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아주 오랫동안 예고해 드렸던 바이지만, 드디어 2008년 미국 여행기의 첫 글을 써볼까 합니다.)
1. Prologue.
2008년 7월 7일, 이른 아침인데도 이상하리만큼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인천공항으로 나갔습니다. 5주 간에 걸친 짧지만은 않은 기간 동안 미국과 캐나다를 동에서 서로 나아가는 여행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지요. 전날 밤부터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정말 설레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도 한참 전, 몇 주 전부터 여행 계획을 짜고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다 해놓고 하느라 한참동안 부산을 떨었지만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탑승수속이니 통관이니 하는 절차를 싹 마치고, 마침내 7월 7일 오전 10시 40분 발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편을 타고 (*노스웨스트가 델타 항공사로 흡수되기 약 3개월 전이었습니다.) 마침내 이륙했습니다. 둥실 떠오르는 그 느낌이 다른 때보다도 더 설레었습니다. 해외편 비행기를 처음 타본 것도 아니었지만, 승객과 승무원 절대 다수가 미국인인 비행기를 탄 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앞좌석 머리맡에 달린 조그만 TV 스크린을 보니, 전형적인 미국 동부 악센트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스크린에, 제인 폰다가 출연한 "기내에서 할 수 있는 피로회복 체조 안내" 비디오가 나오더군요. 한 30년은 되어 보이는 영상이었습니다만, 어쨌든 이런걸 보니 참말로 뭔가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별세계로 나간다는 것이 이런 걸까요.

이런걸 타고 나갔습니다.
(퍼온 사진)
점심 무렵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에 내렸습니다.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 터미널 옆의 우동 좌판에서 즉석 우동을 하나 사먹고는,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한동안 돌아다녔지요. 그 두어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지만, 나중에 미국 국내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의 그 지루함에 비할 바는 못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1시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미네아폴리스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나온 기내식은 대체로 맛있었습니다. 다만, 샌드위치의 흰 빵이 꽤나 퍽퍽해서, 음료수를 꽤나 많이 마셔야 했구요.
저는 장거리 여행할 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조그마한 진동에도 매우 민감한 편이라 주변이 흔들리는 차나 비행기 안에서는 절대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20시간 남짓 되는 긴긴 시간동안 잠 한숨을 자지 못했습니다. 대신 기내방송으로 나오는 "천일의 스캔들"과 "비 카인드 리와인드"를 비롯한 영화 네 편만 실컷 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영화가 다 끝나고 비행기 안 승객 대부분이 잠든 새벽녘 중에는 홀로 주머니에서 MP3 플레이어를 꺼내 한동안 음악을 들었습니다. 희뿌연히 밝아오는 창 밖의 풍경. 가도 가도 끝이 없을거 같은 구름과 물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도 10km 상공에 떠올라 수십년 전 구닥다리 음악들을 듣고 있는 기분이란......역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밤이 더 깊어지고 깊어지자, 한참 전부터 옆자리에서 잠을 자던 젊은 미국 여자가 에어컨 바람은 잘 맞으면서 유난히도 땀을 많이 흘리고 잠결에 입맛을 다시는 통에 뭔가 거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옆자리의 그 남편도 마찬가지였구요. 이 사람들과는 비행기를 처음 탔을때 지루함을 달래려 대화를 약간 나누었는데, 평화봉사단 일로 한국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들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목적지까지 같은 곳이었지요.
기내에서는 사진을 안타깝게도 한 장도 찍지 못했습니다. 핸드폰과 카메라는 전부 캐리어 안에 들어있었고, 적재함의 문짝은 잠겨있어서 목적지에 완전히 다 도착할 때까지 한동안 아무것도 꺼내지를 못했습니다. 애초에, 기내에서 있는 동안 원체 지루했던 탓에 카메라를 갖고 있었어도 뭔가 사진을 찍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긴 인고의 시간이 끝난 후, 현지시간으로 7월 7일 오전 9시 40분에 마침내 미국 땅에 처음 상륙했습니다. 입국심사 칸에 있던 뚱뚱한 직원이, "Welcome to America!" 라고 인사해주더군요. 그렇게 미네아폴리스 공항에 내렸습니다. 고파오는 배를 달래기 위해 공항 이리저리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다가, 어느 작은 델리카테센에 들어가 토마토 수프와 작은 부리토 랩을 하나 먹고서는 다시 세 시간동안 공항 이곳저곳을 누볐습니다.

