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선동글) 아직도 한숨만 나게하는 덕수궁의 관리실태.... by 진성당거사

또 한바탕 선동글.

지난 1월 28일, 여자친구와 함께 덕수궁을 답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지 거의 1년 반 가까이 되었던 터라서 새삼 다시 가서 달라진 것이 없나 살펴볼 생각이기도 했고, 또 개인적인 이유로 여자친구와 당분간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ㅠㅠ) 그 전에 이곳저곳 구경도 다니고 하는 김에 이곳도 가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덕수궁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저희는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한숨만 나게 하는 덕수궁의 참담하고 추한 관리 실태를 실컷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는 달리 덕수궁은 20세기 이후, 그리고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다른 궁궐에 비해 가장 심한 홀대를 받아온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역사가 짧은 것도 사실이고, 건축 당시에도 뭐든게 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당시의 나라 꼴처럼 원체 날림에 무계획적으로 지어진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격동의 구한말 역사에서 주요 무대였던 역사적 의의가 무색할 지경으로 엉망으로 관리되어 왔습니다.

1930년대 이래 계속 공원으로 쓰여온 해방 이전 사연은 말할 것도 없지만, 1960년대에는 돌담이 답답하다고 시청쪽 돌담을 몽땅 헐어버리고 철책으로 교체해버렸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종합전시장 건물을 짓느라 경내에 남아있던 전각들 몇 채가 헐렸고, 70년대 초까지 덕수궁 경내에서는 온갖 기업 홍보 전시가 들어섰습니다. 겨우 9만원 임대료에 함녕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들마저도 온갖 기업홍보 전시장으로 활용되던 당시 상황을 개탄하는 긴 기사가 경향신문 1966년 6월 13일자에 실려있기도 합니다.



정문인 대한문조차 도로확장 공사 탓에 한동안 아래 사진처럼 도로 한복판에 나앉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지요. 심지어 1963년 문화재 지정심의 당시에는 "시민공원"에 불과한 곳인데 왜 문화재 지정을 굳이 해야하냐며 한번 심의가 보류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 이전복원 공사 이전의 대한문 모습.
대한문 오른편 위로 1963년에 지어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종합전시장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1980년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한동안 스케이트장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빈터입니다.


그 후로도 덕수궁은 다른 궁들에 비해서 거의 덤 취급밖에는 안 받아왔고, 90년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는 전각들에 대한 보수공사나 수리공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대한문을 들어서서 바로 나타나는 돌다리. 이른바 금천교 (禁川橋)라고 불리는 다리입니다. 하지만 이 다리 양 옆으로 붙어있던 금천은 이미 거의 다 메워져버렸고, 남아있는 것마저도 무슨 야외수영장 풀장같이 되어버렸지요. 사실 돌다리 자체도 콘크리트로 다진 보도 겉에 석재만 얼기설기 재조립한 것에 지나지 않기는 합니다.

  금천교의 모습. 거의 웅덩이가 되어버린 금천 양 옆을 시멘트로 바르고, 
파란 페인트를 칠해놓은 것도 볼만(?)합니다.
(*사진은 다른 곳에서 가져왔습니다.)

일단 곧장,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으로 향했습니다. 

비록 단층 전각이기는 하지만, 대한제국 시기의 마지막 대역사(大役事)였던 만큼, 그래도 제법 탄탄하게 지은 건물입니다. 그래도 역시 오랜 세월에 서서히 퇴락해갔고, 한동안 제대로 보수공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겨우 지난 2001년과 2007년에야 보수공사와 단청공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중화전의 월대로 올라서는 석계에 큰 틈이 벌어져 계단 판석이 아래로 심하게 내려앉았습니다. 그냥 오르락내리락만 해도 곧바로 계단이 아귀가 안 맞는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릴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건 지난 2010년 가을에는 보지 못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화전 안으로 들어왔을 때 눈에 곧바로 들어온 것은......

천장의 반자 한 개가 추락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기둥과 대들보(창방), 그리고 천장의 반자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 바람에 서로 틈이 벌어져서, 반자가 무게를 지지하지 못하고 떨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기둥은 윗쪽이 살짝 기울어지면서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고, 그 기둥이 연결된 옆의 창방도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중화전은 명색이 보물 제 819호로 지정되어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지난 10년 안팎의 기간에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진행되어 완료된 건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사실은 이 보수공사는......


더 설명이 必要韓紙?


하여간, 착잡함과 분노가 가시질 않더군요.

