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명성황후 사진" 관련 기사 短想. by 진성당거사


일단 이런 사소하지만 오랜 떡밥을 "6년 끝장 추적"한 기자의 근성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합당한 결론을 도출한 것도 마음에 든다. 

사실 하찮은 천학인 내가 보기에....이 명성황후 사진 관련 논란은 애초부터 너무나 명백한 문제를 비전문가들과 온갖 호사가들이 너무 이상하고 한심하게 접근해서 생겨났다고 밖에 할수가 없다.


일단 한때 국사교과서에도 실렸던 이 유명한 사진은 서로 다른 출처의 사진 두 장 (왼쪽이 원본)을 조잡하게 겹쳐놓은 명백한 합성사진이니 새삼 그 주인공이 명성황후네 아니네 하는 건 말이 안된다. 게다가 18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일본제 담뱃갑 카드에까지 실릴 정도로 아주 일찌감치 세상에 알려졌던 사진이니, 왕비의 사진일 가능성은 너무 희박해 보인다.
 
  
몇 해 전에 나와서 한동안 떠들썩했던 두번째 사진. 이 사진은 이미 1890년대 초기부터 "궁녀"로 알려진 사진이고,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센-바르테크의 책, "한국" (1895)에도 삽화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캡션이 "궁중의 귀부인"이라 쓰여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사진 속 여성이 명성황후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원군이 정자관을 쓰고 앉아있는 사진 (아래) 과 뒷배경이 동일하니 아마 왕족 일원 중 한 사람이거나 궁녀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봐도, 이 사진 속 여인은 대원군과의 나이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명성황후로 보기에 나이가 너무 젊지 않은가? 

명성황후라는 캡션이 멀쩡하게 실린 유일한 사진은 기사에도 소개되었듯 이승만의 책 "독립정신"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명성황후의 '진짜' 사진은 그쪽이 제일 유력할 것 같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른 수많은 "후보"와는 달리 그 사진만 유일하게 명성황후라는 캡션이 있고,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언론 보도나 단행본에서 명성황후의 사진으로 게재했던 사진이며,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에 호암 문일평이 명성황후의 측근에게 감정을 의뢰했던 유일한 사진이니까.

하지만, 사진이 뭐 그리 중요하겠나. 사진이 없다고 명성황후라는 한 역사인물의 존재 가치가 소멸되거나 반감되는 건 아닐진대, 새삼 뭐 그리 호들갑인지. 21세기가 비주얼의 시대라 그런건 설마 아니겠지. 

이런 호들갑의 한 편에서 매번 새로운 사진을 발견했네 우쩌네 하고 떠드는 자칭 사진연구가 정성길 씨나, 서울대 이태진 교수 같은 사람들을 신용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마치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실사판을 보는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특히 명색이 학자라는 사람치고, 이런 사진이 나올적마다 논리가 널을 뛰는 소리만 늘어놓을 뿐인 이태진 교수에 대해서는 정말 신용이 가지 않는다.



(*11/08/31 오후 2시 48분 추가): 이전부터 계속 개인적으로 명성황후 사진 논란의 역사에 대해 정리한 바 있는데, 조만간 별도의 포스팅을 다시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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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進省堂居士의 跆緣齋 : 사소하게 되짚어보는 명성황후 사진 논란... 2011-09-14 12:19:39 #

    ... 월간중앙 "명성황후 사진" 관련 기사 短想.</a> 이전에 예고했다시피, 해방 이후 계속 심심찮게 불거져나왔던 명성황후 사진에 대한 논란을 되짚어 보는 뜻에서, 사소하게 포스팅을 한번 해볼까 한다. 뭐, 일개 휴학생에 지나지 않는 내가 이 사진의 진위여부를 몽땅 다 고증하는것은 벅찬 일이고, 또 그래봤자 확증이 없으니 말짱 원점회귀일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국내에 명성황후로 소개된 최초의 사진은 주지했다시피 1910년 간행된 ... more

덧글

  • 2011/08/31 11: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진성당거사 2011/08/31 11:38 #

    말씀에 절실히 공감합니다. 딱 거기까지 이셨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행인1 2011/08/31 11:31 #

    이걸로 마무리가 되면 좋겠지만 왠지 좀 지나면 또다시 누군가가 이걸 들고 나올듯한 '오해'가...
  • 진성당거사 2011/08/31 11:41 #

    이미 1971년 경향신문 보도에서도 첫번째 사진을 가리켜 이 사진은 "민비 초상이 아니다" 라고 밝혀놨지요. 사실 저 문제의 사진은 1960년대에 이선근 (네, 그 이선근 박사입니다)이 처음 발굴했다고 난리 법석을 떤 뒤에 국사교과서까지 일사천리로 실렸던 사진이죠. 당시에도 이광린 선생 같은 분이 검증도 없이 무리하게 교과서까지 게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썼지만, 결국은 거의 아무도 정정하려는 생각들을 안했던 탓인지....
  • 雲手 2011/08/31 12:31 #

    솔직이 민씨녀 & co. 에는 전혀 호감이 없는지라..
  • 진성당거사 2011/08/31 14:11 #

    저도 별 호감은 없습니다.
  • 댓글돌이 2011/08/31 13:14 #

    흥선군과 같이 찍힌 찡그린 표정의 사진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이 그렇게 널리 쓰였는데 전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사진이네요. 저 사진이 민비가 확실하다면 지금까지 왜 못봤을까요?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을까요?
  • 진성당거사 2011/08/31 14:11 #

