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글) 이혈건강요법 강좌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by 진성당거사

(이 글은 지난 3월 20일에 제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썼던 글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공익근무기간 중에는 신변 문제도 살짝 있고, 또 주변 사정도 있고 해서 올리지 못하다 뒤늦게 올립니다.)

근래에 주민자치센터 사무실에 내려가서 이곳 일을 보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히 사무실 바로 옆방에 있는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수업 내용을 고스란히 듣게 된다. 방음이라고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건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개는 이곳에서 어르신들이나 주부들 대상으로 생활영어 강좌 등의 교양강좌가 있는데, 오늘 모처럼 이곳 자치센터의 주요 인기강좌인, "이혈건강요법" 수업이 있었다. 남양주시 전역의 자치센터들 가운데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개설된 강좌라는데, 꽤나 인기가 많아서 옆동네서부터 심지어 퍽 먼 곳에서까지 사람들이 와서 강의를 듣는다고 한다. 

전부터 이런 식의 대체요법 강좌를 소위 국민의 혈세를 받아 운영하는 기관에서 왜 강좌로 개설해야 하는가에 대해 크나큰 의문이 있었지만, 어쨌든, 무슨 얘기나 하는가 해서, 업무 보조 도중에, 틈틈히 이 수업 진행 내용을 고스란히 들었다. 30여명이 넘는 중년-노년층 중심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이 이혈요법 강사는 - 60대 중반의 할머니 - 수업 중에 간간이 청중들을 웃기면서, 재치있는 언변으로 열렬히 이혈건강요법의 장점을 설파하고 있었다. 강의력 하나는 기막히게 좋았다. 물론, 내가 여지껏 접해본 그 모든 대체요법 강좌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라는 것은 말짱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일단, 이 강사는 수업 중에 이혈요법의 원류로 황제내경을 걸핏하면 들먹였는데, 뭐,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황제내경이라는 책은 냉정하게 따져서 거의 2,000년 전에나 쓰여진 구닥다리 책인데다, 그 내용의 모호함과 부정확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물론 한의학 하는 사람들이야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걸핏하면 레퍼런스로 삼지만. 게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이 강사 할머니는 아마 황제내경의 황자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도대체 이혈요법이라는 것이 사실 황제내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건 알까? 이혈요법은 고대 중국과는 거리가 무지 멀어서, 1957년에 프랑스의 돌팔이 신경의학자 폴 노지에 (Paul Nogier)라는 사람이 기존의 사이비 이론인 지압학 (Reflexology) 지도를 귀에 대응해서 아무렇게나 만든 사이비 이론일 뿐이다. 국내에 도입된 것은 경희대 한의원의 모 교수가 1980년대에 이 이론에 대해 주워듣고 다시 자기 식대로 개량해 놓은 것이다. 사이비는 개량해봤자 사이비의 또 사이비일 뿐이지만. 

이 강사 할머니가 얘기하는 구체적인 내용도 가관인 것이 (이 사람이 물론 이혈요법의 진짜 "전문가"라고 한다면), 귀에 있는 특정 혈이 각각의 장기에 대응하기 때문에, 귀를 눌러주거나 이침을 놓거나 하는 것 만으로도, 심장병, 당뇨, 성기능 장애는 물론, 심지어 신종플루까지 완전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기약이나 인슐린을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며 권유를 하지 않는가. 이런 모든 내용들이 중언부언으로 반복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정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수업 도중에 잠시 쉬는 시간이 있는 동안, 마침 이 강사 할머니가 다음 수업때 쓸 수업자료를 복사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왔다. 수업교재로 쓸 몇 장의 프린트를 하필이면 내게 복사해 달라고 해서, 복사를 하며 내용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존의 "이혈지도"를 또 다시 강사 개인의 경험에 의거해 임의대로 수정하고 교정해놓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사이비의 사이비의 사이비인 셈이다. 이건 다른 얘기이지만, 이 강사가 펜으로 쓴 부분을 보니 맞춤법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심지어 가나다 순서도 헷갈리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수업이 다 끝나고, 강사 할머니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미처 몰랐지만, 자원봉사로 업무 보조를 하러 왔던 이 동리의 주민자치위원 (*50대 초반의 중년 여성) 과 미리 약속을 해서,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이침을 시술해주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사무실 한켠에 있는 긴 소파에, 강사 할머니와 이 자치위원 아줌마 둘이 마주앉아 이침 시술에 돌입했다. 강사 할머니는 꼬질꼬질한 자기 핸드백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때에 절고 땀자국이 잔뜩 밴 낡아빠진 작은 손가방을 하나 꺼내면서, "이게 내 왕진가방이야" 라며 쿡쿡거렸다. 그 안에는 이침 놓는 도구가 여러개 들어있었는데, 이것을 소독도 하지 않고 가방 안에 든 헌 천조각으로 쓱쓱 문지르고는 시술 준비를 끝마쳤다. 뭐, 젬멜바이스 이전의 19세기 병원도 아니고, 이건 2차 감염이나 오염, 또는 환자의 켈로이드 반응을 조장하겠다는거랑 다름 아닌가?