석조전은 현재 대규모 복원공사를 진행중이기에 그리로는 가지 않고, 대신 중화전 앞 서쪽 방향 구석에 자리잡은 광명문 (光明門)으로 향했습니다.


광명문은 말 그대로 원래는 문이었던 건물입니다. 본래 함녕전 외행각의 정문이었는데, 일제시대에 외행각이 헐리고 혼자 남아있던 것을, 1938년에 덕수궁 내에 이왕가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조선 초기에 주조된 범종인 흥천사 종과, 그 유명한 보루각 자격루를 보관하는 일종의 야외전시장 격으로 쓰이기 위해 이쪽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어정쩡한 야외전시장 노릇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옮겨지기 전 원위치에 있을 때의 광명문 모습. 이미 좌우에 있던 행각은 철거된 모습입니다.

광명문을 빠져나가는 고종의 상여. 1919년.


물론, 벽체가 없는 건물이다보니 비바람이 다 들이치기 때문에, 금속유물인 흥천사 종과, 보루각 자격루를 보관하기에는 영 마땅치 않은 건물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더구나 오랫동안 만원짜리 지폐에도 실렸고, 엄연한 국보이자 (국보 제 229호), 한국 과학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중요 유물인 보루각 자격루를 보관하기에는 허술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1938년에는 이런 인식이 없어서 그렇게 놔두었다 치지만, 2012년인 오늘날에도 굳이 그래야 할까요?


대낮인데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늘 구석에서 천천히 부식되어가고 있는 보루각 자격루.
국보 제 229호라고 쓰여있는 빗돌마저도 처연합니다.


게다가 자격루에 딸린 안내판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창덕궁 보루각에 있던 것을 이리로 옮겼다고 썼는데, 이건 틀린 말입니다. 물론 이것이 한때 창덕궁 누전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1938년에 이 자리로 옮겨오기 전에, 자격루는 창덕궁이 아니라 창경원 박물관 (장서각) 앞 계단 옆에 설치되어있었습니다.

일제시대 창경궁 박물관 (장서각) 앞 계단 옆에 놓여있던 자격루의 모습. 일제시대 사진엽서.

그런데 여기서 정말 주목해야하는 것은, 나머지 두 유물이 아니라, 제일 왼쪽 칸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저 신기전 화차입니다. 버젓이 안내판까지 붙여놨으니, 관람객들의 눈에는 저것도 중요한 유물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지요. 교과서나 책에서 보던 것이 여기 있으니 신기한 마음도 들 거구요.


그런데 여기서 잠시, 1992년에 촬영된 광명문 사진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흥천사종과 보루각 자격루는 있는데, 그 옆 칸, 지금 신기전 화차가 놓여있는 칸이 비어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신기전 화차가 여기 놓인 걸까요? 아니, 그 전에, 저 신기전 화차는 어디서 온 걸까요?
정확히 언제부터 신기전 화차가 여기 있었는지는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1997년에 제가 처음으로 덕수궁을 방문했을 때는 분명히 저 신기전 화차가 아직 놓여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가 당시 광명문 앞에서 찍은 사진에도 신기전 화차는 아직 없습니다)  저것이 처음 저 자리에 놓인 것은 아무리 올려잡아도 대충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물론, 제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지요. 하지만, 저 화차가 어디서 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 화차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실제 유물이 아니라, 1993년 대전 엑스포 개관에 맞추어 만들어진 여러 대의 복원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래는 당시 관련 보도기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명 하나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진짜 문화재 안내문과 똑같은 양식으로 만든 안내판을 내걸고 전시를 하고 있으면, 대다수의 관람객들은 이것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신기전의 실물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안내판 어디에 이것이 1993년 대전엑스포에 맞춰 만들어진 복원품이라는 말이 있나요?
아니, 그 전에, 이 물건이 왜 덕수궁에 있는지 설명 좀 해주시죠?!
  
광명문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석조전 옆에 있는 준명당과 즉조당 두 건물을 보러 갔습니다. 복도각을 통해 하나로 이어진 두 채의 건물인데, 심각하게 퇴락해가던 준명당이 얼마전 보수 공사를 마쳤다고 해서, 그것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헌데, 즉조당 쪽에 단청을 새로 올리지 않은 탓도 있지만, 너무나 두 건물의 색채가 심하게 차이가 나더군요. 
 
새로 보수공사를 마친 준명당 (왼쪽)과 즉조당 (오른쪽)
(사진을 찍지 못해, 이 사진은 다른 곳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래도, 말 그대로 지붕 한쪽이 기울어 천천히 무너져가던 예전의 준명당 모습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수공사 이전의 준명당과 즉조당. 
준명당의 지붕이 왼쪽으로 쏠려 뒤틀려 있는 것이 확연히 눈에 들어옵니다.

