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찌라시스런 제목, 더 가관인 내용.txt - 어느 일간지의 '풍수' 관련글을 보고 by 진성당거사

오늘 네이버 메인에 뜬 기사들을 쭉 훑다가 갑자기 본 기사.


찌라시스런 제목 아래에 내용은 더더욱 가관.
짧은 글이니,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조목조목 까보도록 하자.


(기사 원문에 실린 이미지)

사람은 산천의 기를 받고 태어난다. 산이 수려하면 귀인이 나고, 물이 좋으면 부자가 난다. 인걸은 지령이란 믿음은 잉태지와 생가가 좋아야 훌륭한 인재가 태어난다는 민간신앙으로 발전했다. 즉 똑똑하고 건강한 자식을 두려면 정자와 난자가 수태되는 순간 좋은 기를 받아야 하고 태어나 처음 마시는 우주의 기가 좋아야 한다며 합방할 시간과 장소는 물론 산방까지 가려왔던 풍습이다. 옛날에는 현대의 호텔 같은 숙박시설이 없었으니 잉태와 출생이 동일한 장소와 집에서 행해졌다. 그 결과 위대한 인물이 잉태되거나 태어난 방을 특별히 ‘태실(胎室)’ ‘산방(産房)’이라 부르며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는 경우도 많다.

일단 '태실'이라는 단어가 위대한 인물이 잉태된 방을 뜻한다니. 난생 처음 듣는 소리다. '태실'은 무슨 레퍼런스를 찾아 보아도, 옛날 왕가에서 자손이 태어났을 때 그 탯줄을 봉안하던 곳을 얘기할 뿐이다. 잉태지와 생가가 좋아야 훌륭한 인재가 태어난다는 민간 신앙이 따로 어디 기록된 바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옛날에는 현대와 같은 숙박시설이 없었으니 잉태와 출생이 동일한 장소와 집에서 행해졌다고라? 간단히 상식만 들이대도 이건 말도 안된다는 게 금세 드러난다.

조선 최고의 천재인 이이 선생은 평창의 판관대가 태실이고, 강릉의 오죽헌이 생가다. 모친이 동해에서 검은 용이 침실 쪽으로 날아드는 꿈을 꿔 산실을 ‘몽룡실’이라 부른다. 안동의 임청각에도 ‘영실(靈室)’이란 태실이 있는데 지기가 샘솟는 우물이 가까이 있어 그 방에서 삼정승에 버금가는 훌륭한 인물이 세 명이나 태어날 것이라 전해진다.

평창 판관대에 이른바 '이율곡 포태지'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그런데, 율곡은 평창에서 잉태되어 강릉 외갓집에서 태어났으니, 이미 윗 줄에서 얘기한 "옛날에는 잉태와 출생이 동일한 장소와 집에서 행해졌다"와는 맞지 않는 소리 아닌가? 게다가 조선 후기 이래로만 따지고 보더라도, 혼례 때의 합근례와 합방은 신부 집에서 한 뒤 시댁에 가서 있다가 아기를 낳는 것이 관례였으니, 이 글의 필자는 전통 혼례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도 없는가보다.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 역시 궁궐의 서로 다른 전각들에서 태어난 것이 자명한 사실. 게다가, 임금이 태어난 산실이 항상 임금과 왕후가 합방하던 침전이었던 것도 아니다. 당장 영조를 비롯한, 빈첩 소생 임금들은 뭐겠는가?  안동 임청각 같은 경우에는 이제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인데다가 '삼정승에 버금가는 훌륭한 인물'이 과연 무슨 뜻인지는 그저 꿰어맞추기에 달렸을 뿐이다. 

그렇지만 요즘의 아기는 어디가 태실이고 어디가 산실인지 도통 분명치가 않다. 뒤죽박죽이다. 대개 신혼여행을 떠나 첫날밤을 치르니 그곳의 어느 호텔이 태실로 생각되고, 출산은 모두 산부인과병원에서 낳으니 어느 병원이 산방일 테고, 아기를 집에서 키우니 생가는 집이다. 옛날에는 모두 한집에서 행해졌던 일이 현대에선 삼권 분립이 된 것처럼 제각각이다. 문제는 생기가 응집된 조용한 장소에서 건실한 관계를 통해 아이가 잉태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뭐 더 설명이 必要韓紙? 
다른건 몰라도, 신혼여행 첫날밤의 호텔 방이 '태실'이라는 건 참으로 순진하기까지 한 단순화가 아닐 수 있다.  

안동의 천전 마을에는 6부자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는 현존하는 최고의 벼슬 명당이 있다. 의성 김씨 종가 댁(보물 제450호)으로 조선 중기에 김진이 처음으로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명당의 조화인지 자식들이 모두 대과나 소과에 급제했다. 총 55칸의 단층 기와집으로 ‘口’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행랑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돼 전체적 배치는 ‘巳’자 평면을 이룬다. 이 집의 안채에도 ‘산방’이 별도로 있고, 급제한 다섯 아들은 모두 그 방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그런데 지기의 훼손을 염려한 후손이 ‘가보’와도 같던 산방을 없애고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만들었다. 이유는 영천으로 시집 간 딸이 첫째와 둘째 아들을 친정집의 산방에서 낳자, 예상대로 그들은 대과에 급제해 벼슬이 차츰 높아졌다. 그러자 후손은 자기 집의 정기를 시집 간 딸들이 모두 빼앗아 간다고 여겨 산방을 없앴으며 현대에 와서야 복원됐다. 
"이유는.......높아졌다." 까지가 완전히 앞뒤도 안 맞는 비문인게 확 눈에 들어온다. 한국경제신문은 명색이 주요 일간지랍시고 자처하면서 이따위 비문 하나 제대로 교정 못하나?