    문제의 두번째 사진은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세간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본문에 언급했다시피 그 사진은 첫번째의 유명한 사진과 마찬가지로 1890년대의 외국 서적에 이미 궁녀로 기재되어 사용된 사진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8/31 13:53 #

    이태진 교수라 함은...외계충격설...그 분??? -.-;;
  • LVP 2011/08/31 14:04 #

    하지만, 사진이 뭐 그리 중요하겠나. 사진이 없다고 명성황후라는 한 역사인물의 존재 가치가 소멸되거나 반감되는 건 아닐진대, 새삼 뭐 그리 호들갑인지.

    ☞ 아니....뭐.....그렇긴 한데, '공식(?)' 민자영 사진이 궁녀 사진이라고 나와서 그런지, 궁금증은 생기더라고요 'ㅅ';;;;;;;;;;;;;
  • 진성당거사 2011/08/31 14:08 #

    그거야 멋도 모르고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편 호사가와 언론인들 탓이지요.

    민자영이라는 이름은 애초에 창작이죠. 엔하위키에는 이제 뭐 여흥민씨 족보까지 들먹이면서 그게 맞다고 하는데, 명성황후 생몰년 전후 시기의 족보에 그렇게 쓰여있어야 말이 되는 거죠. 저야 명성황후든 민비든 상관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 라디오 2011/08/31 14:40 #

    "흥선군과 같이 찍힌 찡그린 표정의 사진이 가장 유력하다"

    강한 집념의 여자.. 느낌으로도 포스가 느껴지죠.
  • 라디오 2011/08/31 14:45 #

    '댓글돌이' 라는 사람은 역사연구할 자격을 갖추었다.
  • 진성당거사 2011/08/31 14:47 #

    20세기 초반, 즉 1920년대 이전에 찍은 인물사진의 표정이나 포즈를 놓고 그 인물의 성격과 매칭시키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단 사진의 노출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던 당시의 사진 기술로 인물의 스냅샷 표정을 파악하는 건 어불성설인데다가, 그나마 사진을 보는 사람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될 여지가 충분하거든요. 여러가지 정황 증거로 봤을때 문제의 두번째 사진은 명성황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입니다.
  • 초록불 2011/08/31 15:44 #

    이제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이광린 선생님께 들었던 기억으로는 민자영이라는 이름은 정비석 소설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근거불명이라고 하셨던 것 같네요.
  • 진성당거사 2011/08/31 16:01 #

    그 말씀이 맞을 겁니다. 가만히 보면 이광린 선생님이 이태진 교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고종시대사나 구황실 관련해서 제일 체계적인 연구를 하셨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 Jes 2011/08/31 17:50 #

    글쎄요... 마지막 사진의 경우는 (전문가는 아니지만)신복룡 교수가 실제일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 바 있는지라... 만일 실제 명성왕후의 사진이면 언제 쯤에 찍혔을 것 같습니까?
  • 진성당거사 2011/08/31 19:08 #

    문제의 사진 촬영시기에 대해서는 보다 종합적인 고증이 필요하겠습니다만, 과거에는 이 사진이 평상복 차림인 것을 들어 임오군란 때 전후가 아니냐는 식으로 추정했었지요. 물론 이것도 제대로 된 고증은 절대 아니지만 말입니다.

    신복룡 교수의 발언은 "감이 아니다" 라는 식이어서 그렇게 진지하게 결론지은 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이 사진의 원본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정상적으로 인화지에 인화된사진 한 장이 없고, 그저 흐리멍텅하게 책 속에 들어있는 사진들 뿐이니까요. 하다못해 좀 또렷한 인쇄본이라도 나오면 좋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다른 "후보" 사진들의 경우 이미 을미사변 이전에 일반에 소개되고 유통되었던 것이 분명한데 반해 문제의 세 번째 사진만은 "궁녀"라는 식으로 소개된 자료가 지금껏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 식용달팽이 2011/08/31 18:06 #

    이렇게 진위 여부 논쟁이 나올 때마다 누구나 정확히 할 수 있는 말은 '확실하지는 않다.' 일텐데도, 너무 쉽게 단정하는 분들이 많아 걱정입니다. 소설가 마인드를 가지신 분들이 많아서;;
  • 진성당거사 2011/08/31 19:06 #

    그러게나 말입니다.
  • 푸른화염 2011/08/31 21:21 #

    이태진 교수의 논문 몇개는 괜찮게 읽긴 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거 참.. 무튼, 저 기사는 저도 보긴 했었는데 제가 이쪽 분야는 잘 모르다보니 어떨지 생각만 했는데,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결론 도출을 했던 거였군요. 우선 과거에 '궁녀'라거나 '귀부인' 이런 식으로 소개된 바 없다니 아무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덧) 근데 저 첫번째 사진이 합성이었군요.. ㄱ-
  • 을파소 2011/08/31 22:45 #

    그 별도의 포스팅을 기대하겠습니다.
  • 소드피시 2011/09/01 09:43 #

    별도의 포스팅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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