이들 건물들을 지나서, 다시 중화전 뒷편을 지나, 옛 월산대군의 집터 안채 자리에 지어진, 현존하는 유일한 2층 침전, 석어당 (昔御堂)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한숨 쉴 수밖에 없더군요.

석어당 전경과 내부 사진.
벽지와 장판이 관리되지 않아 곰팡이가 피고 썩어가고 있습니다.


석어당을 지나, 고종이 승하한 함녕전과, 국권피탈 직후에 지어진 독특한 절충식 건물 덕홍전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멈칫했습니다. 얼마전에 새로 복원되었다는 함녕전 행각을 보고 깜짝 놀랄수 밖에 없었지요.

함녕전 행각은 본래 두 겹으로, 내행각과 외행각이 있었습니다. 외행각은 이미 고종이 승하한 직후에 헐려나가 광명문을 빼고는 흔적도 찾기 어렵고, 내행각은 1930년대 후반에 덕수궁이 공원으로 개장될 무렵에 전시장 용도로 개조되어 1990년대까지도 전시장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복원 이전의 함녕전 행각 모습. 긴 복도 모양으로 개조되어 있습니다.

복원이야 좋다고 치지만, 고증할 자료 하나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복원을 한다는 것이었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새로 지어진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복원이 아니라 완전히 터를 갈아엎고 새로 행각을 지은 것은 그렇다 치고, 이런 모습이었으니 말입니다.

기계톱으로 썰어서 지은 것이 확연한, 조립식 주택 같은 이질감과 인공미. 
모든게 새하얗고 윤이 나서 주변의 옛 전각들과는 하나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꼬락서니.

도대체 이걸 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더구나, 이 행각에 어떤 시설이 있었는지도 몰라서 아무것도 갖추지 않고 텅텅 빈 건물을 지어놓았으니, 이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정작 중심 건물인 함녕전을 보니, 여기도 석어당과 마찬가지로 도배지와 장판에 시커멓게 곰팡이가 나고 있었습니다.

함녕전 전경과 내부.
귀퉁이가 찢어진 벽지와, 구멍이 숭숭 뚫리고 풀 붙인곳 위로 곰팡이가 슨 창호.


이게, 바로,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고궁의 관리 실태입니다.
제가 앞으로는 이런 반-고발성 선동글을 계속 쓰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만, 아마 그렇게 되기는 어렵겠지요.
이렇게나마, 사람들의 주의와 관심을 높이고, 뭔가가 제발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만 더더욱 간절해집니다.

덧글

  • 셔먼 2012/02/26 20:25 #

    그나저나 저 신기전은 덕수궁 들어갈 때마다 봐왔던 건데 무슨 이유로 덕수궁 안에 배치해놓은 건지 지금까지도 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2/02/26 20:26 #

    그러게 말입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렇게 안내판까지 갖춰놓고 전시를 하는 의도가 뭔지...
  • 無碍子 2012/02/26 22:50 #

    택도아니게 세종대왕의 동상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있나요?
  • 행인1 2012/02/26 21:12 #

    문화재청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고궁을 관리하는지...
  • 2012/02/26 22: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이스 2012/02/26 23:41 #

    명색이 전문가들이 유물도 전시하라고 했을것이고 복원공사도 진행했을텐데 말입니다. 씁쓸한 현실이죠.
  • 萬古獨龍 2012/02/27 02:14 #

    한숨만 나오죠..
  • JOSH 2012/02/27 02:56 #

    저번주에 사진찍으러 가서 보면서 몇몇 이상하다고 느낀 점들이 이해가 가는군요.
    분명 복원되고 나아지는 점도 있습니다만....

    뭔가 갈피도 못잡고, 전통목조건물에 대한 개념도 없고, 문화재 복원과 보존의 원칙도 없는 것 같은 관리상태가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 historyjs 2012/02/27 03:30 #

    바로 몇 달 전에 공식 호칭을 경운궁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공청회가 있었는데....

    이름을 무엇으로 하던지 간에 보존부터 신경 쓸 일인 것 같습니다.
  • 크핫군 2012/02/27 09:25 #

    씁... 뭐 예산이나 나오면 다행
  • 긁적 2012/02/27 18:21 #

    -_-.............. 정말 심각하네요. 잘 보았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3/03 02:08 #

    아이고! 머리야!!!...
  • 병희병희정병희 2016/10/24 18:00 #

    퍼갑니다.......진짜 헬조선이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