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간만에, 정확히 말하면 2012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서울 종로의 옛 성균관을 찾았다. 늘상 보면, 조선시대에 최고의 대접을 받았던 기관 치고는 그 잔존 건물들의 퇴락함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무척 볼썽사납기까지 했는데, 최근 성균관 명륜당에 대한 복원공사가 진행되었다는 얘기를 어렴풋하게 듣기는 했었다.










2012년 1월 무렵의 성균관 명륜당.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모습이다.
듣자니까, 일제에 의해 변형된 부분들을 복원하고 대규모의 개체 공사 및 단청 공사를 수행한다고 했었는데, 8월 무렵까지도 공사가 안 끝났다는 전언도 들은바가 있었다. 일제에 의해 변형된 부분을 복원한다는 소리라면, 아마 조선고적도보에 실린것과 같은 1902년 전후의 사진을 참조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옛 성균관 명륜당의 모습. 1902년 촬영 추정.
건물 전면에 창호와 벽체가 설치되지 않은 모습이다.
사실, 이런 식의 복원공사는 늘 달갑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 현존하는 목조건축들 가운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시기까지 자잘한 변형이 없는 건물들이란 사실상 없는데다가, 이런 변형들을 "일제 잔재" 운운하는 것도 꼴불견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유네스코 베니스 헌장 제 11조에 나온 대로, "양식의 통일은 복원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늘 생각해 왔다. 이 블로그에서 그동안 무수히 지적해왔듯, 대한민국에서 문화재 보수 복원을 하면서 뭔가 흡족하게 잘 된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어쨌든, 그리하여 최근에 다시 가본 성균관은.......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도 조선고적도보 사진에 꽤 충실하게 되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일단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정청 전면의 조잡하고 답답한 쪽문들을 싹 없애고,
양 익사의 퇴락해가던 가설 벽체를 제거한 것도 꽤 괜찮아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불안함.

일단 익사의 옆 벽체 모습에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익사 옆 면의 벽체가 초축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고석을 마름모꼴 모양으로 쌓아올리는 모양새는 전통 방식으로 보기에는 다소 어색한 면이 있다. 일단, 보수 이전에도 사고석 사이사이의 마감이 회가 아닌 시멘트 몰탈로 되어 있었던 것을 봐서는 아마 일제강점기 이후의 보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번 복원 공사에서는 이른바 "일제강점기의 변형부를 제거한다"고 했으면서 오히려 이 부분은 그대로 보존하고, 도리어 새롭게 보수까지 해 놨다. 고증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손을 대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라 할수 있겠지만, 전체 복원 작업을 놓고 보면 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거라고나 할까.

점점 더 가관인 경우. 익사의 앞쪽 기둥에 기존에 가설벽체를 설치하면서 파냈었던 장붓구멍을 이번 복원 과정에서 메워놨다. 일단 메운 것은 좋은데, 그것을 목재나 톱밥이나, 요즘 많이 쓰이는 합성수지도 아니고, 무려 날 시멘트로 때워놨다.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장붓구멍을 마감해놓은 사례를 못 본것은 아니지만, 열에 아홉은 그런 식의 보수 공사가 오히려 목재의 균열을 심화시켜 나중에 일을 더 크게 키워놓은 경우도 적지 않았고, 요즘에는 다른 식으로도 얼마든지 마감 처리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건물 뒷편으로 돌아와보니 제일 먼저 눈에 확 뜨이는 것은 이번에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 분명한 판문과 판벽이다.
그런데 웬걸, 전통 방식은 커녕 기계톱으로 썩썩 썰어서 만들어 놓은것이 너무 눈에 역력하다.

건물의 배면 전체 모습. 이번에 새로 복원하며 설치한 판문과 판벽이, 도저히 본래 건물의 고색창연한 뼈대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저질 폰카로 찍은 사진에서도 확연하다.

새로 설치한 판문의 경첩과 철물 세부. 이것도 이런 격조 높은 건물에 달 만한 철물이라고 치기에는 여간 만듦새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다가, 경첩을 고정한 못 가운데 하나는 심지어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나사못이었던 것을 두들겨서 전통 못처럼 보이게 만든 것도 있다.

명륜당 정청 마루. 기존에 답답했던 모습보다 지금 이렇게 탁 트인 모습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탁 트인 구조가 정청 내부에 잔뜩 걸려있는 각종 현판과 편액들의 보존에는 별로 좋지 못할 것이 뻔하다. 초가을 날씨에 가만히 마루에 앉아있어도, 이미 조금만 센 바람이 불면 큰 편액들이 조금씩 흔들거리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겨울이 오면 더 심해질 것이 뻔하다.
몇몇 편액들의 경우는 퇴색을 비롯한 사소한 훼손뿐만 아니라 심한 균열이나 파손이 육안으로도 관측되는 것도 있다. 복제품을 걸든, 액자를 걸든, 이들 현판에 대한 보존조치가 좀 강구되어야 할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명륜당이 실제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만치 요즘 이곳저곳에서 으례껏 볼수 있는 그 흔한 적외선감지기 하나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고가고 하는 판국이니 이들 편액이 도난되거나 파손될 우려도 적지 않다.
일단 결론을 내려보자면, 이번 명륜당 복원공사는 지난 몇 년 새 봐 왔던 온갖 복원공사 및 보수공사와 비교해볼때 비교적 나쁘지 않게 수행된 공사라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너무나 뻔하게 기계로 깎아낸 치목이나, 뚜렷한 고증을 하지 못하고 존치해두면서 전반적인 건물의 형태에 부조화를 일으키는 기존 변형 부분들, 그리고 하나는 생각하면서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못한 측면 등등, 여러모로 아직도 무척 미흡한 공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심각한 퇴락과 파손으로 하루하루 상태가 악화되어가고 있는 문묘 일원, 특히 대성전 본전을 비롯한 나머지 주요 건물들에 대해서도 하루빨리 적절한 보수 및 복원 공사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덧글
그래봤자 석굴암한테는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