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게 되짚어보는 명성황후 사진 논란... by 진성당거사

월간중앙 "명성황후 사진" 관련 기사 短想.

이전에 예고했다시피, 해방 이후 계속 심심찮게 불거져나왔던 명성황후 사진에 대한 논란을 되짚어 보는 뜻에서, 사소하게 포스팅을 한번 해볼까 한다. 뭐, 일개 휴학생에 지나지 않는 내가 이 사진의 진위여부를 몽땅 다 고증하는것은 벅찬 일이고, 또 그래봤자 확증이 없으니 말짱 원점회귀일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국내에 명성황후로 소개된 최초의 사진은 주지했다시피 1910년 간행된 이승만의 저서 "독립정신"에 실린 이 사진이다. 이 사진은 사진 하단에 사진의 주인공을 명성황후로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사진 속 여인이 평상복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왕비의 사진인지, 그냥 양반집 여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독립정신에 실린 몇가지 다른 사진들 가운데는 사진 설명이 명백하게 잘못된 것도 적지 않기 때문에 (*가령 홍지문과 혜화문을 착각해놓은 것 등등) 더더욱 확신하기 어렵다.


일제강점기의 사학자 장도빈의 저서 "대원군과 민비"에 실린 사진. 이승만의 책에 실린 사진과 동일한 판형임을 바로 알 수 있지만, 사진 주인공의 얼굴 부분을 덧그려 임의로 수정한 흔적이 보인다. 물론 이런 식의 사진 수정은 사진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1970년대까지, 원본에서 인화된 사진이 없을 때 상당히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의도적인 변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1930년 1월 동아일보에 연재된 "한말 정객의 회고담" 연재기사 제 2회분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 사진의 모양새로 보아 장도빈의 책에 실린 사진을 다시 재수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저 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인 민영찬 (1873 ~ 1948)으로, 그는 여흥 민씨 척족으로 명성황후를 여러차례 만났고, 조정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던 만큼, 기사가 쓰여진 무렵에 명성황후의 얼굴을 직접 기억하고 있는 소수의 인물이었다. 그랬던 민영찬이 자신의 회고담에서 이 사진을 사용했던 것은 꽤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다.

여하간, 문제의 사진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명성황후의 유일무이한 사진으로 세간에 오랫동안 전해졌다.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이 사진이 진짜 명성황후 사진인가를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호암 문일평이 명성황후를 모셨다는 상궁에게 이 사진을 보여줬을때는 명성황후가 아니라는 답변도 들었고, 또한 "삼천리" 1933년 9월호에 따르면, "민비의 낯을 봤다는 이가 없다"며, 송촌 지석영과 윤교정 등의 회고를 짧게 빌려 "얼굴이 조금 얽었다더라"고 기록했다.

해방 후에도 이 사진은 계속 명성황후 사진으로 알려져왔다. 대표적으로, 1963년 1월 30일에 경향신문에 실린 것을 들 수 있다. 가만히 보면 이 사진은 장도빈의 책에 실린 것을 다시 전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 처음 학계에 소개된 또 하나의 사진이 있었다. 바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 사진.

하지만 처음에 학계의 반응은 별로 대단하지 않았던듯 하다. 신구문화사에서 1969년에 출판된 원용한의 책 "한국사대계"에는 "傳 명성황후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며, 장도빈의 책에 실린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

그러다가 이 사진이 본격적으로 재발견된 것은 1975년 4월 15일 경향신문에 대대적인 보도가 나간 때 부터였다. 기사에 따르면 KBS 국제국 국장 한숙 씨가 그해 초 프랑스 파리에서 구입한 책 프랑스 고서 "La Coree"에 실린 그림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그림에, 대원군과 고종의 모습과 함께 실린 명성황후의 모습이 일전에 알려졌던 사진에 실린 모습과 같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원로작가 이서구와 당시 동국대 총장이었던 이선근이 "민비임에 틀림없다. 이를 복사해서 근대사의 자료로 배포하자"는 주장을 펼치게 되고, 결국 1977년 개정판 국사교과서부터 국사교과서에도 이 사진이 명성황후로 소개되어 실리게 된다. 물론, 이 사진이 "명성황후일것 같지 않다"고 본 서강대 이광린 교수의 말은 거의 무시당했다. 심지어, 이 기사에 연이어 나온 경향신문의 다른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실렸다.

다른 제대로 된 역사적 고증은 없이, 이 사진이 무려 "후손들도 눈에 익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대원군 사진으로 오인된 베트남 관료의 사진을 처음 공개했던 것도 경향신문인데, 가만히 보면 경향신문 측의 누군가가 이런 옛날 사진에 나름대로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물론 보도 특종감이라는 범위 내에서.

경향신문은 다시 1981년에, 1895년 7월 15일자 미국 뉴욕 헤럴드 지에 실렸다는 또 하나의 명성황후 초상을 신발견이라면서 단독보도했는데, 이 초상에 대해서는 오늘날 별다른 말이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상상화라는게 뻔해보여서일까.