그러면서 강사 할머니는 환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증상을 알아보겠다는 건데, 이런 식이었다. "음, 가만있자, 어디어디가 아프지 않어?"라는 질문에 환자가 "네"라고 하면, "내가 그럴 것 같더라고, 귓불 여기가 하얘."라는 식으로 답하고, 환자는 다시 끄덕끄덕. 반면 "아니오"가 나오면, "음, 아닌데, 귀 여기를 보면 이렇거든? 이런 증상이 아직은 없나본데 조만간 생길지도 몰라" 하는 식이다. 환자는 역시 또 끄덕끄덕. 자세히 들어보면, 대략 열대엿개 정도의 질문 가운데 12~13개는 다 틀린 소리였고, 그나마 맛춘 2~3개는 사실상 갱년기 이후 한국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다들 호소하는 증상 (기억력 감퇴, 혈액순환 장애, 그리고 허리 통증)이었다. 이거야 말로 완벽한 고전적인 "선택 편향오류 (Selection bias errors)" 아니던가. 제임스 랜디와 마이클 셔머, 그리고 리차드 도킨스 등등의 책에서 여지껏 봐왔던 사례를 눈앞에서 바로 접하니 착잡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강사 할머니가 이침 시술을 끝마쳤다. 환자의 귓불 곳곳에 이침을 놓고 그것을 꾸깃꾸깃한 솜 거즈 따위로 싸면서, "이녁은 몸에 기가 전반적으로 허한지 침이 잘 안들어가네. 그거 안 떨어지게 시간날 적마다 꾹꾹 눌러봐요". "으악!"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날 돌아봤지만, 내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기에 이윽고 다시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정말, 생각 같아서는 당장 강사 할머니를 붙잡고 "이런 말도 안되는 헛짓은 그만하시지요"라며 일장 연설을 하고 싶었지만, 일개 공익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 처지에 절망하며 결국은 비겁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혈요법 강사 할머니가 돌아간 후에야, 주위 사람들에게 슬쩍, "아까 이혈요법 강의하시는 거 들었는데, 좀 앞뒤가 안맞는 얘기를 하시는 것 같네요" 라고 말을 꺼냈지만, 곧바로, "얘는, 그럼 저 분이 이쪽에 교육받은 전문가인데 뚱딴지같은 소리를 막 할까봐? 얼른 일이나 마저 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물론, 나 역시 이혈요법 강좌를 개설한 이곳 주민자치위원회나, 이혈요법 강사들이 동네 주민을 악의적으로 해치기 위해 이런 것을 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자치위원회 딴에는 동리 사람들의 웰빙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테고, 강사 본인 역시도 "사람들이 이침 맞으면서 좋아지는거 같다고 하면 그만이지 뭐 그런걸 가지고 토를 다느냐"고 얘기할 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딱 잘라 말하지만, 이혈요법은 내가 보기에, (*수많은 내외 의학자들이 단언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로) 기껏 좋게 봐야 플라시보 효과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좋게 말하니 "대체의학"이지, 이건 사실 진짜 의학, 즉 "기존 의학"과 나란히 서지도 못하고 무너질 허섭쓰레기일 뿐이다. 비유를 들어 말해, 미국으로 여행을 가려는데 배나 비행기로 가는 "기존 여행"을 쌩까고서, 마음 속의 염력을 이용해 "대체여행"을 하겠다는 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정당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진료비나, 그 진료비 부담을 덜어줄 의료보험에 돈 내기는 그렇게 아쉬워하면서도, 월 3만원이나 되는 돈들을 이런 헛소리 강좌에 선뜻 내놓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 중에는 심지어 월 45만원 미만의 생계비를 타먹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있다) 정말 땅이 꺼질듯한 한숨이 난다. 그리고, 국민의 혈세에서 뗀 지원비로는 정상적인 운영이 택도 없어 늘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는 이 주민자치위원회도, 그나마 그 피같은 지원비의 꽤나 많은 부분을 이런 사이비 비과학적 이론을 떠드는 강사에게 내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일개 "밥값도 못하는" (동사무소 모 공무원의 표현) 공익 녀석이 떠든 것 치고는 너무 긴데다 막나간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래서는 안될 것 같다.


(*이 글은 난생 처음 과학밸리로 보내봅니다. 저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관심이 있는 몇 가지 분야에만 교양수준 전후의 얄팍한 지식이 있는 사람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에 제 과학적 식견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덧글

  • 漁夫 2012/05/15 21:44 #

    하도 많이 보는 일이라서 말입니다.
  • 초록불 2012/05/15 21:58 #

    기초생활수급자나 여러 사람들이 이런데서 귀동냥한 것으로 또 이런 시술 아닌 시술을 해서 돈을법니다
  • asianote 2012/05/15 22:01 #

    솔직히 현대과학을 불신하는 분들이 정작 현대과학을 잘 봤는지 모르겠더군요.
  • 숲속라키 2012/05/15 23:09 #

    저런 시술(...)을 하는 사람들 중엔 기본적 의학지식들조차 무지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런 사람을 불러서 강좌를 하는 것은(물론 악의적은 아니지만요) 뭔가 좀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 엘레시엘 2012/05/15 23:44 #

    현대 의학이라면 조금 옛날 처치다 싶으면, 혹은 신문에 부작용 가능성 0.01% 뜨면 펄펄 뛰는 사람들이
    저술한지 수백년은 지난 한의학 서적은 아무 의심없이 신봉하는거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죠...
  • 푸른화염 2012/05/16 01:51 #

    사기꾼 구당이 무죄라는 세상입니다.(먼산) 큰 사기꾼을 방조하니 작은 사기꾼이 활개칠 밖에요.a 개인적으로는 한방, 양방- 치료로서는 가리지 않는 편이고 어떨때는 한방이 더 맞는적도 있다-고 여기는 적도 있습니다만, 이건 한의학도 양의학도, 아니 그 전에 '의'라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하등 핫질의 사기가 아닙니까. ㄱ- 세상 참....
  • PFN 2012/05/16 12:38 #

    일단 한의학을 밀어야 저런 것들도 좀 줄어들듯..

    한의학이 저런 사기꾼들에게 훌륭한 인지도의 레퍼런스와 뭔가 믿을만한 느낌을 제공하고 있죠

    테레비만 봐도 온갖 헛소리 해놓고 근거는 황제내경이나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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