미네아폴리스 공항 터미널.
(퍼온 사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니, 뜻밖에 Barnes & Noble 이 하나 자리잡고 있는것이 보여서, 난생 처음 미국 서점 구경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공항에 있는 곳인 관계로 규모가 아주 큰 편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산뜻하고 깔끔하단 인상은 받았습니다. 그 바로 옆에는 편의점도 있었는데, 웬걸, 과자와 음료수 사이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물건 중에는 (플라스틱 봉지에 싸여있는) 도색잡지도 있더군요. "역시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과는" 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그렇게 남은 시간을 두리번거린뒤, 다시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짧게 타고, 마침내 7월 7일 오후 5시에 워싱턴 DC에 도착했습니다. 수많은 가방의 행렬을 뒤적뒤적하고 캐리어를 찾은 뒤, 핸드폰을 켜고 곧장 집으로 전화를 하고, 다시 나와 공항 밖에 있는 택시를 타고 미리 정해놓은 알링턴의 숙소로 향했습니다. 미국에 가기 전부터 미국 지인이 소개해준 어느 웹사이트를 통해 미국 내에서 숙박할 곳들은 미리 다 정해놨지요. 덕택에 나중에 숙소를 찾거나 하는 것 떄문에 고생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공항부터 숙소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어서, 택시비를 난생 처음 천문학적인 금액인 80달러 남짓이나 지불하고서, 여섯시 반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첫날 숙소인 Days Inn Arlington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는 길에 차창 옆으로 한동안 그 유명한 알링턴 국립묘지의 풍경을 한참 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규모가 크긴 크더군요.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한 뒤 TV를 딱 켰더니, CNN의 래리 킹 라이브에 비틀즈의 옛 멤버 링고 스타와 요코 오노가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이 링고 스타의 68번째 생일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Days Inn Arlington의 전경.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Days Inn은 미국 전역에 있는 모텔 체인점인데,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한 시설과 싼 숙박료 덕택에 나중에 다른 곳에서도 이곳 신세를 두어번 더 졌습니다.
건물 바로 옆에 주차되어있는 하얀색 밴은 이 모텔 소속 차인데, 투숙객들을 위해 매 시간에 두 번 무료로
워싱턴 메트로의 Rosslyn 역까지 운행하는 차였습니다.

7월 8일 아침 7시 반, Days Inn에서 제공해준 차를 타고 Rosslyn 역에 도착했습니다.
출근시간대다 보니 사람이 꽤 많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에 비해선 그다지 붐비는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확실히 미국에서 대중교통은 한국에 비해 그다지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닌 듯 했습니다.

역의 개찰구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개찰구 건너편에 있는 것은 패스 발매기입니다.

아직도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날의 승차권.
2달러 15센트짜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Rosslyn 역의 에스컬레이터. 한때 '서방세계에서' 가장 긴 연속 에스컬레이터라는 사소한 명성을 누렸던 물건입니다.
모스크바 지하철 중앙역과 평양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에스컬레이터지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기네스북 동판이 아직도 붙어있었습니다.
경사나 길이가 정말 아찔할 정도였습니다.

지하철 차량 실내 모습. 객차는 사다리꼴 모양의 단면에 천장이 꽤 낮은 편이라,
서울메트로의 큰 차와 비교해보면 꽤 작다는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좌석이 각각 마주보고 앉는
형태인 관계로 그다지 좌석 공간도 넓은 편이 아닙니다.
양 옆으로 문은 있지만 객차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참고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Rohr 1112 계열 전동차라고 합니다.

일곱 정거장을 가서 나온 스미소니언 역 출구를 바로 빠져나오자마자 보인 풍경.
그 유명한 내셔널 몰 (National Mall) 한켠입니다.
아침 일찍 조깅하는 사람 사이로, 며칠 전에 있었던 미국 독립기념일 축하행사의 뒷정리가 한창이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것은 물론 워싱턴 기념탑 (Washington Monument).
원체 높은 구조물이다보니 나온 곳에서 1.5킬로 넘게 떨어져 있는데도 우뚝 솟아보입니다.

