 것을 해체해본 결과 1층의 기둥은 오랫동안 시멘트 벽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부식되어 결국 전체가 새 부재로 지어졌다.


10. 팽성읍 객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37호)


본래 조선 성종 때 처음 지어졌고 조선 순조 때 중창한 건물이다. 1920년에 민간에 불하되어 1960년대 중반까지 양조장으로 사용되었고, 양조장이 폐업한 후 1992년까지는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면서 심하게 원형을 상실했다. 정청 부분에는 현관 부분이 덧대어졌으며, 양조장 기능을 위해 우익사 건물 내에는 양조장비가 설치되었고, 건물의 앞뒤로 새로 증축된 작업장들이 지어졌다. 1994년에 평택시에서 대대적인 복원을 추진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팽성읍 객사 모습. 보기와는 달리 기둥을 비롯한 부재의 손상도 적은 편이었고, 우익사를 제외하고는 평면 구조도 크게 변형되지 않아 그나마 수월하게 복원이 가능했다. 여기 소개된 건물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References>

[1] 문화재청 공식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면 (2010년 9월 기준) "동헌"으로는 72개의 검색결과가, '객사'로는 17개의 검색결과가 나온다. 이 가운데 약 10여개는 동헌이나 객사라는 명칭이 들어간 동산문화재이다.

[2] 가장 좋은 예로, 1960년대까지 상당히 잘 남아있던 서울 종로의 삼군부 건물과 금위영 건물을 들 수 있다. 삼군부 건물은 1967년에 현재의 정부종합청사를 짓기 위해 철거되었다. 당시 남아있던 건물 가운데 청헌당은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져 현재도 육군사관학교 구내에 남아있으며, 나머지 부속건물 상당수는 거의 모두 철거되었다. 금위영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이왕직아악부로 사용되었다가 해방 후에는 국립국악원으로 쓰였는데, 1967년에 국립국악원이 남산으로 이전해가면서 삼환기업에 매각되어 헐렸다. 

[3] 청주 동헌의 경우는 다른 곳으로 이축되지 않고 현재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이축보다는 주변 환경의 정화가 훨씬 더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4] 1923년에 헐려 전주 류씨 종중에 매각되었다가 최근 다시 이축되어 복원된 전주 동헌의 경우도, 본래 정면 여덟 칸이었지만 이축 과정에서 정면 한 칸이 줄어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안성객사의 경우도 좌우 익사가 정청과 합체되어 조립되고, 좌우 칸살이 최소 한 칸 이상 줄어들었다. 이것은 이들 건물들이 이축되던 당시에 썩거나 낡아 쓸 수 없는 부재는 그냥 버리고 새로 조립을 하는 바람에 벌어진 현상이다. 

[5] 당시 경주박물관으로 쓰이던 건물 자체가 경주 동헌과 기타 주변 관아 건물이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1914년에 경주고적보존회가 이 건물을 인수해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1974년에 경주박물관이 신관으로 이사간 뒤에 이들 건물들은 다행히 헐리지 않고 아직까지 경주문화원으로 쓰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건물 모두가 원형이 훼손되고 여러차례 개조되었기 때문에 그 역사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덧글

  • Warfare Archaeology 2011/06/16 18:55 #

    휴우~정리하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나저나 다 엉망진창이네요 이거 원...쯧쯧
  • 한단인 2011/06/16 19:59 #

    보니까 4번이 제일 얼척없네요
  • MessageOnly 2011/06/16 22:01 #

    마개조 (...;)
  • KITUS 2011/06/16 22:21 #

    근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처참하게 형체도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마개존된
    문화재를 지닌 나라들이 있을까요;;; (지배하는 나라에 의해 말이죠;;;
    소피아 대성당도 마찬가지인가;;;)
  • 들꽃향기 2011/06/16 22:48 #

    마개조 (...) 아니면 이거야말로 리카네이션....ㄷㄷ; 어휴...그나저나 정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ㅠ
  • 措大 2011/06/16 23:11 #

    망한 사례 말고 잘 된 사례는 없을까요 --; (10개까지 나올려나)

    충공깽합니다.
  • 행인1 2011/06/16 23:40 #

    정말 문자 그대로' 마개조'로군요.(특히 6번)
  • 대공 2011/06/17 02:21 #

    제주군수가 제일......................
  • 한국 짱 2011/06/17 02:21 #

    6번 9번은 그 지역에 사는 놈으로서 할 말이 없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akashic 2011/06/17 06:28 #

    그나마 애들이 뛰어노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밑에 있는 게 철근 콘크리트… 정말로 웃겼습니다;
  • dunkbear 2011/06/17 07:48 #

    청주동헌은 너무하네요... 주차장이라니... 에휴....
  • 제네식 2011/06/17 08:37 #

    조선시대 목조건물을 철근콘크리트로...
    조크라고 믿고싶네요
  • 천하귀남 2011/06/17 09:20 #

    근본적으로 공무원의 일추진에 딴지걸 감사나 시민단체가 너무도 아쉽습니다. 하긴 공무원 자신이 그런건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저항하는 판이니...
  • 함부르거 2011/06/17 09:22 #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손으로 망가뜨린 게 가장 심하군요...
  • 팬저 2011/06/17 09:36 #

    청주동헌의 경우는 청주시청이 옮겨가면 되니까 나아질 확률이 있지만.....
  • 은화령선 2011/06/17 12:01 #

    .................

    과거 후손에게 얼굴을 들수없을정도로 창피하다.

  • 강희대제 2011/06/17 13:53 #

    차라리 복원하기전 것이 나은 것도 여럿 있네요.
  • 네비아찌 2011/06/17 18:02 #

    정말 통탄스러운 일이네요....조상님들께 사죄할 따름입니다.
  • 松下吹笙 2011/06/17 19:52 #

    봉서루 처럼 어짜피 원형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그냥 그대로 보존 처리하는 것이 좋죠. 나주 금성관도 잘 남은 편인데.. 최근에 복원하면서 좌우 익사합체 신공
  • 진성당거사 2011/06/17 21:12 #

    제가 마지막으로 금성관을 보았을 때가 2006년인가 그랬는데 그 때는 좌익사만 복원하는 중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걸 그런데 정청이랑 합쳐버렸단 말입니까? 그것도 참 난감하군요.
  • 松下吹笙 2011/06/17 19:52 #

    답사 다니다 보면 은근히 관청건물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문화재 지정도 안된 것도 있지요.
  • 진성당거사 2011/06/17 21:09 #

    물론입니다. 당장 서울이나 수도권에만 해도 퍽 많죠. 지방에 내려가면 더 많구요. 얼마전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 보은 내인동헌 내아 같은 경우는 완전히 가정집화 되어버려서 거의 아무도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지요.
  • heinkel111 2011/06/17 23:04 #

    아아.. 눈물이 다 납니다 ㅠㅠ 대학때 남해쪽을 도보로 다니면서 참 많은것을 봤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그때본 수많은 목조건물과 산성, 고인돌들중에 아직도 그때 모습을 간진한게 얼마나 있을지 참으로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ㅅ;
  • 찬별 2011/06/18 05:00 #

    잘 봤습니다. <낡아서 헐으라고 지시했다> 는 표현을 보니까, 확실히 새마을 세대의 전통에 대한 관념은 지금의 세대와 다르다는 느낌이 옵니다. 언젠가 시골의 어머니 구경시켜드린다고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갔더니, <여긴 그냥 고물상이잖아> 라고 실망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어쩐지 오버랩이 되는 상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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