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등록문화재 제 8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덕수궁 정관헌. 1900년 무렵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설계로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서양식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한 때 어진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고종과 순종이 커피를 마신 휴게실 용도로 사용되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간결한 외관이지만, 난간과 바깥기둥 머리 장식등이 목조와 청동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이후로 건물 전체에 무수한 변형이 계속 가해져서, 바깥의 내진주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대부분의 부분에서 원형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해방 이후, 덕수궁을 거의 공원과 다름없게 취급하던 1960년대 이래로 이 건물은 덕수궁의 일개 휴게실 시설로 개조되어 거의 20여년 가까이 계속 사용되었던 적이 있지요.
아래 사진은 1973년 11월-12월호 합본호 "공간 80" 지에 실린 덕수궁 정관헌의 전경 사진입니다. "휴게실"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문짝을 두 개 달고, 양 옆으로는 임의의 벽체를 설치했습니다. 몇몇 증언에 따르면, 당시 정관헌 내부에서는 커피나 차를 비롯해, 심지어 한때는 우동이나 짜장면 등등의 분식까지 팔았다고 하니 그 시절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만 합니다.

그 시절의 흔적은 아직도 정관헌 지하실에 쌓여있는 연탄 더미와 쓰다 버린 의자니 탁자니 하는 것들로 잘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따금씩 이 곳에서는 덕수궁 내에서 열린 각종 문화행사가 끝나고 뒷풀이성 다과회가 끊임없이 개최되었습니다. 한 예로 1998년에도 이런 식이었지요.

그리고 사정은 2011년 현재에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 듯 합니다. 물론 그 옛날에 비하면 훨씬 낫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 같잖은 생각에 문화재 건축물을 임의의 행사를 위해 사용하는 건 별로 바람직해보이진 않아보입니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닌 궁실 건축인데 말이지요.

덧글
훼손되지 않을만한 범위 내에서는 제 용도로 사용해 주는 쪽이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하는터라...
서구 국가의 경우는 그런 부분에 대해 우리나라보다 관대하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그런 식으로 언급했었지요.
궁 내에서 문화재청의 자체적인 사업이든, 외부단체에서 주관하는 사업이든 궁 활용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심의도 까다롭고, 어떤 식으로도 건축물을 훼손시키는 개조/변형은 금지되어 있어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관리감독이 심하여 궁 관리소와 일하는 것은 쉽지 않네요.
전기는 이미 궁내에 연결되어 있는 전력을 최대한 활용하되, 부족할 경우는 발전차를 임차하여 사용하구요.
난방시설은 화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용금지입니다. 음향시설은 건축물에 영향이 가는 부분은 없습니다.
직업상 여러 궁에서 일을 하지만, 행사때문에 현상변경이 된다는 것은
진성당거사님과 같은 시민분들의 눈이 있기에 절대 허락되어지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대신 현재의 전각의 원형복원상태가 많이 미흡한 것을 지적함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을 읽고, 정관헌에 관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았네요. 구석구석 다 들여다봤는데 지하실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입구가 어디인지?)
이 건에 대해서는 문화재청 쪽에 강하게 요청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관헌 지하실은 건물 후면 외부, 철제 문짝으로 가려둔 곳 아래 있습니다. 2011년에 열린 행사를 위해서 현상변경을 했다고 읽힐 소지가 있어 그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1990년대 후반까지도 임의의 행사를 위해 끊임없이 구조를 변경해왔던 것이 사실이고 이런 부분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금님 휴게실이 시민들의 휴게실이 되었던 것도 의미있는 역사가 아닐까요?
물론 어떤 순간 동작그만을 외치고 영구봉인을 결정할 수는 있겠지만,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상태만을 보존가치가 있는 순수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임금님의 휴게실이었던 곳이 60-70년에 시민들의 애환을 담았던 휴게실이 되었던 것도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가 아닐까요?
그리고, 1960년대 사람들의 부족한 인식을 탓할 망정, 정관헌이 휴게실로 사용되었던 시절을 매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1960년대에 정관헌이 휴게실 노릇을 했던 것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변변한 책 한 권, 글 한 토막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 내막을 모르는 상황에서 언젠가 시민의 휴식공간 운운하면서 다시 정관헌을 휴게실 용도로 또 쓸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그나저나 정관헌 바깥 철난간과 철기둥에 단청한 게 화사하네요. 고려시대에는 돌에도 단청을 칠했다는 게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