반대쪽 방향으로 몇걸음 걷자 바로 나타나는 스미소니언 협회 본부 건물. (일명 스미소니언 城)
아직 이른 아침이라 주변이 한산합니다. 더위는 이미 장난이 아니었지만요.

바로 옆에 있는 동양미술 전문 미술관인 프리어 미술관 (Freer Gallery of Art).
이곳도 잠시 후 방문했습니다.

아직 개방이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 관계로, 스미소니언 성 동편에 자리잡은 이른바 "로즈 가든"을 쭉 둘러보았습니다.
나무 그늘도 제법 있고, 사이사이로 바람도 꽤 불다보니 내셔널 몰 쪽보다는 훨씬 시원하더군요.

정원 한 켠에 고요하게 놓여있는 자그마한 대리석 구조물.
이른바 "앤드류 잭슨 다우닝 항아리 (Andrew Jackson Downing Urn)"라는 물건입니다.

옆에 붙어있는 작은 설명 동판. 앤드류 잭슨 다우닝 (1815 ~ 1852)은 19세기 미국의 건축가 겸 조경사로,
1850년에 내셔널 몰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던 인물입니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와 함께
"미국 조경건축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이지요. 이 "항아리"는 그의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대리석 화분인데. 1972년까지는 자연사박물관 근처에 있다가 그 후 두 차례 옮겨져 지금은 이곳 정원에 있습니다.

항아리 좌대 뒷면에 있는 헌정시. 오늘날은 좀체로 찾기 힘든 독특한 19세기 장식서체로 쓰여있습니다.
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 좌대는 부식 상태가 매우 심해서 조금 걱정스럽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듣자하니 제가 본 이후인 2009년에 한번 다시 개보수를 했다더군요.

스미소니언 성 왼편에 있는 스미소니언 미술 및 산업 전시관 (Art and Industries Building).
스미소니언 소속 건물들 가운데 최악의 천덕꾸러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1876년에 필라델피아 100주년 기념 전시회장으로 처음 건립된 이후 1881년에 개축을 거쳐
스미소니언의 국립 종합박물관 (National General Museum)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후 수많은 별도의
전시관들이 생기고 난 후에는 차츰차츰 비게 되었고, 결국 1976년 이후로는 잡동사니만 놓아두는 신세로 전락했다가
2004년에 이르러 건물의 노화 상태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이르자 무기한 폐관되어 대대적인 개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2014년까지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고, 그 후에는 라틴아메리카계 미국인 관련 박물관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이윽고 시간이 차츰 흘러, 마침내 스미소니언 성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본관 정면에서 올려다 본 모습. 본관 앞의 동상은 초대 스미소니언 협회장 조지프 헨리 (Joseph Henry, 1797 ~ 1880)입니다.
그는 전기과학과 음향학의 개척자이며, 세계 최초의 전화기 사용자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미소니언 협회 간판이 새겨진 본관 정문

정문 입구 한쪽 그늘에 놓여있는 스미소니언 협회 소속 박물관 지도.
19개소의 박물관 가운데 제가 이틀이란 짧은 시간 동안 가본 곳은 안타깝게도 고작 다섯 곳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박물관들에서 재미난 구경은 그럭저럭 잘 하고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스미소니언 성 1층 현관 왼쪽에 있는 작은 방에는 스미소니언 협회의 창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영국의 화학자 제임스 스미슨 (James Smithson, 1765 ~ 1829)을 기리는 기념실이 꾸며져 있습니다.

제임스 스미슨의 유품들.
그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 및 그림. 그리고 그의 명함도 하나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념실에 있는 제임스 스미슨의 무덤. 스미슨은 1829년 이탈리아에서 탐사 여행도중 사망해 제노바 근교의 신교도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1904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청원으로 유해가 발굴되어 미국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후 그는 함께 보내진 원래의 석관에 다시 안치되어 지금까지 이곳 방 안에서 안식 (?) 중입니다.

