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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복원된 서울 성균관 명륜당의 모습 점검......

최근 간만에, 정확히 말하면 2012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서울 종로의 옛 성균관을 찾았다. 늘상 보면, 조선시대에 최고의 대접을 받았던 기관 치고는 그 잔존 건물들의 퇴락함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무척 볼썽사납기까지 했는데, 최근 성균관 명륜당에 대한 복원공사가 진행되었다는 얘기를 어렴풋하게 듣기는 했었다.2012년 1월 무렵의 성균관 명륜당. 우리에...

남대문 복원 공사 짚어보기 - 1 - 남대문은 결국 현대 건축물이 되는가?

(이하 본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의 상당수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PDF 파일로 올려져 있는 각종 보고서 문서파일에서 전재한 것들입니다. 무단 전제나 복사를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 관련 문제가 있을 시 즉각 조치하겠습니다.)<Prologue>최근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문화재 도서" 코너에는 서울 숭례문 (이하 남대문) ...

남대문 복원 공사중단 관련 언론보도 단상

(기사링크) 숭례문 공사중단, 시공사-대목장 간 임금 단가문제 ‘목공사 못해!’아니,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미천한 이 천학이 보기에 기사 내용에서 가장 핵심은 사실 이 부분인듯.문화재청은 "이번에 제기된 목공사 임금 단가 문제는 그동안 장인들이 익숙해져 있던 전동공구 대신 다소 낯선 전통도구를 사용해 전통기법으로 시공토록 함으로써 발생한 문제"라고...

중건된 문화재를 중건이라 부르지 못하고........

본격 간만에 또 쓰는 선동글.....얼마전 또다시 네이버 기사검색을 하던 도중에 또 눈에 들어오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오오 네이버 오오"조선 대표적 건물인 방화수류정 (화홍문) 중건"1932년 5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기사를 찬찬히 읽어보니, 수원 화성의 북 수문인 화홍문이 1922년에 수해로 무너졌다가, 1932년 5월에 중건했다는 것이다. 수원 ...

일제강점기 및 해방 후 마개조당한 조선시대 관청 건물 Worst 10

안동 동헌의 복원 그리고 엉터리 복원어제 이오공감에 오른 팬저님의 글에 조금 덧붙이고자 하는 의미에서 짧게 써보는 글이다.현재 전국의 지정문화재 가운데에는 줄잡아 약 80여 채의 조선시대 동헌 및 객사 건물이 잔존해 있다. [1]  이들 가운데 그 원형을 온전하게 유지한 채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극소수, 아니 사실 없다시피한데, 그것은 이들...

9월 4일 경복궁나들이 - 그리고 곳곳에서 본 한숨나는 광경들....

지난 9월 4일, 여자친구와 함께 모처럼 경복궁으로 나들이를 갔다. 새로 복원된 광화문도 보고, 국립민속박물관에도 오랫만에 들르고, 그리고 데이트도 할 겸, 여러가지를 겸사겸사한 셈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새로 복원된 광화문은 물론이거니와, 이전부터 누누이 지적한대로 곳곳에서 한숨 나게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아래, 사진과 함께 간단히 글...

콘크리트 광화문이 탄생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되돌아보며.....

콘크리트 광화문이여, 굳빠이.(1968. 12. 12. ~ 2006. 12. 4) (* 원래 15일에 올릴 예정으로 그날 저녁부터 작성하던 글이었지만, 저간의 사정으로 인해 퍽 늦은 지금에야 올리게 된다. 중간에 구글 크롬의 오류로 몇번 썼던 내용을 날려먹기도 했고.)(** 여기 소개한 사진과 신문기사 자료들 다수는 문화재연구가 이순우 선생님의...

경복궁 자선당 유구의 현주소........(문화재 반환에 대한 단상-2)

1995년 12월 31일, 경복궁 한 켠에, 무게 107톤 분량의 때묻은 돌더미가 나무 상자에 담겨 운반되었다. 그것은, 1915년에 일본 상인 오쿠라 기하치로 (大倉喜八郎, 1837 ~ 1928)에게 매각되어 일본 도쿄로 옮겨졌다가, 1923년의 관동대지진으로 불타버린 경복궁 자선당 기단부의 잔해였다.(* 자선당이 겪은 수난은 이미 ...

강릉 객사문을 보며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리다.

국보 제 51호 강릉 객사문.(최근에 지정 명칭이 변경되어 "강릉 임영관 삼문"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이름이 여전히 익숙하다.)고려시대에 지어진 강릉 객사 임영관의 정문으로, 1962년 이래 줄곧 국보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임영관은 1929년에 학교 운동장을 넓히느라 헐려버렸지만, 문은 용케 살아남았고, 학교가 사라지고 경찰서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한겨례 기사)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 에 대한 촌평

(기사 원문 링크)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28385.html일단 한줄 요약 :  "내 이럴 줄 알았지..."(1910년대 중반쯤의 광화문 사진)정말 저럴 줄 알았다. 콘크리트 광화문도 흉물이라면 흉물이었지만, 대목장으로 신응수 씨가 결정되었을 때부터 이미 저 공사는 뭔가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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