9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계속 70년대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저 문제의 사진의 진위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이 사진은 1998년 제 7차교육과정 국사교과서부터는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는, 배경이 다른 또 하나의 명성황후 사진이 나왔다며 설레발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90년대 이후 이 사진을 열심히 밀고 있는 (*하지만 명성황후 사진이 새로 나타났다면 매번 전문가 운운하며 나타나는) 서울대학교 이태진 교수가 있다. 

문제의 사진은 이렇게 생겼다.


하지만, 이 사진은 누가 만들었던지간에 아주 조잡하기 짝이 없는 위조된 합성사진에 지나지 않다. 이 사진은, 문제의 사진에서 인물 부분만 오린 뒤, 구한말 이탈리아 영사관 조선 총영사를 지낸 카를로 로제티의 책 "한국과 한국인 (Corea e Coreani)"에 실린 "기생의 정장사진 한 벌"이라는 사진을 배경으로 붙여넣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이 사진을 위조하기 위해 사용된 배경 부분의 원본 사진.

 

여담이지만, 이 사진의 가장 이른 출처는 1894년 11월에 발행된 미국 잡지 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 (DeMorest's Family Magazine)으로 확인되는데, 이 잡지에서는 문제의 여성을 "The Queen Of Korea’s Chief Lady In Waiting"으로 기재해놨다. 한마디로, 한국 왕비의 수석상궁이라는 소리인데, 누군가 뒷 부분의 Chief Lady in Waiting을 보지 못하고 "The Queen of Korea" 부분만 보고는 "이게 명성황후 사진이다!"라고 설레발쳤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뮤지컬 명성황후와, KBS 드라마 명성황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명성황후 사진에 대한 얘기가 엄청나게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옛날 사진에 대한 기초 지식도 잘 없는 호사가들이 낡은 사진 속에 잘 갖춰입은 여인만 나오면 무조건 "명성황후가 나타났다!" 운운하며 떠들어 댄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2004년에 처음 소개되어 지금까지도 심심치 않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이 사진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이 사진의 경우 이미 1891년의 미국 출판물에 "Korean serving woman in the palace"으로 소개되어 있으니 명성황후일 가능성은 드물다. 게다가, 사진이 촬영된 시점으로 추정되는 188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생각해보건대, 당시 30대인 명성황후의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사진의 주인공이 너무나 젊다. 심지어 이 사진은 1980년대에 국내에서 발행된 사진첩에서도 "궁중 시녀의 모습" 이라 소개해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태진 교수는 이 사진도 명성황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엄청난 자기모순에 빠져있다는 것을 밝히고 말았다. )

좌우간, 여기 소개한 서로 다른 4종류의 사진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명성황후의 실제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뚜렷하게 검증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애초에 맨 처음 세간에 알려진 이승만 저서 속의 사진이 제일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만, 그마저 확신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사진 두 개보다는 조금 더 신뢰가 갈 뿐이다. 

그리고, 앞전의 포스팅에서도 썼듯, 사진이 없다고 명성황후의 역사속 위치가 반감되거나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니다. 명성황후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하기도 모자랄 판에, 사진이 있네 없네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해봐야 별로 바람직하지 않지 않을까. 

덧글

  • 야스페르츠 2011/09/14 14:04 #

    잘 보았습니다.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흥미롭군요.
  • Mr 스노우 2011/09/14 16:54 #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
  • choiseog 2011/09/14 17:45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udgment77&logNo=150107895296

    아휴 자네가 늙은 여우 때문에 고생이 많구먼...
  • 진성당거사 2011/09/14 19:43 #

    그런 말씀까지는 굳이 안하셔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 choiseog 2011/09/19 16:04 #

    아 저 말을 제가 여기 글쓴 분한테 한 얘기가 아니라
    지나가던 여자가 도망치는 민비를 민비인줄 모르고 한 얘기였습니다.
  • 회상자 2011/09/14 18:31 #

    명성황후라고 호칭을 하시면서 고종은 광무황제라고는 안하시네요. 모순 아닙니까? 민왕후 민비 로 수정 부탁드려봅니다.
  • 진성당거사 2011/09/14 19:44 #

    학계에서 통일되어 일반적으로 쓰는 역사용어를 굳이 제가 트집잡고 바꿔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대원군도 대원왕이겠지요.
  • 회상자 2011/09/14 20:10 #

    학계에서 통일되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학계에서도 민비 민왕후 명성왕후 명성황후등 호칭이 여러개 쓰이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제가 틀린 지적했나요? 고종 - 민왕후 , 광무황제 - 명성황후가 세트로 된 명칭아닙니까.
  • Jes 2011/09/14 21:11 #

    "종", "조" 자 자체가 원래 황제에게 쓰이는 호칭입니다. 강희제는 성조, 옹정제는 세종이고 건륭제는 고종이죠. 조선에서 제후국의 예를 벗어나 황제국의 예로 묘호를 사용하고 있던 겁니다. 중국이야 묘호가 난무하니 구분할 필요가 있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왕들을 호칭할 때 묘호를 쓰는 게 일반화되어 있는데 굳이 그렇게 부를 필요가 있습니까?
  • 행인1 2011/09/15 00:07 #

    이 떡밥(?)의 역사가 이렇게 되는군요. 그리고 '뉴욕 헤럴드'에 실렸다는 청나라틱한 그림은 정말 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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