1904년 유해 발굴 당시의 사진.
스미슨의 두개골을 들고 있는 사람은 당시 이탈리아 주재 미국 총영사 윌리엄 비숍입니다.

제임스 스미슨의 초상화. 사후에 그의 재산과 수집품 일체를 미국에 기증해
자신의 이름을 딴 과학 연구단체를 설립하도록 한 장본인입니다.

석관 좌대 아래쪽에 있는 스미슨의 묘비.

기념실을 빠져나와 로비로 들어서면 보이는 조금더 간편한 박물관 안내지도.
로비의 중앙 홀에는 스미소니언 관광객 안내센터와 함께, 스미소니언 협회의 창립 초기에 수집된 유물과
각종 자연사 표본 및, 주요 박물관의 컬렉션 가운데 명품 한 개 씩을 골라 전시하고 있습니다.

리차드 러쉬 도자기 콜렉션.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Founding Fathers)" 들 가운데 하나인 벤자민 러쉬의 아들인
리차드 러쉬 (Richard Rush, 1780 ~ 1859)가 1847년 프랑스 총영사로 재직 중에 수집해 가져온 프랑스 도자기들인데,
본래는 1820년대에 파리의 리우에 (Rihouet) 공방에서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일가를 위해 만들었던 제품들입니다.
전면에는 파란 에나멜 칠과 순금 장식이 되어있고, 가운데의 그림 도안은 수작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합니다.

위 사진 왼쪽 끝에 놓여있는 꽃병의 세부.

허쉬혼 현대미술관 (Hirshhorn Museum)의 전시물인 20세기 현대조각 세 점.
왼쪽부터 쟈코메티의 "누드 3번" (1953년작), 막스 에른스트의 "파리 여인" (1950년작), 그리고 헨리 무어의 "잎사귀 3번" (1952년작)
"파리 여인"의 경우 구형 전화기의 수화기와 몸체를 녹여 만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1886년제 콜럼비아 社 제조 자전거.
스미소니언 협회의 2대 협회장인 스펜서 풀턴 베어드의 유품입니다.

최초로 음속의 벽을 돌파한 파일럿 척 예거 (Chuck Yeager, 1923 ~ )의 흉상과,
그가 1947년에 시운전한 세계 최초의 초음속비행기 Bell X-1의 항법장치 부품 (왼쪽 위),
그리고 그가 착용했던 보호 헬멧 (왼쪽 아래). 어둑어둑해서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습니다.

1937년에 폭발사고로 36명의 인명사고를 낸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선실의 파편.

1901년에 라이트 형제가 만든 실험용 글라이더 1호기 날개의 파편.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풍동시험을 하기 위해 제작했던 비행체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두번째 라이프 마스크. 1865년 2월, 그가 암살당하기 2개월 전에 제작한 석고 주형 마스크입니다.
함꼐 놓여있는 그의 1860년 라이프 마스크와 비교해보면 재임 5년 동안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나이들어 보인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역사 인물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는게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스미소니언 성을 빠져나와 다시 왼편에 있는 허쉬혼 미술관 건물을 지났습니다.
여기를 먼저 보고 갈까 하다가, 결국은 조금 나중에 보기로 하고, 다시 그 옆에 있는
국립 항공우주박물관부터 먼저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침 10시 개관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국립 항공우주박물관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매우 크고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입니다. 개관 시간이 꽤 이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서 있었고, 특히
초등학생들이나 중학생 또래로 보이는 어린 관람객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천조국의 기상을 보여주는 로비층.
세상에 있는 하고많은 박물관 중에 대륙간 탄도 핵미사일 로켓(!)을 두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요.
왼쪽은 소련의 SS-20 로켓, 오른쪽은 미국의 퍼싱-2형 로켓입니다.

1927년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의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Spirit of St. Louis)" 호.
로비층 꼭대기에 매달린채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올려다본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의 앞쪽 패널에 그려진 명패와 국기 장식들이 붙어있는 모습입니다.
80년 넘는 세월 동안 앞부분에 칠했던 철판의 도료가 많이 부식되어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어찌 보면 세계의 비행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유물다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발사대 하부 (왼쪽)과 1975년 최초로 우주 도킹에 성공한 아폴로-소유즈 도킹 유닛 (오른쪽)
역시 크고 아름다운 전시물들입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지요.

