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의 인신공양 설화는 1927년에도 신문에 소개된 적 있다. by 진성당거사

에밀레 종의 비밀을 찾아서

오늘 퇴근하고 나서, 편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무릅쓰고, 근 두 시간 넘게 네이버 디지털 뉴스 라이브러리의 옛날 신문기사를 랜덤으로 검색하면서 보고 또 보고 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네이버 메인에 뜨는 진짜 뉴스 기사 보기도 바쁜 세상에 다 낡아빠진 옛날 신문기사나 들여다보며 킥킥거리고 즐거워하는 게 21세기를 사는 사람으로서는 영 정상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좌우간 내게 있어서 옛날 신문만큼 재미있고 요지경스런 소일거리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막 사치스런 옷을 배격하자는 슬로건을 내건 이화여전 학생들에 대한 기사를 읽은 찰나, 그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던 작은 기사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 기사는 1927년 10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 ["전설의 조선 (35)" - 에밀레 종의 유래 (2)]이다. 내친김에 그 전날 연재분 (27년 10월 9일자) 에 실린 "에밀레 종의 유래 (1)"도 찾아 읽었다. 세부적인 내용에서 사소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에밀레종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여기서는 이 설화가 경주 봉덕사종, 즉 성덕대왕신종에 전해지는 이야기라는 걸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기사를 본 순간 곧바로 떠오른 것은 꽤 오래전에 초록불 님이 쓰신 트랙백한 저 포스팅이었다.

내가 일전에 초록불님 포스팅에 적었던 대로, 20세기 초에 호머 헐버트는 자기 책에서 이 설화가 보신각 종에 얽힌 것이라 소개했는데, 문제의 저 기사에서는 심지어 조선 중기에 주조된 평양 연광정 옆의 평양종에도 똑같은 인신공희 설화가 깃들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평양 사는 임 모씨의 제보라고 친절히 출처도 명기한 걸 보면, 분명 1920년대 중반 평양 사람들 사이에도 틀림없이 저런 설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거슨 북한 버젼 에밀레종입네다.

이렇게 된 이상, 문제의 인신공희 설화는 그냥 웬만한 큰 종이 있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전설이 아닐까 한다. 마치,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장자못에 얽힌 전설이 황해도 장연에 있는 용소에 얽힌 전설과 기본 내용이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그 때도 이미 저 포스팅에 호머 헐버트의 책에 실린 내용을 덧글로 달아서, 저 문년순이라는 사람이 문화재청 칼럼에 기고한 내용이 얼마나 조사가 덜 된 미흡한 글인지 지적했었지만,  이제 이 기사까지 찾아냈으니......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최소한 저 글에 부기라도 달아서, 이 글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뭐, 하기사, 이런 글을 누가 얼마나 읽겠냐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게 뻔하지만. 아니 어쩌면, "뭐든지 일제 탓"을 그렇게 좋아하는 문화재청 공무원들의 의식구조 상, 별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잘못 아는 건 아예 모르는 것보다 못한 거라니까.

덧글

  • 들꽃향기 2011/06/17 22:04 #

    "뭐든지 일재 탓" 운운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겠습니까. ㅎㅎ
  • 초록불 2011/06/17 22:14 #

    http://orumi.egloos.com/4303601

    중국 전설과 관련한 포스팅이니 이것도 참고로 해주세요...^^
  • 한단인 2011/06/17 22:28 #

    허.. 그런..
  • 셰이크 2011/06/17 23:07 #

    큰 종이란게 주조하기가 워낙에 힘들고, 그런 물건이야 일종의 기적으로 간주되니
    기적의 근거로 인신공양이 회자되는 것은 흔한일일지도 모르겠네요.
  • 행인1 2011/06/17 23:17 #

    사실 구한말 외국인 회고록을 읽다보면 무려 '보신각종' 소개에서도 인신공양 설화가 튀어나옵니다.-_-;;
  • 진성당거사 2011/06/18 07:17 #

    제가 본문에서도 썼듯, 호머 헐버트가 그리 기록한 바 있지요.
  • Jude 2011/06/18 22:38 #

    무슨 사람이 필수 자재도 아니고 인신공양 설화가 왜이리 많은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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