이처럼 우리의 옛 선현들은 집에서 가장 깨끗하고 지기가 우수한 방을 택해 태실과 산방으로 삼았다. 세상을 경영할 훌륭한 아기를 낳으려면 좋은 터에 지어진 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좋은 기가 모인 잉태지를 선택해야 한다. 잉태지, 생가, 젖니를 갈 때까지 산 집이 같을 경우 가족력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하니 이제는 병원과 생가뿐만 아니라 태실(잉태지)도 좋고 나쁨을 신중히 가리는 풍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단 잉태지와 생가, 그리고 젖니를 갈 때 까지 산 집이 같으면 가족력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소리는 어디서 온 걸까?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한 만천하 헛소리일 뿐이다. 아니 그리고, '생가'와 '젖니를 갈 때 까지 산 집'은 다른 건가? 이것 역시 세 번째 문단에서 했던 소리와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데. 게다가 생각해보면, 현대의 평범한 한국인 가정의 형편 상 잉태지와, 젖니를 갈때까지 산 집, 그리고 "생가"가 다 같을 확률이란 지극히 적으니 애초에 이 필자가 걱정을 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결론, "'태실(잉태지)'도 좋고 나쁨을 신중히 가리는 풍습이 필요하다"는 건.....



그런데 이 글이 더 무서운 건. 바로 이 글을 쓴 저자 때문이다.
이런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이면, 뭐 세상에 널리고 널린 무지몽매한 역술원 원장 따위라고 볼 수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이 필자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그분 본인의 약력이 기재된 웹페이지를 그대로 캡쳐해 올려보겠다. 


뭐 이런 분이란다. 

개인적으로 이 분의 이름은 꽤 친숙하다. 중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 있던 책 가운데 저기 언급된 저서, "누가 문화재를 벙어리 기생이라 했는가" 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선하고, TV쇼 진품명품을 통해서도 익숙했던 분이니. 풍수 행적을 빼더라도, 서울의 버젓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른바 '삼성맨'이 아니던가.

그런데, 결국은 호암미술관 근무보다는 풍수 따위를 '자문'해주며 돈 버는 일이 훨씬 쉽다고 만방에 선전하고 돌아다니시고 있는 이 분의 행적을 보자니, 씁쓸함 끝에 거의 눈물까지 맻힐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결국 이런 사회였던건가.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2/11/11 19:40 #

    맙소사. 할 말을 잃었습니다.ㄱ-
  • Esperos 2012/11/11 19:57 #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저런 류 글을 써 왔으니까요.
  • PennyLane 2012/11/11 20:00 #

    웃자고 쓴 글인가 했더니 배울만큼 배운 분이 저게 뭐랍니까.
  • 초록불 2012/11/11 20:44 #

    뭐... 제가 달래 미신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ㅠ.ㅠ
  • 고르곤 2012/11/11 21:15 #

    풍수, 관상, 역학이 아직도 지배하는 나라, 대한민국.
  • 대공 2012/11/11 21:24 #

    어떤분은 야합을, 공자는 야외플레이로 자연의 정기를 받으며 태어났다고 해석하시더군요(...)
  • 숲속라키 2012/11/11 22:17 #

    동물의 숲도 아니고 아직까지 풍수지리를 따지다니요?
    주변에서도 저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아무리 말씀 드려도 저걸 계속 맹목적으로 믿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 셔먼 2012/11/11 22:24 #

    저 사람 언제부터 이렇게 흑화한 걸까요(...)
  • 놀자판대장 2012/11/12 06:35 #

    학력이 아깝네요
  • 야스페르츠 2012/11/12 09:57 #

    이성이 인간의 삶을 오롯이 이끌어갈 날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 零丁洋 2012/11/12 11:43 #

    풍수쟁이 말에 반응할 필요는 없죠. 물론 일부 일리있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거의 대부분 황당한 비약과 인간의 사심이 얼버무려져 있죠. 여기에 시류를 따라 견강부회식 해석을 해데는 꼴을 보면 가관이죠.
  • 긁적 2012/11/12 12:23 #

    별로 놀랍지는 않아요. (....) 저게 한국 만 그런 것도 아니고.;
  • 워싱턴 2012/11/12 23:09 #

    그런데 사실 풍수지리학은 지기(地氣)에 관해 논하는 부분을 빼면 어느 정도 쓸 만합니다.
    단, 풍향·수계 등의 관점에서 현대 지리학에 의해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죠.
  • costzero 2012/11/13 19:17 #

    기자속도 부활하겠군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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