아폴로-소유즈 위성 옆으로 오른편 앞에 보이는 것은 무려 독일 V-2 로켓입니다!
현존하는 세 대의 진짜 V-2 로켓 가운데 한 대지요.
그 뒤에 빼꼼하게 보이는 "UE" 자가 쓰인 로켓은 1958년 미국 인공위성 익스플로러를 쏘아올린 주피터-C형 로켓입니다.
높이 21미터에 무게 29톤의, 과연 크고 아름다운 물건이지요.

아예 지하층까지 파고들어 자리잡고 있는 주피터 C형의 로켓 하부.

아래층에 내려가 주피터 C형의 윗부분을 올려다본 모습.
과연 정말 크고 아름답습니다.

2층 아폴로 계획 특별전시관 입구 천장에 매달려있는 아폴로 11호의 명령모듈 (Command Module).
1969년 달에 역사상 최초로 착륙했던,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실제로 탑승했던 동체입니다.
말 그대로 "달나라에서 온" 녀석이지요.

아폴로 11호 명령 모듈의 격벽 해치 문짝. 고작 문짝일 뿐이지만, 눈이 핑핑 돌 정도의
온갖 복잡한 부품이 가득 붙어있는 녀석입니다. 하긴, 달에 다녀오려면 이정도는 해야지요.

개별 전시관에 놓여있는 월면차 (月面車). 아폴로 15, 16, 17호에서 착륙한 사람들이 이 자동차를 타고
달 표면에서 장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전시물은 1976년까지 NASA에서 주행훈련 용으로 사용되던 물건입니다.
역시 우주 시대는 마이카 시대.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에 탑승했던 우주 비행사들이 사용했던 실제 장비들입니다.
오른쪽 한 편에는, 그 유명한 "쳐지지 않는 성조기"라 불리며 온갖 음모론 떡밥의 증거랍시고 돌아다녔던 물건도 있지요.
보시다시피, 성조기 윗편에 별도의 와이어가 있어서 절대 아래로 쳐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아폴로 11호 명령모듈의 계기판 및 조종판.
이 많은 것을 살펴보고 조종하기란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말 그대로 "밥줄"인 연료전지입니다.
이게 없었다면 유인 달 착륙은 사실상 불가능했겠지요.

아폴로 특별전시관의 끝에 자리잡고 있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 단면 실물대 모형.
당시 착륙선의 카메라로 포착된 화면을 3D 시뮬레이션으로 꾸며서,
마치 정말로 창 밖의 달 표면을 내다 보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달 착륙선 모형 옆에 놓여있는 달 표면의 토양 표본 샘플.
이른바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모래"입니다.
이것 말고도 1층 로비층에는 묵직한 달 암석 샘플이 하나 놓여있는데, 실제로 만져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저도 그걸 만져보고는 싶었지만 그 달 암석 주위에 우글거리는 미국 초딩녀석들의 등쌀에
결국 저만치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폴로 계획 특별전시관을 벗어나 그 맞은편 끝에 있는 라이트 형제 기념전시실로 향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옛 자전거 가게 (원래의 가게는 현재 헨리 포드 박물관에 이축 보존되어있습니다.)
모습을 재현해 놓은 입구에는, 실제 라이트 형제가 만들어 팔던 자전거 한 대가 놓여있습니다.

전시실 가운데에 놓여있는 라이트 형제의 1호 비행기.
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 호크 해변에서 떠올라 인간의 역사를 바꾼 바로 그 비행기입니다.
책으로도 사진으로도 많이 본 진짜 그 비행기를 보니 뭔가 묘하면서도 숙연한 기분이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바꿔놓은 바로 그 순간.

가까이서 살펴본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세부 모습.
비행기의 양 날개를 조정하는 작은 막대기를 잡고 있는 동생 오빌 라이트의 마네킹이 가운데 누워있습니다.
보다시피 이 비행기에는 연료 탱크가 없어 엔진 안에 직접 채워넣은 가솔린이 타들어간 단 12초 동안밖에
작동하지 못했지만, 그 12초는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이 비행기는 그러나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948년까지 스미소니언에 전시되지 못했는데, 스미소니언 협회의
3대 협회장인 새뮤얼 랭글리의 실패한 비행 실험을 진정한 최초의 동력비행으로 주장한 스미소니언 협회의 임원들과
오빌 라이트 사이의 분쟁 때문이었습니다. 스미소니언이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한 1946년에야 이 비행기는 영국의 박물관에서
되돌아 올 수 있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이 비행기의 역사적 중요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지요.

라이트 형제 가운데 형인 윌버 라이트 (Wilbur Wright, 1867 ~ 1915)의 초상화.

전설이 된 미국의 여류 파일럿 아멜리아 이어하트 (Amelia Earhart, 1897 ~ 1937)의 비행기, 록히드 베가 5형.
일명 "빨간 꼬마 버스 (Little Red Bus)"
이어하트는 1932년 5월 21일 이 비행기를 타고 역사상 두 번째로 대서양 무착륙횡단에 성공했습니다.

1932년에 이 비행기와 포즈를 취한 아멜리아 이어하트.
그리고.......

2009년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2"에서 에이미 애덤스가 분한 이어하트와 이 비행기.
참고로 저는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제가 직접 본 물건들이 나올때는 내심 반가웠지요.

계단 한 켠 천장에 매달려있는 몽골피에 형제의 기구 실물대 모형.

3층 로비 난간에서 바로 올려다보이는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 조종석.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 측면 세부.

더글라스 DC-3형 여객기를 비롯한 온갖 1930년대 ~ 60년대 여객기들.
오른쪽 옆으로는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보잉 747 여객기 조종실 부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차대전 때의 전투기들이 여러 대 전시되어 있는 "1차대전 항공전의 기억들" 전시관.
1918년에 만들어진 독일의 팔츠 D12형 전투기입니다. 이 비행기는 1927년부터 수십여편의 할리우드 전쟁영화에서
독일군 전투기 소품으로 쓰였는데, 본래는 검은색과 파란색이 칠해졌지만 1930년 영화 "지옥의 천사들 (Hell's Angels)"에서
사용하기 위해 빨갛게 도색한 이후 지금에 이릅니다. 그 뒷편으로는 왕년의 명배우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주니어가
내래이션을 맡은, "할리우드의 비행 기사들 (Hollywood Knights of Flying)"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틀어주는
작은 영화관이 있는데, 이 영화는 이 비행기가 출연한 모든 할리우드 영화들의 클립을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1917년제 프랑스 SPAD 스미스-4형 전투기.
마치 공장에서 바로 출고된 것 같이 반짝반짝하는 상태입니다. 시동만 걸면 그냥 날아오를 거 같습니다.

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뼈대였던, 1939년제 영국 수퍼마린 스핏파이어 MK7.

1940년제 일본 미쓰비시 A6M5, 일명 "제로" 전투기.
2차대전 중 일본 공군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악명높은 전투기이지요.
1944년 사이판에서 나포한 것으로, 완형의 제로 전투기로는 현재로서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미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 중 하나였던 1945년제 머스탱 P-51D 전투기.

미국 공군 소속 마틴 B-26 폭격기"Flak Bait" 호 동체 내부 벽면.
1943년 건조된 후 2차대전 중 총 207회 출격해 2차대전 사상 최다 출격 기록을 세운 비행기입니다.
당시 출격했던 병사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전시관의 마지막 볼거리라고 할 수 있는, 노스웨스트 항공사 소속의 보잉 747 비행기의 조종석입니다.
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를 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뭔가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나가는 길에 들른, 박물관 기념품점 천장에 매달려있는, "스타 트렉" 오리지날 시리즈의 "USS 엔터프라이즈" 호 모형.
처음 봤을땐 그냥 여기서 파는 기념품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TV 시리즈에서 촬영용으로 쓰였던 바로 그 모형이더군요.
이렇게 약 두 시간에 걸쳐 실컷 크고 아름다운 비행기와 우주선들을 구경한 후, 박물관을 나와 아까 지나친 허쉬혼 현대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2부에서 계속)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